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서 온 나의 자매님은 일 년이면 두 번도 올 정도로 자주 한국에 온다. 신기하게도 그리 자주 오는데도 늘 새로운 것이 자꾸만 생기니 놀랍다고 말한다. 이번에도 역시 새로운 곳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고른 곳은 광교호수공원이 한눈에 조망되는, 41층에 있어 이름도 ‘스타벅스 41F’인 그곳이다.
사실 이곳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여름 한번 갔었는데 A, B 두 동의 건물이 지하에서 하나로 연결된 구조에 잠시 헤매다가 운 좋게 얻어걸린 엘리베이터가 마침 41층 스타벅스로 가는 것이었다. 그 여름 빌딩꼭대기에서 한눈에 둥근 호수를 내려다봤던 느낌이 아직 생생했다. 자매님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하며 광교로 향했다. 어딘가 목적지가 초행일 때 꽤 열심히 검색한다. 주차장이며, 주변 도로도 꼼꼼히 확인한다. 그런데 두 번째라고 생각하면 조금 달라진다. 이미 가본 날이 기억이 자신감을 준다. 비록 그날 확실히 알고 찾아간 것은 아니지만 어찌저찌 찾아 들어갔기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일단 주차부터 난관이었다. 그 사이 지하의 주차 환경이 변해있었는데 상가와 오피스텔의 주차구역이 다시 나뉘어서 지하 주차장 내부에 바리케이드가 여럿이었다. 아마도 상가를 이용하는 자동차들로 인해 오피스텔의 주차구역이 부족해지며 바뀐 방법이 아닐까 하는데 가뜩이나 복닥거리는 지하 주차장은 일대 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다시 나와 길 건너의 컨벤션센터 건물에 주차하고 주차료를 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밖에서 들어가니 한결 수월하게 41층 스타벅스를 찾아가겠어, 길을 건널 때만 해도 우리, 아니 나는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건물 내부에 들어서며 2차 난관이 닥쳤다.
두 동의 건물은 1층 중정을 공유한다. 그리고 각 건물은 3층까지는 상가 구역이고 그 위는 오피스텔이었다. 우리가 찾는 스타벅스는 그 오피스텔 구역의 맨 꼭대기에 있었다. 일반 엘리베이터는 모두 3층까지밖에 가지 않고, 41층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가 없어 위아래로 오르내리고, 두 동을 번갈아 가며 왔다 갔다 했다. 한동안 헤매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B동 41층 올라가려면 어떻게 하나요? ”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대부분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내가 철석같이 B동이라 믿고 있던 스타벅스는 사실 A동에 있었다. 그러니 애초 이 질문 자체가 문제였다.
우여곡절 끝에 스타벅스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나오는 사람들을 거꾸로 따라가니 A동 입구였고, 그곳엔 ‘스타벅스 41F’이라는 안내판도 있었다. 헛웃음이 났다.
삼십 분 넘게 지하에서 3층을 오르내리며 41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찾는다고 수선을 떨고, 무슨 스타벅스가 이리 안내판 하나가 없느냐며 분통을 터뜨린 시간이 지나고 41층 꼭대기에 앉아 광교 호수를 바라보다 보니 헛웃음이 났다. “B동 악귀에 씌었었나 봐”하며 웃었지만, 사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됐다.
첫째는, 내가 철석같이 B동이라 생각한 걸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의 제목으로도 유명한 말,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가 떠올랐다. 나는 나를 확신했는데, 그쯤을 헤맸으면 왜 의심하지 않았을까. 심지어 나중엔 다시 검색을 하기도 했는데 ‘지하에서 A동과 B동 어디로든 올라갈 수 있다’라는 먼저 다녀온 블로거의 문구를 내 멋대로 지나치기도 했다.
둘째로는 주변인들에게 무언가 도움을 청하고 물어볼 때 나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B동 41층을 어찌 가느냐? 물을 것이 아니라 차라리 스타벅스 41층이 여기 있다던데 어떻게 가냐고 묻는 게 나았을 것이다. 나는 전혀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조금만 알려주면 돼. 이런 자세로 물을 것이 아니라 좀 더 겸손한 자세로 물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나는 모르며, 도움이 필요하다는 자세가 필요했다고 생각했다.
광교 호수는 얼어있었고, 호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아파트, 그리고 건물들을 바라보며 언니와 나는 옛이야기를 나눴다. 저쪽엔 호텔이 있었지. 저쪽으로는 예전에 눈썰매장도 있었잖아. 저기선 오리배가 떠다녔어. 이런 옛이야기를 나누다가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이야기, 이처럼 예전 모습이 없어진 세월이니 또 앞으로는 어떤 것이 얼마나 달라질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나이 들어가면서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며 산다. 경험이 쌓이고, 지식을 얻는다. 나이 든 이들의 말을 쉬이 넘겨선 안 되고, 또 조언을 구하기도 해야 하는 이유다. 오죽하면 한 사람은 하나의 도서관이라던가, 하는 말도 있지 않던가.
하지만 나이 들며 나도 모르게 생기는 아집이나 자기 확신 역시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른바 ‘꼰대’는 남의 이야기일 리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나는 그럴 리 없어. 나는 그렇게 나이 들지 않아. 이렇게 말하지만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웃었다. 그리고 오늘은 큰 교훈으로 남았다. ‘41층 악귀에 씌었나 봐’ 했지만 그게 아니라 아무래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아’라는 아집의 악귀에 씌었던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