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섯, 나는 다시 신입사원이 되었다. 004
직원들이 여름휴가를 마치고 하나둘 돌아왔다.
빈자리가 채워지니 사무실 공기가 달라졌다.
한동안 텅 빈 책상들만 남아 고요했던 풍경이,
오늘은 북적거리고 활기가 도는 듯했다.
사람이 많아지면 일이 늘어날 줄 알았다.
보고서가 쏟아지고, 전화가 빗발치고,
내 자리에도 일이 몰려올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여전히 ‘낯선 손님’ 같다.
내 자리만 슬로 모션이 걸린 듯,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전쟁 같은 하루가 다시 시작되었다.
새로운 제안서.
하지만 내 눈에는 하얀 문서 위의 글자들이
검은 개미들처럼만 보인다.
읽고, 또 읽고.
연습장에 정리했다가 지우고,
다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바닷가 모래 위에 글을 쓰듯
눈 깜짝할 사이에 흔적이 사라진다.
‘한 발 다가갔다 싶었는데,
다시 제자리네.’
내 안에서 자꾸만 이런 중얼거림이 올라온다.
옆자리에서 들리는 경쾌한 키보드소리가
나를 비웃는거만 같다.
간간이 들려오는 대화와 웃음소리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위축된다.
다들 바쁘게 글을 쓰고 있는데,
나는 눈치 보듯 조기 퇴근을 한다.
“할 일 없으면 퇴근하세요~~”라는 말이
벽돌처럼 가슴에 내려앉는다.
결국, “먼저 가보겠습니다.”
말을 남기고 혼자 사무실을 빠져나온다.
집에 와서 밥을 먹지만
머릿속은 온통 ‘회사’ 생각뿐이다.
야근한다고 투덜대던 동료들의 모습이
왠지 부럽다.
서툴더라도 그 속에 나도 섞이고 싶은데,
오늘도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아직은 내가 설 자리가 없다.
그걸 알면서도 마음이 허전하다.
밥만 먹으려니 목이 메인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생각한다.
‘내가 부족한 걸까?
아니면 인턴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 이런 고민조차 꼰대 같아 보이는 건 아닐까?’
내 마음은 여전히 20살 신입사원 때처럼
설레고 배우고 싶을 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인 것 같은데,
현실은 “연장자 먼저 드세요”라는 말을 듣는
대한민국 46살 인턴.
내가 연장자라는 사실이 낯설고도 어색하다.
접시에 음식을 먼저 담으면서
묘한 씁쓸함이 스친다.
막내이기만 했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소주잔 속에서 또 다른 질문들이 피어오른다.
‘대표님은 왜 나를 뽑으셨을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역량은 뭘까?
지금이라도 더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제가 해보겠습니다!”라는 말조차
쉽게 꺼내지 못한다.
열정 넘치는 신입이 아니라
어르신 같은 꼰대로 보일까 봐.
마흔여섯의 인턴은, 그저 망설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믿고 싶다.
언젠가 회사에서
“그래도 괜찮은 직원이야.”
라는 말을 듣게 될 거라고.
그날이 오면 오늘의 고민들을
웃으며 회상할 수 있겠지.
“그땐 참 별거 아닌 걸로 고민했네” 하면서.
그래서 오늘 나는 다짐한다.
행복하자.
행복하게 일하자.
일이 있다는 게 행복이고,
에어컨 바람에 소름 돋는 것도 행복이고,
점심 메뉴를 두고
“오늘은 제육? 김치찌개?”
고민할 수 있는 것도 행복이다.
어쩌면 시한부 같은 인턴의 시간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충분히 가치 있다.
흐린 날은 쉽게 잊지만,
구름이 끼든 비가 오든
해는 언제나 떠 있다.
내일의 나는 어떤 퇴근길에 설까?
흐릴까, 비가 올까?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내 안의 해를 잊지 말자.
비가 그치고 나면,
나는 더 아름다운 무지개를 품고
활짝 피어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