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섯, 나는 다시 신입사원이 되었다. 006
세 번째 제안서 제출일이었다. 나는 또 좌절했다.
3페이지 중 2페이지는 어떻게든 채웠다.
파트장님의 지도와 샘플 자료 덕분에,
비슷하게라도 흉내를 낼 수 있었다.
문제는 마지막 한 페이지였다.
샘플도 없고, 감도 오지 않는 영역.
하얀 화면만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결국 머릿속도 백지가 되어버렸다.
세 번이나 만들어 보여드렸지만 돌아온 대답은 같았다.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말은 짧았고, 마음은 무너졌다.
다른 선배들은 이미 수십 페이지를 끝내고
내 페이지만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결국 지친 사수님이 말했다.
“일단 과장님 방식대로 해보세요.
마무리는 제가 정리할께요.
나중에 비교해서 한번 보세요.”
〈참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명함만 과장인 신입직원이다. 〉
그 말은 곧,
‘더는 못 기다리겠다’는 뜻이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행히 사수님의 손길 덕분에 제안서는 8시 전에 제출됐다.
제출 버튼을 누르는 순간,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답답함이 밀려왔다.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잘하고 싶은데…’
“야, 삼겹살 가자!”
파트장님의 외침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집에 가려다, 길을 막고 있던
대리님의 차 때문에 멈칫했다.
그때 파트장님이 물으셨다.
“같이 삼겹살 드시러 가실래요? 시간 되세요?”
“아… 네, 좋습니다! 제가 불편하지 않으시다면요~”
그렇게 따라간 삼겹살집.
비공식적인 첫 회식이었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에
긴장감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자, 한 잔 합시다!”
파트장님이 소맥잔을 주셨다.
짠.
첫 잔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마음 한쪽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술이 풀어준 대화
“얘기 들어보니까 어제 소개팅 했다면서요?”
옆자리의 신입 직원분의 소개팅 얘기로
분위기는 더 재미있어졌다.
풀어져가는 분위기에 나도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도… 그냥 신입으로만 봐주시면 좋겠어요.
나이 많은 신입 말고 그냥 신입이요~.”
“내일부터 재니야~라고 말놓으면 되어요?”
파트장님의 농담섞인 말투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예~~ 막 대해주세요. 부탁이예요.”
하하호호 기분좋은 웃음들이 번졌다.
여러 회사를 다녀봤지만, 이렇게 사람이 좋은 곳은 드물었다.
대표님도, 동료들도 마음이 따뜻하다.
물론 나는 아직 ‘신입’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지만,
적어도 ‘사람 때문에 힘들다’는 말은 이곳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밤을 새워도, 일에 치여도, 왠지 이곳에서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책도 못 읽고, 공부도 못 한 하루였지만
오늘은 사람들과 조금 더 가까워진 하루.
나는 그렇게 또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간 것 같았다.
내일은 더 성장한 내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을 조용히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