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를 먹을 때

by 전명원

나는 만두를 사랑한다. 나처럼 넙데데하고 빵빵한 몸체를 갖고 있어서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의 유전자 어딘가에 만두와의 친밀도가 아주 높은 수치로 각인되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돌아가신 아빠 덕분일 것이다. 아빠 역시 만두를, 그중에서도 나처럼 고기만두를 좋아했다.


아빠와 내가 좋아하는 만두는 피가 얇은 교자 스타일이 아니라 이스트로 부풀린 반죽을 이용한 두꺼운 찐빵 같은 만두다. 그런 식감으로 만들어 내는 만둣집이 흔치 않았으므로 엄마는 아빠의 요구대로 집에서 만두를 빚었다. 안에 고기와 야채를 다져 넣은 소를 채우고 주먹만큼 커다랗게 빚어서 식당에서나 봄 직한 알루미늄 만두 찜기를 대여섯 단 올려 주말마다 고기만두를 쪘다. 찜기에 김이 오르고, 온 집안에 고기만두의 냄새가 가득 퍼질 즈음이면 참지 못하고 주방을 서성거렸다. 정신 사납다는 엄마의 지청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 익은 후 엄마가 찜기 뚜껑을 여는 첫 순간을 고대했다.


아빠 주먹만큼 커다란 고기만두가 빵빵하게 김이 오르고, 그릇에 덜어 한 입 베어 물면 만두소에 가득한 고기와 야채, 그리고 진득한 육즙까지 흘러나왔다. 이번 반죽은 진짜 잘됐네. 만두 속도 간이 딱 맞았다. 귀찮아 죽겠어, 그냥 대충 만둣집에서 파는 거 사 먹으면 좀 좋아. 우리 가족은 식탁에 둘러앉아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찜기에서 막 꺼낸 뜨거운 만두를 먹었다.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아득해진 주말의 풍경이다.


무릎 골절로 인해 박아 넣었던 나사를 빼는 수술을 한 지 어느새 열흘이다. 골절 당시와 달리 나사만 빼는 수술은 훨씬 간단했지만, 무릎은 계속 구부리는 부위다 보니 절개 후 봉합한 부위가 자꾸 벌어져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웠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이웃 s 님은 내게 커다란 비닐봉지를 내밀며 말했다.

“이거 발안 만세시장 가서 사 온 거예요. 무릎 수술했다면서요? 혹시 ‘수술하고 입맛 떨어졌을까 봐’ 거기 고려인이 하는 만둣가게에서 종류별로 다 사 왔어요. 따뜻할 때 먹어요.”


그 안에 든 건 무려 네 팩의 왕만두였다. 동네에 흔한 교자가 아닌, 어린 시절부터 내가 좋아했던 찐빵같이 두툼한 반죽의 커다란 왕만두가 따끈따끈했다. 비록 s 님의 말씀처럼 ‘입맛 떨어지는’ 일은 없어서 걱정인 사람이긴 하지만, 언젠가 어린 시절에 엄마가 해주던 찐빵처럼 두툼한 고기만두가 그립다고 했던 내 말을 기억하셨던 걸까 싶어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집에 와서 두근두근하는 맘으로 식탁에 만두를 펼쳐놓았다. 정말 종류별로 다른 만두들이 먹음직스러웠다. 신이 나서 한입 베어 물었다. 엄마가 해줬던 것처럼 잘게 다지지 않은 큼직큼직한 고기가 들어간 왕만두, 이스트로 부풀려 향긋하고 촉촉한 만두피. 하나를 더 먹어도 될까, 너무 배부른데…. 하면서도 앉은 자리에서 몇 개를 집어먹었다. 꼭 어렸을 때 엄마가 집에서 만든 만두 같다. 요새 이런 만두 흔치 않은데. 우리 집엔 만둣가게에서 쓰는 여러 단의 만두 찜기가 있었다니까. 이런 이야기들이 만두를 먹는 저녁 식탁에서 오갔다.

이처럼 음식 하나에 갑자기 오래전 어린 시절의 내가 된다. 엄마가 가구점을 돌고 돌아 고른, 두꺼운 유리가 얹어진 원형의 등나무 식탁에 우리 가족 다섯이 둘러앉아 호호 불며 만두를 먹는다.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사람들이 돌아온다. 태평양을 건너 먼 곳에서 나와는 반대의 낮과 밤을 사는 가족도 돌아온다. 음식 하나에 갑자기 지나간 시간이 소환되는 것이다.


네 팩이나 되는 커다란 왕만두를 종류별로 맛보고 몇 개가 남아 그릇에 덜어놓고 물끄러미 바라봤다. 음식은 지나간 시간과 떠난 사람들과 먼 곳에 있는 혈육을 불러왔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억했다가 잊지 않고 전해주는 이웃의 마음도 그 안에는 들어있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음식이란 그런 것일지 모른다.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닌, 이야기와 마음이 함께 한다. 언젠가 또다시 찐빵처럼 커다랗게 부풀린 투박한 고기만두를 먹는 날이 또 온다면 이제 지나간 시간과 떠난 사람들, 그리고 먼 곳의 혈육을 떠올리는 것에 얹어 오늘도 함께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예전에 다리 수술하고 있을 때 그분이 이처럼 커다란 만두를 잔뜩 사다주셨지 뭐야. 진짜 옛날에 먹던 만두랑 똑같았다니까. 아마도 그날의 식탁엔 이런 말도 함께 오르겠지.

생각해보면 살아있으므로 우리는 먹을 수 있다. 결국 음식을 먹는다는 건 쌓아가는 일이며, 나누는 일이다. 그리고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결국 음식을 먹는다는 건 간직한 채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아닐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망설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