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으로 친하게 지내는 E 님은 외출했다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종종 말했다.
“기후 동행 걸음 수 채워야 해요. 8,000보 채우려면 좀 더 걸어야 하니 난 저쪽으로 돌아서 집에 갈게요.”
그녀가 늘 말하던 그 ‘기후 동행’이 뭔지는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다. 나는 운동이라면 황금이 아니라 돌을 보듯 하는 사람이고, 내겐 이미 캐시워크라는 걷기리워드 앱이 있으니 자꾸 앱을 더 깔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매주 모임을 함께 하던 E 님의 개인 사정으로 그녀를 전보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은 오랜만에 함께 점심을 나누는 것으로 풀던 어느 날이었다. 여전히 그 ‘기후 동행 걸음 수’를 채워야 한다는 E 님의 말에 갑자기 그것이 궁금해졌다. 그녀에게 들은 내용은 이랬다.
8천 보에서 한 걸음이라도 모자라면 적립이 되지 않으니 무조건 8천 보를 채워야 한다는 것.
8천 보를 채우면 200원씩 적립되는데 그것은 지역화폐인 수원페이에 적립이 되니 쓰기도 편하다는 것.
그 외에도 퀴즈를 맞히거나 하는 방식으로 조금 더 적립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늘 ‘기. 후. 동·행’이라던 E 님의 말과 달리 정확한 명칭은 ‘기후 행동 기회 소득’이라는 것도.
하루에 200원을 번다고? 200원을 벌어 누구 코에 붙인다고? 200원씩 벌어서 재벌 되려나.
처음엔 웃었지만 생각해 보니 목표가 확실한 챌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8천 보를 달성해야만 ‘성공’인 챌린지. 안 하면 모를까 일단 ‘챌린지’라는 것을 시작하면 제법 진심인 사람인지라 ‘200원= 챌린지’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순간 이미 앱을 깔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매일 8천 보 걷기’라는 나름의 챌린지를 시작했다.
E 님의 말처럼 8천 보를 달성하고 나면 바로 200원의 리워드 액수가 앱에 찍혔다. 퀴즈를 풀고 나니 20원이 추가로 적립되었다. 퀴즈 풀기는 자꾸 잊었지만, 하루에 8천 보만큼은 내 다이어리의 ‘매일 해야 하는 일’ 목록에 추가해 놓고 매일 도장 깨기를 하듯 해치웠다. 물론 운동을 즐기지 않고, 날씨마저 추운 겨울이니 쉬울 리는 없다. 매일 망설임과의 전쟁이다.
나갈까 말까. 걸을까 말까. 오늘 하루는 건너뛸까.
그래도 기특하게 보름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8천 보 채우기에 성공했다. 리워드란엔 그간 풀었던 퀴즈까지 얹어져서 2,620원이 넘는 액수가 찍혀있다. 2,620원이라면 요즘엔 웬만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 마시는 것도 쉽지는 않은 액수다. 하지만 그간의 걸음 수를 생각하면 절로 뿌듯해진다.
물론 이쯤에서 누군가는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다. “보름 동안 매일 8천 보를 걸었으면 살도 좀 빠졌나요?”
결과부터 말한다면 “그럴 리가!”
하지만 매일 ‘할까 말까’, ‘나갈까 말까’ 망설이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집 밖으로 한발 내딛고 나면 거짓말처럼 마음이 달라졌다. 집안에서는 매섭고 차가울 것만 같은 겨울 공기가 상쾌하게 다가왔고, 귀찮고 힘들 것만 같은 걷기는 활기로 가득 찼다. 추우니까, 라며 썼던 마스크는 어느새 슬쩍 벗어들었다. 코끝의 시린 공기도, 폐부로 들어가는 겨울바람도 좋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뿌듯함이 당일 한정이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상쾌함과 뿌듯함이 여러 날 간다면 좋겠지만 늘 새날이 오면 또다시 8천 보를 걸어야 하는 일 앞에서 변함없이 꾀가 났다.
그런데 이런 망설임을 잠시 멈출 수 있는 합법적인(?) 기회가 왔다. 두 해 전 넘어져 골절 수술을 하며 무릎에 박아 넣은 나사를 빼는 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2박 3일을 입원하고, 무릎뼈에 박아 넣은 장치를 빼는 수술을 하고, 왼쪽 무릎에 붕대를 둘둘 감고 절뚝이며 집에 돌아왔다. 이미 뼈는 오래전에 다 붙었으므로 나사만 빼는 수술이 깔끔하게 잘 끝났고, 당분간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는 것 외에 재활 같은 것은 필요치 않다는 의사의 말을 들으며 후련한 기분이었다. 오랜 숙제를 해버린 기분이었달까. 다행히 수술 이삼일 후엔 통증도 거의 사라졌지만 여전히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당연히 그간 매일 200원씩의 리워드를 받던 ‘기후 동행 기회 소득’ 앱도 며칠간 열어보지 않았다.
당분간은 ‘8천 보를 채워야 해’라거나 ‘누가 잡으러 오는 것도 아닌데 오늘 하루는 쉬자’라던 나 자신과의 실랑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 솔직히 처음 며칠은 편했다. 그런데 수술 후 이제 통증이 조금씩 사라지고 움직임도 나아지고 나니 또 다른 마음이 내 안에 자라난다. 전과는 다른, 전과는 반대의 마음이 생겨난 것이다.
나가서 걷고 싶다. 차갑고 알싸한 겨울바람도 가득 넣고 싶다.
생각해 보면 역시 망설일 수 있을 때가 좋았다. 아예 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우리는 망설이지 않는다. 망설인다는 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내 마음의 결정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망설이는 나날은 행복한 날이다.
수술 후 2주가 지나면 실밥을 제거한다고 했다. 그때 되면 나는 아마도 다시 기후 행동 기회 소득 앱을 열 것이 분명하다. 8천 보를 채워야지 하면서도 막상 겨울바람 속으로 나서려면 꾀가 나서 나갈까 말까 하며 망설일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 해도 지금 나는, 망설일 것이 분명한 그 날들을 기다린다. 이제 망설일 수 있는 시간의 감사함을 알았으니, 진심으로 망설이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