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장실에 민감하다. 푸세식은 들어갈 수 없다거나, 화변기는 시도할 수 없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민감한 건 바로 ‘신호’다. 멀쩡하다가도 그 ‘신호’가 오면 다급하게 주변 화장실을 찾아야만 한다. 대부분 나이 들면 비슷한 증상을 겪는다지만, 사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랬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화장실의 신호를 참지 못하는 것 이전에, “화장실 가고 싶어요.” 소리를 못 하는 소심한 아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이야 그게 뭐라고, 하고 싶지만 어른이 된 나는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하고 말하는 일에 내심 용기가 필요하다.
서두가 길었지만, 사실 ‘부끄러움’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야 한다니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는 바로 ‘오줌싸개’였다. 그리고 나를 “오줌싸개”라며 놀린 건 주로 언니라는 사실도 떠올랐다. 이처럼 나의 부끄러운 과거를 들추어내며 놀린 것이 주로 언니였던 이유는, 그 시작을 ‘청강생’이라는 이상한 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이 공식적인 제도인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엄마는 나를 유치원에 보내는 대신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언니를 따라 학교에 가게 했다.
그런데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화장실 가겠다는 말을 못 하고 참던 내가 그만 교실 의자에 앉은 채로 오줌을 싸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언니의 담임선생님은 아마도 참된 교육자가 될 심성을 갖고 계셨던 것인지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저기 물을 갖다 놓았다가 엎은 거야” 했었다던가.
그렇다. 그날의 사건을 이처럼 남 얘기하듯 하는 이유는 잊고 싶은 과거여서가 아니라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당사자인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그날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동생의 뒤처리를 하고 친구들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던 언니는 그 부끄러움을 아주 뼛속 깊이 간직했던 모양이다. 다 커서도 틈날 때마다 나를 놀리는 용도로 써먹곤 했었으니 말이다.
여기까지라면 ‘부끄러움’은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아니라 언니의 몫이다. 그런데 사실 내가 진짜로 잊지 못하는 부끄러움은 따로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의 어느 날, 나는 운동장에서 오줌을 싸고 말았다. 그렇다. 취학 전 청강생도 아니고 3학년짜리가 그랬다. 아.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그 순간은 너무나도 선명하다.
왜 운동장에 서 있었던가. 오줌을 싸고 난 후엔 어떤 일이 있었던가. 그런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선생님이 뭐라고 했던가. 엄마도 알았던가. 젖은 옷은 어떻게 했을까. 그런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딱, 그 순간이다.
반 친구들이 모두 운동장에서 오와 열을 맞춰 서 있었던 그때 “화장실 가고 싶어요!”라는 말을 할 용기가 없던 나는 정말 애썼지만, 사력을 다해 참았지만, 어느 순간 조금씩 조금씩 다리 사이로 오줌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결국 한번 터진 봇물은 걷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쏟아져 내렸고, 다리가 뜨끈해지더니 이내 신발 속이 흥건해졌다. 신발 주위로 운동장의 흙이 진한 색으로 물들어 가는 걸 고개 숙이고 물끄러미 보던 그 순간에서 모든 기억은 멈춰있다.
그날의 기억 탓일까. 나는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화장실에 관한 한 일종의 불안감을 갖고 있다. 그건 요의를 느끼는 것, 혹은 참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와는 별개로 어딜 가든 화장실의 존재와 개폐 유무를 확인해야만 안심을 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화장실의 물 내림 방식 역시 물통이 별도로 있지 않은 밸브식 변기를 선호한다. 그건 물통이 달린 변기보다 훨씬 수압이 셀뿐 아니라 다시 물이 차길 기다리지 않아도 되어 연속으로 물 내림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맘이 편하기 때문이다. 정작 남들에겐 우선 고려 사항인 청결은 이 모든 조건의 다음 순위에 있다.
나는 요즘도 가끔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운동장을 떠올리곤 한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얼굴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부끄럽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은 그날의 일을 그 누구도 내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과는 성인이 되어 같은 아파트에서 몇 년을 이웃으로 살았지만, 단 한 번도 그 일을 화제 삼지 않으셨다. 초등학교 동창 모임을 오랫동안 해오고 있지만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 학년에 두 반뿐이었던 작은 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하나 웃자고 그날의 일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배려인가 싶은 마음에 감사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궁금하다. 모두 잊은 걸까.
그래선가. 나는 가끔 그날의 햇살 가득하던 운동장,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던 뜨끈한 액체가 운동장의 흙을 진하게 물들이며 번져나가던 그것은 혹시 나의 환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정말 내가 거기 있었을까. 정말 그게 나였을까.
물론 굳이 대답이 필요하지는 않으니 그날의 일을 기억하는 이들 중 누구라도 이 글을 읽는다면, 하던 대로 계속 모른 척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것도 꼭 말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