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mas everywhere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는 눈만 감으면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고 포근하다.
12월만 되면 종교가 생겨버리는 4학년의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저녁이 되면 친구와 룰루랄라 동네 교회에 갔다. 교회에서는 아낌없이 간식을 나누어 주고는 만화영화 ‘이집트의 왕자‘를 틀어주었는데 성경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던 나도 몰입하며 봤던 기억이 난다.
또 신기하게도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 시즌엔 항상 눈과 함께였다. 살던 집 아래 시장 곳곳에 가게들의 조명들도 하얀 눈빛을 받으면 크리스마스 램프들처럼 분위기가 근사했다.
그리고 부모님들은 그날만은 저녁 늦게까지 친구들과 모여 동네를 다니는 것을 허락해 주었는데 어리숙하게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 놓은 상점도, 거의 완벽하게 꾸며놓은 빌딩의 장식도 모두 똑같이 예뻤다.
너무 추웠지만 따뜻했던 그때의 기억들은 다 진짜일까. 아니면 재밌는 만화의 한 에피소드처럼 계속 다듬어지고 풍성해지는 걸까.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과거의 크리스마스 기억들이 더 뭉클해지고 몽글몽글해지는 것을 보면 나라는 감독이 꾸준히 리마스터링을 하는 것 같기는 하다.
어렸던 그 시절처럼 나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연말의 흔적을 찾으러 도시를 돌아다닌다. 통금시간이 없으니 반경범위는 더 넓어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 흔적을 그림으로도 글로도 남겨본다.
등에 그린치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은 사람의 뒷모습도 눈에 담아본다. 삼청동 크리스마스 팝업스토어에서 발견한 고양이 스웨터를 입은 와인병도 너무 깜찍해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남편이 뱅쇼를 끓여준다고 했다. (뱅쇼는 끓이면 향이 한 동네를 다 휘감는다. 무슨 냄새냐며 창문을 열어보는 이웃들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기를.) 가족들도 초대해 쿠키를 굽고 선물을 나누어주는 작은 파티도 열 생각이다.
몸과 마음이 바빴던 작년엔 생각도 못했던 이벤트들이다. 올해 크리스마스 기억은 초등학교 4학년때의 크리스마스처럼, 시간이 한참 지나도 계속 더해지고 풍성해지는 오래된 기억으로 남아주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