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요즘 화나게 하는 건 바로 윗집 사람들이다. 어떤 날은 미친 듯이 뛰는 그 집 자매에게 화가 폭발하고, 또 어떤 날은 미친 듯이 뛰는 자매를 그냥 놔두는 그 부모들에게 화가 치솟는다. 가끔 뉴스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이른바 ‘층간소음’으로 인한 사건·사고라든가, 천정에 우퍼스피커를 붙여 위층 세대에 소음공격을 한다는 이야기들이 남 일 같지만은 않은 이유다.
몇 해 전 어느 날 윗집 이웃이 이사를 간 날 저녁이었다. 분명 살던 사람들은 이사를 갔고, 엘리베이터엔 인테리어 공사안내문이 붙었으니 비어있을 그 집에서 우당탕탕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이사 올 사람들이 빈집을 보러온 모양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생각해 보면 그날이 서막이었다. 인테리어 공사가 끝난 후 입주한 이웃을 제대로 본 일은 없으나 이사 온 첫날부터 아이들은 거실을 운동장 삼아 뛰었다. 줄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자 이제 나는 그 집 아이들의 놀이패턴까지 파악할 정도가 되었다. 신나게 뛰고 나면 다음 순서는 싸움이었다. 둘 중 하나가 소리 지르고, 하나는 울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합판으로 지어놓은 아파트도 아닌데 그렇게 잘 들린다고? 하겠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집은 어른만 셋인 구성에 텔레비전조차 틀지 않는지라 하루 종일 고요함속에 잠겨있고, 그 집 아이들은 마치 야외 운동장이라도 나온 듯 사력을 다해 뛰고 소리 지르니 내가 윗집 아이들의 소음 패턴을 파악하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이 좀 자라면 유치원도 가고, 학교도 갈 거야. 윗집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 자신에게 달래듯 말했다. 가족들은 시끄러울 때마다 천정을 보며 어이가 없어 웃다가 과연 뭘 어떻게 하면서 놀길래 저런 소리가 들릴까 궁금해하기도 했다. 그뿐인가. 소음을 참는 방법의 하나로 나도 모르게 나날이 쌍욕의 수위가 조금씩 높아지기도 했다. 그래도 윗집으로 쫓아 올라가는 일만큼은 애써 참았다.
‘화’는 한자로 (火) 를 쓴다. 어째 생각할수록 딱 맞는 한자란 생각이 든다. 속에서 뭔가 뜨거운 덩어리가 실시간으로 뭉쳐서 크기를 키우다가 빵! 하고 터져버릴 것 같은 순간이면 나도 모르게 현관문을 박차고 뛰어나가 윗집 벨을 미친 듯이 누르는 상상을 하곤 했다.
윗집 이웃이 이사 온 지는 몇 년 되었으니 그사이 오가며 한두 번 마주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런데 나뿐 아니라 몇몇 이웃들이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는 바로 “그 집 사람들은 애나 어른이나 도무지 인사를 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이것 역시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속담과 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집에서 뛸 수 있다. 아이들은 집에서 소리도 지를 수 있다. 하지만 부모는 그것을 제지해야 하고, 훈육하며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내 집이지만 공동주택이고, 그렇다면 지켜야 할 예절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윗집 부모들은 과연 아이들에게 무얼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층간소음을 참아내는 동안 윗집 아이들은 유치원에 가고 이제 초등학생도 된 모양이다. 이왕 참는 거 좀 더 참으며 그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고 좀 더 학원에 가 있는 시간이 많아지길 바라며 가끔 오래전의 엄마를 떠올리곤 한다.
친정에서 엄마와 점심을 먹던 어느 날이었다. 윗집 아이들이 우당탕쿵탕 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한동안 아이들은 시끄럽게 뛰었다. 너무 시끄러운데, 매일 저러는 거라면 관리사무소에라도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내 말에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쟤들도 저렇게 온종일은 기운 딸려서 못 뛰어. 저러다 말지. 한밤중에 자려고 누웠을 때 저러는 것은 아니니 그냥 두는 거지 뭐.”
윗집 아이들이 우당탕 뛰는 소리가 날 때면 나는 그날 엄마의 말을 생각하면서 화를 가라앉히곤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생각해 보면 온종일 뛰는 것은 아니다. 그 소리가 귀에 거슬릴 때, 속에서 울컥하고 화가 치밀어 오를 때, 그 순간을 좀 참고 지나가면 소리도 사라지고 내 맘의 화도 가라앉았다.
이처럼 오늘도 나는 화를 참는다. 참을 인이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을 생각한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살인을 면할 만큼이니 참아야 하는 그 세 번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겠는가 싶기도 하다. 쓸데없이 인내심이 강한 척하다가는 잘못하면 호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도 있다.
지금, 이 순간,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윗집 아이들이 또다시 줄넘기를 시작했다. 하아... 나는 혼자서 쌍욕을 시전하며 인내심 강한 이웃과 호구 그 사이 어딘가를 왔다 갔다 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화가 난다. 그리고 화를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