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갔다가 맥없이 자빠져 무릎뼈가 양방향으로 금이 간 덕에 응급수술을 한 것은 3년 전의 봄이었다. 그해는 시작부터 다사다난했는데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골절 수술이 그 정점이었다.
무릎에 한 뼘 가까이 되는 긴 흉터가 남았고, 그 흉터 아래로는 지금까지도 나사 몇 개와 와이어가 감겨 있다. 보통 일 년 반쯤이면 그 나사와 와이어를 제거한다고 했는데, 3년이나 되도록 내가 여태 그걸 가지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의대 정원 문제로 불거진 의료사태 덕분이다.
수술 후 일 년 반쯤 되었을 때 나의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본 의사는 말했다.
“장치들만 아니면 부러진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말끔하게 잘 붙었어요. 그런데 장치를 빼는 수술은 레지던트들이 돌아오면 하시지요. 사태가 이렇다 보니 이런 ‘간단한 수술’은 병원에서 허가해 주지 않아요.”
갑자기 다쳐서 마음의 준비 따위 할 겨를도 없이 응급실에서 바로 수술실로 실려 간 첫날과 달리 다리가 좀 낫고, 남들과 비슷하게 걷게 되자 무릎뼈에 박아 넣은 장치들을 또다시 빼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떨칠 수 없던 나날이었다. 아무리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또다시 그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울 생각만 하면 한숨부터 났는데 ‘그런 간단한 수술’이라니. 역시 날이면 날마다 환자를 눕혀놓고 수술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의사에겐 그랬던 거다.
새해 1월에 무릎의 장치를 제거하기로 하고 수술 날짜를 잡고 돌아오면서 나는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간경화를 앓던 와중에 위암이 발견되었다. 다행히 초기 위암이어서 위를 절제하는 수술 외에 다른 치료는 필요하지 않다고 했지만, 이미 간경화를 앓고 있는 환자에게 그 수술이 쉬웠을 리가 없다. 이래저래 수술 후 엄마의 간경화는 더 급속히 진행됐다. 내가 다시 수술대 위에 누워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여러 해 전 수술 대기실에 앉아 있던 엄마였다.
수술실 앞까지는 따라갔지만, 나는 대기실로도 함께 들어갈 수 없었다. 자동문이 열리고, 거기서부터는 엄마 혼자 가야 했다. 엄마가 들어가고도 한동안 나는 복도에서 서성이며 자리를 뜨지 못했는데, 마침 안에서 누군가 나오며 자동문이 열렸을 때 그 안의 풍경이 잠깐 눈에 들어왔다. 사면에 작은 수술방들이 있고 가운데 공간에 수술 환자가 대기하는 의자가 몇 개 놓여있었는데 엄마가 거기 혼자 앉아 있었다. 머리엔 캡을 쓰고, 환자복을 입은 채 어깨를 한껏 웅크리고 앉은 엄마가 그날처럼 작아 보인 적이 없었다. 자동문이 다시 스르르 닫히며 내 시야에서 엄마가 사라지고도 나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닫힌 문 너머에, 작아진 엄마가 그렇게 앉아 있다는 걸 봐버렸기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잡아준 날짜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외국에선 장치를 평생 가지고 사는 경우도 많다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 제거한다고 했다. 실제로도 무릎뼈에 나사와 와이어가 감겨 있다고해서 외부로 티가 나는 것도 아니고, 움직일 때도 별다른 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상태로 만약 한 번 더 넘어진다면 그때엔 박힌 나사 때문에 오히려 분쇄골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선택의 여지 없이 빼야 하는 것은 맞다.
처음 다쳤을 땐 당장 걸을 수 없는 다리 상태를 먼저 생각하니 수술의 두려움이나 수술대에 올라가야 하는 공포 따위는 뒷전이었다. 그런데 이제 두세 층 정도의 계단은 오를 수도 있고, 제대로 된 달리기는 아니어도 비슷하게는 움직일 수 있으니 다시 수술해야 하는 마음이 처음과 같을 수는 없다.
수술할 때는 전신마취를 한다. 의사는 수술 시간은 삼십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술전후 처치 시간까지 포함해도 두 시간 안에 다 끝난다고 하니 ‘푹 자고’ 일어나면 삼 년 가까이 나와 동고동락한 나사와 와이어는 사라져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꾸만 내가 ‘푹 자고’ 있는 동안 일어날 일들을 상상해 보게 된다. 내가 알 수 없는 잠에 빠진동안 내 몸에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을 말이다.
아주 오래된 나의 좌우명은 ‘두려움에 맞서라’이다. 이런 좌우명을 갖게 된 건 그만큼 내가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를 다잡는 좌우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두려움에 맞서라’고 자신에게 단도리를 해왔다고 해서 내가 이제쯤은 정말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백배한 인간이 되었느냐 묻는다면, 그것엔 여전히 자신 있게 답할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두려운 것이 많은 사람이고, 그걸 내비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일 뿐이다.
다시 수술대에 올라가려니 무섭다. 수술방의 그 차가운 공기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벌어질 일들은 여전한 공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두려움에 맞서야 하니 나는 매 순간 주문처럼 스스로에게 말할 뿐이다. 두려움에 맞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