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달팽이 (백순심)
백순심 작가를 알고 지낸 건 여러 해 된 이야기다. 이제는 종간된 웹진 '2W매거진'에서 함께 필진으로 여러 번 글을 나누면서도 막상 얼굴 볼 일이 없었다. 하지만 궁금했으나 볼 기회가 없던 그녀를 만난 건 3년 전, 인제 여행길에서였다.
그해 3월에 나는 넘어져서 무릎 골절 수술을 했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장애인들의 마음을 피부로 느끼는 나날을 보냈다. 목발을 짚고, 그다음엔 절뚝거렸다. 5월이 되자 남 보기에 엇비슷하게 걸을 수 있었지만 뛰지 못하고, 계단을 오르지 못했다. 건널목의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기 전에 건너기 위해서는 매번 마음이 곤두섰다.
그런 다리를 하고서도 5월이 가기 전 인제로 여행을 떠났다. (다행인지 다친 다리는 운전에 지장이 없는 왼쪽 다리였다) 두 달을 집과 병원, 그리고 동네만 돌아다니던 나는 살 것 같았다. 강원도의 초록뿐 아니라 전날 내린 비로 무섭게 물이 불어난 계곡마저도 다정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 여행길에 짬을 내어 인제에 사는 백순심 작가를 만나 작은 독립 서점에 마주 앉았다. (아무도 믿지 않지만) 대문자 I이며, 매우 낯을 가리는 나로선 온라인상에서의 인연을 마주 대하는 일이 어색했을 법도 한데 먼저 연락하는 용기를 냈다. 책을 한 권씩 출간한 이력이 있던 우리는 글과 책, 그리고 출판에 대한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 사이사이에 ’팔리는 글을 쓰고 싶다’라는 마음도 숨기지 않고 털어놨다. 글을 쓴다는 공통 분모로 그녀와 여러 해 알아 온 사람처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었다.
그 이후 그녀도 나도 부지런히 글을 쓰고 책을 낸다. 그녀는 모르겠으나 내 책의 판매량은 매번 침울해지는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다행인 건 내가 여전히 ’중꺽마‘ , 그러니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갑옷을 벗지는 않고 있다는 거다.
백순심 작가의 신간 <우리 엄마는 달팽이>를 읽었다. 뇌병변장애인인 그녀가 쌍둥이 아들을 키우는 것을 안다. 아이들이 장애인 엄마를 보는 시각, 그리고 작가인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뿐 아니라 아이들의 말과 표현을 빌려 그녀가 꺼내놓는 마음도 전해졌다. 굳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눠 생각하고 싶지는 않으나 현실에서 그녀가 마주해야 했을 많은 순간을 떠올려보게 됐다. 그뿐 아니라 읽는 내내 아이들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장애인인 엄마를 둘러싼 그 가족 모두가 참 따뜻했다.
살면서 만나는 사람과의 모든 순간을 다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만남은 그 특별한 한순간을 오래 기억하게 된다. 나는 백순심 작가와 마주 앉은 자리에서 커피를 마실 때, 빨대를 꽂느라 힘겨워 보이던 그녀를 기억한다. 일회용 빨대가 아니라 스테인리스 빨대였는데 뚜껑의 홈에 끼우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걸 지켜보고 있었는데 몇 초쯤일 그 순간이 몇십 분 정도로 길었던 느낌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 순간 마음속으로 굉장한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인 내가 빨대를 얼른 꽂아주는 게 나을까.
시간이 좀 걸려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섣불리 도와준다고 하면 마음 상하지 않을까.
결국 그날 내가 고민하는 동안 그녀는 빨대를 꽂았고, 그 장면은 내가 여전히 그녀를 기억하는 순간으로 남아있다.
골절 수술을 받고 3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예전처럼 뛰지 못한다. 하지만 절뚝거리고 돌아다닐 때 내게 다가와 준 많은 도움 앞에서 늘 그녀가 손을 조금 떨며 빨대를 힘겹게 꽂던 순간을 떠올렸다.
세상을 혼자서만 살아갈 수는 없지만, 때로 혼자 걷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그 경계를 알고, 그 너머로 손을 내미는 일은 어렵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면 더욱 어렵다.
다음에 언젠가 백순심 작가와 다시 마주 앉아 커피를 한잔 마실 날이 올까. 만약 그런 순간이 다시 온다면, 그날도 뇌 병변 장애인인 그녀는 뜨거운 커피 대신 빨대를 꽂는 찬 음료를 선택할 것이 분명하다, 그때엔 조심스럽게 물어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신작 ’우리 엄마는 달팽이‘에서 아이들이 말한다.
<우리 집 텃밭에는 메뚜기도 있고, 나비도 날아다니고, 콩벌레와 달팽이도 있어요. 달팽이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나요. 느리지만 천천히 가는 모습이 우리 엄마를 닮았어요. >
어쩌면 우리는 모두 사는 내내 ’달팽이‘다. ‘느리지만 천천히’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