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소리

by 전명원

병실 안에서 머무는 침대와 그 옆 작은 공간은 커튼을 치고 나면 그 너머와 분리된 독립된 구역이 된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있다 보면 커튼 너머로 온갖 다양한 소리가 넘어왔다. 2박 3일간의 짧다면 짧은 입원기간동안 4인실은 늘 만석이었다. 누군가 나가고 나면 바로 그날 오후에 새로운 환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다.

내 맞은편 침상의 환자는 딸이 엄마를 간병하고 있다. 딸은 조용조용하게 움직이고, 소곤소곤 엄마에게 말을 건다. 엄마에게 짜증 한번 내는 법이 없다. 아침이면 세숫대야를 들고 와 여기저기 씻기는지 커튼 안쪽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이사이 긴 한숨과 함께 기운 없는 환자의 목소리도 가끔 넘어왔다. “머리 허연 아기가 되어버렸네.” 건너편 환자의 그 말이 내가 닿으면 어쩐지 가슴 한쪽이 찌르르해졌다.


대각선 방향에 누운 할머니는 조선족 간병인이 하루 종일 붙어있다. 아침이면 아들이 매일 와서 들여다보고 간다. 오후엔 손주들이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핸드폰 속 그 집 손주들이 하는 말이 내게까지도 잘만 들리는데 그 할머니는 매번 제대로 못 알아듣고 동문서답을 했다. 그래도 갑자기 목소리엔 활기가 돋았다. “잘 안 들려서 뭔말인지 모르겠어. 그래도 얼굴 보니 좋네.”


옆 침상의 환자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갑자기 들어왔다가 다음 날 오전에 금방 퇴원했다. 밤엔 남편이 왔다가 퇴원할 때는 딸이 왔는데 퇴원수속까지 그 짧은 두어 시간 동안 모녀는 끊임없이 싸웠다. 누워서 듣고 있으면 서로의 이야기만 하고, 상대방의 말은 도무지 듣지 않았는데 정작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모녀 전쟁을 치른 그 환자가 나가고 나서 바로 또 다른 할머니가 입원했다. 딸이 따라왔다가 간병인에게 인계하고 서둘러 갔다. 이 간병인도 조선족인 듯했다. 가끔 대각선의 다른 조선족 간병인과 함께 속닥이며 서로 맡고 있는 환자의 흉을 보거나 보호자들의 내밀한 사정에 대해 뒷담화를 하기도 했다.

밤에도 한두 시간에 한 번씩은 잠에서 깼다. 병원이라는 환경 자체가 절로 감각이 예민해지는 공간이라 간호사들이 조용히 드나드는 소리도 알아챌 수 있지만, 대부분은 거동이 쉽지 않은 환자들이 화장실을 가느라 간병인과 실랑이하는 소리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십중팔구는 옆 침상의 할머니 환자와 간병인의 것이었다.


할머니는 딸이 둘, 아들이 하나라고 했다. 다들 직장을 다니니 둘째 딸이 간병인에게 인계하고 돌아갔다. 할머니와 간병인은 하루 종일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짜증스러웠지만, 나중에는 포기 반 호기심 반으로 그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게 됐다.

어떤 때는 나오지도 않는 대변을 보고야 말겠다며 삼십 분 가까이 화장실에 앉아 있는 할머니가 간병인에게 혼나는 소리가 들렸고, 또 어떤 때는 대하소설 한편은 쓰고도 남을 것 같은 간병인의 인생사가 펼쳐졌다. 깊은 밤에 간병인을 깨우는 할머니의 목소리엔 미안함과 조심스러움이 담겨있었고, 반복되는 할머니의 요구엔 적당히 못 들은 척하는 것이 분명한 간병인의 꼼수가 느껴지는 소리도 커튼 너머로 날아왔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건 엄마였다.


나도 병이 든 부모님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간병인을 불렀다. 아침 일찍 담당의 회진 시간에 맞춰 부지런히 병실을 찾았다. 엄마가 ‘새끼의사’라고 부르던 인턴들을 줄줄이 달고 온 의사가 병실에서 엄마 상태를 보는 시간은 1분도 채 안 되었다. 그래도 그 시간을 마치 동아줄 붙잡듯 맞추기 위해 매일 서둘렀다. 의사들이 우르르 나가고 나면 그날 오전을 병실에서 엄마와 보내곤 오후 출근 시간에 맞춰 인사하고 병원을 나섰다.

고백하자면, 나는 병원 밖 공기를 심호흡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병원 특유의 여러 냄새가 섞인 향과 환자들의 한숨, 그런 것들로 가득한 병원에서 탈출하는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옆 침상에서 할머니 환자와 간병인 사이에 오가는 이런저런 대화들을 들으며, 그제야 내가 알지 못하는, 알려고 하지 않았던 엄마의 시간을 생각했다. 내가 출근한다고 나서고 나면 저렇게 우리 엄마도 가끔은 하소연하듯 이야기 나누다가, 또 가끔은 타박도 슬쩍 받으면서 그렇게 지냈겠구나.

엄마가 아플 때 나는 그저 ‘보호자’이고 ‘자식’이었다. ‘환자인 엄마’를 생각해 보았던가.

모든 깨달음은 이처럼 매번 늦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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