걷다가 맥없이 자빠져서 무릎의 슬개골이 골절된 건 두 해가 넘은 이야기다. 그날 이후 무릎엔 한 뼘도 넘는 긴 흉터가 생겼고, 그 속엔 나사와 와이어를 감고 지내왔다. 보통 일 년에서 일 년 반 사이에 장치를 뺀다지만 뼈가 완전히 잘 붙은 이후로도 나는 바로 제거 수술을 하지 못했다. 의대 정원 문제로 불거진 의료사태 덕분이었다.
“이제 장치를 빼시지요.”
담당의가 말했을 때 ‘드디어’와 ‘또다시’라는 두 가지 마음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간단한 세면도구와 병원에서 안내한 물건들을 챙겨 입원 절차를 밟고, 환자복을 갈아입었다. 2박 3일이면 되는, 뼈에 박아둔 나사만 빼면 되는 ‘간단한’ 수술이라고는 하지만 환자복을 입는 순간 사람의 마음은 참 달라진다. 그저 옷 하나 갈아입은 것으로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얼굴도 갑자기 초췌해진 것 같고, 안 아프던 여기저기가 다 아픈 것만 같으며, 멀쩡하던 기운도 다 빠져버린 것만 같아진다. 환자복의 마법이다.
4인실엔 정형외과 병실답게 대부분 어깨, 허리, 무릎이 멀쩡하지 않은 어르신들이다. 돌아누울 때마다 “아이고”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오고, 간병인들과 실랑이하는 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가만히 누워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소리와 대화가 들린다. 간병인들끼리 파악하고 나누는 환자의 내밀한 집 사정도 오가고, 오지 못하는 자녀나 손주들과 영상통화 하는 순간도 의도치 않게 공유하게 된다.
담당의 말로도 ‘30분이면 되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하지만, 막상 수술 시간이 되자 느긋하던 맘도 은근히 떨려오기 시작했다. 수술실 앞까지 따라온 남편에게 안경을 벗어 건네주고 “좀 이따가 봐!”라고 인사하고 혼자 차가운 수술 대기실 안으로 들어설 때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보호자가 따라올 수 없고, 잠에 들 때 외엔 벗어놓는 일이 없는 안경을 벗어두는 마음.
내 몸이 덜덜 떨려오는 것이 수술실의 차가운 온도 때문인지 두려움과 긴장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 모두였겠지.
수술실의 간호사들은 모두 친절하고 따뜻하게 말했다. 매일 생과 사가 오가고, 피와 메스가 일상인 삶을 사는 그들을 잠시 생각했다. 의료기기 하나를 달면서도 조심스럽게 말하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아마도 직업적인 발로였겠지만 환자가 되어보니 그런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어찌나 크게 다가오는지 모른다.
입에 마스크가 씌워지고, 크게 심호흡을 계속하라고, 이제 마취제가 들어갈 거라는 말을 들으며 지난 몇 번의 수술 경험상 늘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마취가 안 되면 어쩌지.’
물론 그 생각의 끝은 뻐근한 무릎의 통증과 “환자분! 수술 잘 끝났어요.”하는 소리다.
침대에 누워 병실로 향하며 천정의 조명이 지나가는 걸 물끄러미 봤다. 복도에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과 잠깐 눈이 마주치기도 했는데 그들의 눈에는 염려, 안쓰러움같은 것이 담겼음을 느껴졌다. 병원 복도를 지나가다 침상에 누운 채 이동하는 환자들을 바라볼 때의 나도 저런 눈빛이었을까.
수술 후 회진 시간에 만난 담당의는 장치 모두 깔끔하게 잘 제거했다며 내일 퇴원해도 좋다고 했다. 수술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 수술 부위는 뻐근하고 움직임이 쉽지 않다. 하지만 내일은 좀 더 나아질 것이다. 모레는, 일주일 후는 더 좋아지겠지. 이처럼 나아지고, 좋아질 거라 기대할 수 있는 나날이라면 그것만으로 행복한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병원에서 만나는 환자복을 입은 많은 사람. 하루에도 몇 번씩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소리 “코드블루! 코드블루!”
우리에게 있어 ‘지금’은 소중하다. 그리고 그 ‘지금’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 때 더욱 소중하다. 내일은 환자복을 벗고 집으로 돌아가겠지만, 잊지 않고 오늘에 감사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