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꼭 농부 되기

미니 모종만큼 어설프다

by 그유정

집 앞에 염화칼슘을 솔솔 뿌리며 한 발 한 발 계단을 내려가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봄이 와버렸다.


겨울에 끓여 먹던 뱅쇼와 가족들 중 나만 좋아했던 슈톨렌이 아련히 그리워진다. 하지만 온갖 꽃이 피어나고 따뜻한 바람이 부는 봄을 겨울에 대한 미련이 이겨내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


지금 집으로 이사한 지는 벌써 7개월이 지났다. 전에는 아파트에 살았기에 마당이 있는 주택으로 이사를 올 생각을 하니 마당을 가꿀 생각에 한껏 들떠있었다. 하지만 동네에 적응하고 집 밖보다는 집안에 적응하느라 마당을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2월, 3월엔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둘째 아이의 유치원 입학으로 추가로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사람 마음이 참 재밌다. 나름 콧방귀를 뀔 만큼 어느 정도 동네에 적응도 하고, 고마운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 잘 적응해 주니 나의 마음 한편에 여유가 생겼나 보다. 갑자기 마당에 작물(?)을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새록새록 올라왔다.


사실 집 안에서는 꾸준히 식물을 키웠었다. 몬스테라와 다육이들 그리고 잎이 넓거나 통통한 공기정화 식물들 위주였다. 분갈이를 해야 할 때는 미숙해서 친정엄마께 sos를 치기도 했다. 그럼 엄마는 한걸음에 달려와 주시고는 잘 봐보라는(?) 잔소리와 함께 식물들의 이사를 도와주셨다.


그런데 이제는 마당에 작물 키우기라니! 분갈이도 어설픈 내가 너무 원대한 목표를 세운 것 같다. 일단 내가 먹고 싶은 채소들을 생각했다. 초여름엔 시원한 오이도 먹고 싶고 친정엄마가 맛있게 하시는 가지나물도 먹고 싶었다. 고기를 구워 먹을 때 내가 키운 깻잎과 상추를 바로 따와 같이 먹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렜다.


아이들은 엄마의 의욕과 신남이 신기한 모양이다. 아마도 마당에 식물을 키워보자고 하면 원래 아이들이 더 기대를 해야 하는데 엄마의 들뜸 기세에 조용히 웃으며 관찰모드다.


남편의 도움으로 텃밭의 흙을 고르고 추가로 화분들과 선반도 조립했다. 준비는 이만하면 된 것 같다. 때마침 좀 전엔 주문한 오이 모종과 서비스로 케일도 같이 왔다. 옹기종기 모종들이 귀엽다. 내일은 상추와 고추도 올 텐데, 마음이 비장해진다.


35살 인생 처음으로 작물을 키워보려고 한다. 제미나이에게 배양토와 마사토를 어떤 비율로 섞어야 되는지 물어봤다. 숫자를 언급하며 꽤 정확한 방법을 알려준 것 같은데, 사실 직접 하지 않고서는 잘 모르겠다.


귀여운 모종들의 사진을 찍어보았다. 초보 농부의 실력처럼 아주 작고 어설퍼 보인다.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인데 잘 키워주세요’ 하며 모종들은 나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최선을 다해볼게. 하지만 처음이니 너무 큰 기대를 하지는 말아 줘.’ 나도 속으로 모종들에게 인사한다.


흙을 만지고 생명이 자라는 모습을 천천히 보는 일은 단순히 식물을 키우는 행위만은 아닐 것이다. 흙을 만지며 손끝의 감각을 느끼고, 날씨를 예측하며 빛과 비에 감사한다. 그리고 열매를 맺고 꽃이 피는 모습을 보며 생명의 찬란함을 깨닫는다.


비록 나의 작물들이 아주 작은 열매를 맺고 멋진 모습이 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나와 가족들은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종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어본다. 참 작고 귀여운 모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