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주의 01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누군가가 고구마를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도 아니고,
2만개를 내 목에 쑤셔 넣은 것 같은 기분.
답답하고 억울하고,
속에서 “아니라고!” 외쳐도 상대는 들을 생각이 없는 그 순간 말이다.
예를 들어,
가족과 어떤 과거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그렇다.
“그날 너 울었잖아!”
“내가? 내가 왜 울어? 안 울었어!”
“울었어. 너 엄청 울었어!”
…기억이 완전 다르게 흘러가는 순간.
서로 다른 드라마를 보고 온 사람처럼.
결국 뇌는 기억을 자기 중심으로 편집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 해석하고,
시간이 지나면 좋은 기억만 남겨 두려고 한다.
같은 사건을 겪고도
누군가는 “그날 정말 좋았지!” 하는데
다른 누군가는 “그날? 최악이었는데?”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데 문제는,
내 말은 들을 생각조차 없는 사람을 만났을 때다.
“그게 아니고, 그 상황은...”
“아니야. 너는 그런 사람이야.”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다.
이미 답정녀, 답정남 모드로 들어간 사람들.
그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아무리 버둥거려도 빠져나올 수 없는
캐릭터로 굳어져 버린다.
억울하지만, 답답하지만,
고구마 2만 개를 삼킨 듯 목이 메지만,
결론은 하나다.
그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스쳤다.
“혹시… 내 마음의 그릇이 너무 작아서 그런 건 아닐까?”
내 안의 목소리가 작은 간장종지를 흔들며 속삭였다.
“너의 마음 그릇이 요만해서 그렇지~
바다처럼 넓었으면, 그 정도 말쯤은
둥둥 떠다니다가 사라졌을걸?”
하… 인정은 하기 싫지만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상상을 해봤다.
만약 내가 오늘 로또 20억에 당첨된 사람이라면?
상상만 해도 얼굴이 슬쩍 올라간다.
입꼬리가 자동으로 45도 상승!
그때 누군가가 와서
“너 그때 그랬잖아!”
“난 그렇게 봤어!” 하고 고구마 3만 개를 들이밀어도…
내가 과연 신경을 쓸까?
상처 받을까?
억울해서 잠이 안 올까?
그 사람 말 때문에 기분이 바닥날까?
아니.
아마 마음속에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그래~ 그러셔~ 난 지금 행복하거든.”
행복한 사람에겐 고구마 따위는
과자 부스러기보다 작다.
기분이 부자가 되면, 감정이 부스러워진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고구마를 너무 많이 먹어 목이 막히면… 로또를 사자!
진짜 복권이 아니라, 마음속 주문 말이다.
“오늘 나는 20억에 당첨된 사람이다.”
이 주문 하나면
나에게 고구마를 안겨준 그 사람은
삶에서 아주아주 미세한 점 하나가 된다.
고구마는 그대로지만,
내 마음의 그릇이 커지면서
삼켜낼 힘이 생긴다.
자존주의란, 결국 이거 아닐까?
누가 나를 어떻게 보든
내가 나를 더 크게, 넓게, 단단하게 만드는 마음.
목이 메일 때마다,
고구마를 던지는 사람보다
내 마음의 크기를 먼저 떠올리는 것.
오늘도 주문을 걸어본다.
“나는 지금, 20억 자산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