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도 병인 양하여

by 전명원

맛 좋은 커피를 내오는 집이라며 나를 이끈 친구는 자리에 앉자마자 말을 꺼냈다. 바로 얼마 전 아들을 결혼시킨 대학 동창 C의 이야기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명원이는 아들 결혼식에 와줄 줄 알았는데 오지 않았더라며 걔가 서운한 얼굴이던데…?”

친구에게 그 말을 듣고 나는 당황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라니. 나는 그저 지난 모임에서 만난 그 친구와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었던 기억뿐인데 왜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말을, 이를테면 ‘너의 아들 결혼식엔 무슨 일이 있어도 갈게’라는 식의 말을 했던가.

한참 곱씹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친구와 별다른 말을 한 기억은 없었다. 심지어 그 말을 내게 전한 친구는 나와 달리 졸업 이후 계속 C와 모임을 이어오고 있었기에 더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나도 그 말을 듣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잖아. 내가 아니라 명원이라고?”


입학 동기였지만, 특별한 친분이 있지는 않던 C를 학교에서 본건 두 해가 채 되지 않는다. 졸업 이후에도 간혹 얼굴 보며 모임을 하는 동기들도 있지만, 나는 C를 몇십 년 만에 처음 만났다. 물론 그가 직장을 그만두고 벌인 사업에 실패해서 어려움에 처했다는 이야기며, 아내와 이혼했다는 것 등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내게 C의 소식을 전해준 친구를 포함한 여러 동창에게 소액의 돈을 빌렸으나 그 누구에게도 갚지 못하고 지금은 선배가 하는 주차장에서 관리인으로 일한다는 것도.

풍문으로 들어온 그런 소식 때문인지 다소 의기소침해 보이는 느낌이긴 했지만 얼마 후 아들을 결혼시킨다고 하며 밝은 표정이었다.


그날 모임에서 입학 동기들은 다들 스무 살로 돌아간 듯 편하고 즐거웠다. 이른 퇴직을 한 친구도, 새로운 일을 시작한 친구도 있었다. 달라진 서로의 근황을 나누다가도 너는 어째 머리가 이리 하얘졌느냐, 혹은 살이 안 빠진다, 같은 소소한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지나온 시절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고 우리만 움직이는 반직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시간이 앞으로 흐르는 것처럼, 지난 시절의 시간은 뒤로 흐르는 것만 같다. 말하자면 양쪽에 화살표가 달린 직선인 것이다. 그러니 멀어지는 것들이 그처럼 빨리 사라지고, 작아지는 것이 아닐까.


얼마 후 C의 아들은 결혼을 했다. 사람을 넓게 사귀는 재주는 없는 사람인 나는 평소 경조사에 갈 일이 드문 편이다. 심지어 몇 안 되는 모임의 단톡방 공지에 올라오는 경조사에 모두 참석하거나 마음을 보내지도 않는다. 잠깐 망설였지만 나는 단톡방에 C가 올린 청첩장엔 그저 축하의 댓글 하나 올리는 것으로 갈음하고 말았었다.

“평소에 네가 사람들한테 다정하게 얘기하는 편이긴 하지. 걔가 그래서 오해한 것 아닐까.”

말을 전해준 친구조차도 이해하기 힘들어했지만, 나는 그 말에 더 당황스러워졌다. 옆자리에 앉지도 않았던 C에게 의례적인 인사 외엔 나눈 기억이 없는데, 친구 말대로라면 나는 상대방의 오해를 살만큼 다정인 양하는 사람일까 하는 고민까지 얹게 된 것이다.


그날 C가 했다는 말은 오래 남아 내가 타인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사실 나는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 안 하는 편이긴 하다. 친절하다거나, 편하다거나 하는 소리도 잘 듣는다. 언뜻 생각하면 좋은 소리 같으나 사실 이건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직접적인 손익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얼굴 붉힐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별로여도 좋아요, 한다. 못마땅해도 괜찮네요, 한다. 그러다가 내가 용인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다면, 그저 상대방 모르게 조용히 돌아서거나 차단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해 왔다. 게다가 이런 행동은 늘 내 마음이 기준이었으므로 그간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도 별로 없었다.

곰곰이 되돌아봤다. 혹시 나의 다정함이, 상대방에게 오해를 일으키거나 나아가 기만하는 행동이 되기도 하는 것일까. 나는 타인을 대할 때 친절과 가식, 그 사이 어디쯤에서 줄타기를 하는 사람인 건가.


그런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단톡방에 부고가 올라왔다. 우리 나이의 부고라면 대부분 부모님 상이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었다. 그건 바로 C의 부고였다.

이틀 동안 출근하지 않자 이상하게 여긴 선배가 혼자 사는 집을 찾아갔을 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혼을 하고, 자식을 출가시킨 C가 홀로 고독사했다는 사실은 동창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부고장에 적힌 C의 이름은, 몇 달 전 청첩장에 혼주로 올라와 있던 그 이름과 묘하게 오버랩되었다. 그와 모임을 이어오던 몇은 장례식장에 조문을 갔다. 나는 조문을 가지는 않았지만 대신 조의금을 보냈다.


C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나의 조의금을 받지 못할 것이다. 내가 아들 결혼식장에 올 줄 알았다던 C는 이번에도 오지 않았느냐며 내심 서운해하려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조의금을 보낸 마음은 그저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는 댓글 한 줄이 아니라 진정 그와 밥 한 끼를 나누는 마음이었다.

어찌 보면 이건,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 중 하나이다. 낯붉히지 않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하지만, 때로는 내게 득이 되어도 마음의 문을 닫고, 반대로 손해가 된다 해도 감수하고 문을 열어두기도 한다. 누군가 “그것의 기준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명확한 기준을 댈 수는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때그때 다른 내 ‘마음’이기 때문이다.

역시 내 마음은, 다정이 병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넘쳐서, 때로는 너무 야박해서 문제인 그 다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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