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좋다

by 전명원

미용실에 가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간단한 커트 정도를 한다면야 관계없으나 펌을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오랫동안 숏컷 스타일을 고수해 왔다. 일단 편하다. 대충 감고 말려도 되며, 머리가 짧은 덕에 매일 감지 않아도 빗질만 잘해놓으면 그럭저럭 표가 덜 난다. (물론 이건 나만의 착각일지도)

그런데 작년의 어느 날이었다. 커트하러 가기도 귀찮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만 머리가 다른 때보다 길어지기 시작한 거울 속 내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불쑥, 머리를 기르고 싶어졌다.


중단발까지만 길러볼까?

나이 먹으면 길었던 머리도 자르는데 뒤늦게 기른다고?


마음속의 서로 다른 내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커트 예약을 했다가 취소하고, 맘먹었다 미루고 하는 시간 동안 조금씩 머리가 자라났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은 숏컷 스타일을 고수해 오던 시절엔 조금만 자라도 자르고 싶어 안달이던 머리가, 이제 조금씩 숏컷을 넘어 숏단발의 경계로 나아갈 즈음이 되자 아까워서 자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 길었다가 맘에 안 들면 자르는 건 쉬워. 하지만 자른 건 다시 기르기 힘드니 일단 길러보자.


그렇게 일년도 넘은 시간동안 용케도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길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이제 어깨에 닿을 정도까지 자라 중단발이 된 내 머리를 보고 깜짝 놀라곤 한다. 나 역시도 거울을 볼 때마다 괜히 흐뭇해진다.


지난 4월 그럭저럭 숏단발정도는 된 머리에 볼륨매직펌을 한 건 열흘간의 스페인 여행을 위해서였다. 드라이기를 가져가지도 않으니 머리 손질을 할 수도 없는데, 그렇다고 여행을 위해 기껏 기르고 있는 머리를 자르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인고의 시간이 필요해 극혐하는 미용실을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한해의 끝자락에 닿도록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 숏단발에서 좀 더 자라 어깨에 닿을락 말락 한 길이가 되면서 일명 ‘거지존’의 경계를 힘들게 넘었다. 어깨쯤은 되는 지금의 중단발에 이르기까지 다듬지도 않고, 매직펌을 하지도 않고 그저 길렀다.


“연말 선물로 내가 예약해 줄 테니 가서 볼륨매직펌을 해.”


얼마 전 베트남 여행을 떠났던 내가 보내준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딸이 말했다. 나는 낯선 나라의 풍경을 보라고 사진을 보냈는데, 딸은 개털이 된 내 머리를 먼저 보았던 모양이다. 마침 미용실에 앉아 있던 터라 나의 개털 머리가 더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나는 무려 8개월 만에 미용실 의자에 앉게 되었다. 사실 미용실이란 곳을 좋아하는 여인들도 많겠으나 나는 꽤 부담스러워하는 축이다. 일단 무슨 펌이든지 하려면 서너 시간쯤은 꼼짝 못 하고 붙잡혀있어야 하는 것이 고역이다. 예전에 비하면 펌 시술 시간도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나에겐 미용실에서의 서너 시간이 죽을 맛이다. 게다가 미용사들은 끊임없이 내게 무언가를 묻는다. 좀 더 고객의 맘에 맞는 스타일을 해주기 위해서인 것은 알겠으나 가끔은 그저 미용사의 손길에 머리를 맡기고 꾸벅꾸벅 졸고 싶은 맘이다.

장장 네 시간의 펌이 끝났다. 매끈매끈하고 단정해진 내 머리는 꽤 흡족했다. 비록 타고난 반곱슬 모질에 관리와는 담을 쌓은 사람인지라 두어 번 머리를 감고 나면 지금과 같은 비주얼이 나올 리는 없겠지만 일단 단정해진 걸로 만족스럽다. 사실은, 네 시간 만에 미용실에서 탈출한 것이 더 기뻤다고나 할까.

이제 머리를 끝냈으니 선물해 준 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다. 탈출한 기쁨을 내비치기보다 셀카 한 장과 함께 “너무 맘에 든다”는 찬사를 딸에게 보냈다. 뿌듯해하는 딸의 반응을 보니 나도 괜히 즐거워진다.

내 머리도 단정해지고, 그걸 보고 선물한 딸이 뿌듯해하며, 뿌듯해하는 딸을 보는 나도 즐거우니 모든 게 다 좋다. 비록 네 시간은 고역이었지만, 나도 탈출해서 기쁘고. 이처럼 모든 것이 다 좋으니 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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