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지만 묵직한 사람들
지금은 조금 시들해졌지만 작년까지는 히어로 영화를 많이 봤었다. 특히 도파민 팡팡 터지고 권선징악이 뚜렷한 그런 영화들을 꽤 좋아한다.
원래 나는 답답할 정도로 열린 결말이 있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픈 그런 영화를 좋아했다. 음- 아마도 고등학교 때부터 20대 초반 까지였던 것 같다.
그러고서는 마블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은 서로 매일 싸웠다. 매일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꼭 나쁜 사람은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상을 받았다. 그 상은 심지어 돈과 권력이 아니었다. 바로 세계평화와 세상 사람들의 영웅을 향한 존경심 같은 것이었다!
예전에 일부러 찾아서 봤다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영화들은 선과 선이 싸우고 악이 선이 되었다가 선이 악이 됐다. 선을 선이라고만 봐도 안 됐고 악을 악으로만 판단해서도 안 됐다. 참 복잡한 영화들이었다.
그래도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나름의 해석과 결말을 내려고 몇 날 며칠을 생각했다. 그 정도로 끝나지 않으면 영화의 잔상들을 그냥 계속 머릿속에 남겨두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20대 중반을 지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세상의 쓴맛(?)을 보고는, 내가 선택하는 영화 속에서는 또 그 쓴맛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한 영화들만 보고야 말겠다는 어린 마음에서 나오는 풋풋한 자존심을 이제는 버린 것 같기도 하다.
히어로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데드풀’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나오는 ’스타로드‘다. 이 둘은 완벽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그 어떤 상황에서도 농담하기다.
정말 황당할 정도로 웃긴 농담을 하는데, 엄청난 위기 상황을 심각하게 보던 나는 그들의 농담에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만다.
데드풀과 스타로드는 아주 심각한 상황에서도 적당한, 어쩔 땐 좀 너무한 농담을 한다. 그러면 영화 속 팀원들의 울 것 같은 얼굴에 잠깐 웃음이 스친다. 그렇게 분위기가 유연해진 스타로드와 데드풀, 그리고 그의 동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실력발휘를 한다. 결국 싸움을 승리로 이끈다.
우스꽝스럽게도 종종 내가 히어로가 되는 상상도 해본다. 나는 부상을 크게 당한 히어로고 모든 상황이 끝나고 남편이 나중에 와서는 나를 잡고 엉엉 우는 스토리를 머릿속으로 만든다.
그럼 우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웃으며, “밤마다 이 닦고 자는 거 잊지 마. 이젠 잔소리할 사람 없어.”라고 말하고 싶다. 남편은 피식-웃으며 “이 사람아 지금 그런 말 할 때야.” 하겠지만 웃긴 웃었다.
무거운 상황을 잠깐이라도 가볍게 환기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가벼운 사람이 아니다. 내 생각엔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정말 똑똑하고 생각이 묵직한 사람들이다.
한없이 무겁고 무겁게만 생각하고 싶은 나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였다. 그러면서 나라는 사람을 찬찬히 정립해 나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데드풀 같은 히어로가 된다면 어떤 농담을 할까, 하고 즐겁게 고민하는 지금의 나도 마음에 든다.
모두 나로서 잘 살아보려는 풋풋하기고 하고 묵직하기도 한 노력들일 것이다. 아주 나중에 좋아하는 영화의 장르가 다시 바뀔지도 모른다. 그럴 땐 내가 또 변화 중이구나, 하며 편하고 재밌게 받아들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