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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네리 Jun 26. 2020

당신의 메모리카드는 언제 정리하셨나요?

'잠시' 머물다 가는 그 모든 것


사람은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흔한 연인 간의 이별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관계에서 파생되는 모든 만남에는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 온다. 마치 인생이 우리에게 "너넨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쭉 혼자야!"라고 외치는 것마냥.


헤어짐에 익숙한 사람이 어디있겠냐만은, 난 참 헤어짐이 익숙치 않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혼자 해외여행을 다닐 때 살아있는 존재가 아님에도 정들어버린 도시와의 헤어짐에 슬퍼했고, 고작 1년 산 자취방을 떠나올 때도 텅 빈 방을 보며 헤어짐이 아쉬워 자주 뒤돌아보았다.





인생은 독고다이


그렇다고 한다. 인생은 독고다이. 날 때도 혼자, 다시 흙으로 돌아갈 때도 혼자. 어쩌면 우리는, 그렇기에 무수한 헤어짐의 연습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정말 정말 영영 이별이 오게 될 때 너무 많은 세상의 슬픔을 떠안고 가지 말라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버려두고 올 수 있도록. '살아오면서 많은 이별을 연습해왔잖아, 그러니 조금이라도 덤덤해져. 너무 슬퍼마' 라는 슬프고도 따듯한 진심이 담긴 조물주의 마음.




초중고-대학교-직장의 과정을 겪으면서 다양한 지역을 거쳤다. 그렇게 환경이 바뀐 만큼 주변 사람들 또한 빠르게 바뀌어갔다. 예전에는 영원한 게 좋았다. 그리고 영원한 것만이 '진짜 관계'라 생각을 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다. 각자 살아가다 보면, 그리고 물리적 거리가 있다 보면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고 점점 연락이 뜸해진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서로 오해까지 쌓이게 되면 다른 때보다 더욱 풀기가 어려워진다. 서로에게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이 되는 건 쉽다. 조용히 그 관계가 바래져간다. 어렸을 적의 나였다면, 이런 순간에 무조건 내 탓을 했겠지만, 글쎄. 이제는 이러한 인간관계의 유통기한에 덤덤해져간다. 왜 우리는 그토록 어릴 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해~"라는 말을 가르침 받았을까?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는 아닌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가치관이나 성격이 맞지 않아 멀어졌든, 오해가 쌓여 멀어졌든. 그동안에 쌓인 서로의 역사를 아무렇게나 방치해두지 말고, 서로의 서사를 없었던 일인 것처럼 찢어 버리지 말고. 곱게 접고, 핀으로 집어서 책상 아래의 서랍장에 모셔두자. 사람이 떠나가도 이미 추억이 되어버린 기억마저 버리는 건 그 시절의 나에게 미안하니까. 그 시절의 나에게는 그 사람들 또한 나의 일부였을 테니까.


꽉 찬 메모리카드의 저장물들을 다른 usb로 옮겨두고, 다시 텅 빈 메모리카드를 새롭게 쓰는 것처럼. 우리의 기억도 그렇게 자주 옮기고 비우는 과정을 거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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