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섯, 나는 다시 신입사원이 되었다.11
어느새 8번째 제안서일까
이제는 몇 번째인지 기억이 안 날 만큼
시간이 많이 지난 걸까.
이번 제안서는 제출할 페이지 수가 적고,
시간은 촉박했다.
신입인 나와,
나보다 한 달쯤 뒤에 들어왔던
대한민국 3대 대학 출신의 고학력 신입
우리 둘에게 각각 1페이지의 미션이 주어졌다.
이전 제안서에서
그래도 적지 않은 ‘고침 후 통과’를 받으며
두려움은 조금 줄었지만,
이번엔 한 페이지에 담아야 할 내용이
너무 많았다.
“아오~ 이 작은 페이지에
그 많은 내용을 어떻게 다 채우지?”
고민하고, 고치고,
사수의 피드백을 받고,
다시 고치기를 여러 번.
겨우 완성했다.
다른 분들의 페이지에 비하면
아주 적은 분량이지만,
완성된 제안서들을 볼 때면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져서
보고 또 보게 된다.
야근 후 제출을 마치고,
늦게 출근했지만 피로감은 여전했다.
테라스에 잠시 앉았다.
그동안은 흡연 공간이라 피했는데,
살살 바람이 부는 테라스에 앉아 있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출장 간 직원들 없이
모두 모여 담소를 나누던 그 시간,
‘아, 이제 정말 직장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오랜만에 웃고 나서
사무실로 돌아와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 영상 파트장님이 오셨다.
실행해야 할 과업 이야기를 나누다
영상 관련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내가 아는 범위에서 말했는데,
파트장님은 다른 관점으로 보고 계셨다.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내가 답답해 보이셨던 것 같다.
나도 내 입장을 분명히 하려 했지만,
작은 오해가 갈등으로 번졌다.
서로 “오해였다”고 말하며 퇴근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예상치 못한 큰소리에 당황했고,
계속 그 장면이 떠올랐다.
퇴근길에 동료를 태워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똑똑한 그 친구는 차분히 말했다.
“아마 상황이 그래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렇게 오해가 생긴 거예요.”
짧은 말이었지만,
그 한마디가 위로가 되었다.
그래도 집으로 오는 길엔
머리가 무겁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생각 끝에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나이가 쌓일수록 지켜야 할 건
자존심이 아니라 ‘마음’ 아닐까.
먼저 용기를 내자.
내일 어색해지고 싶지 않았다.
'파트장님, 미팅 때 PM님이 직접 찍고
편집하시겠다고 하셔서 깊게 생각 안 하고
편하게 생각했던 거니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미팅 때 꼭 재확인해보겠습니다.
졸려서 제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ㅎㅎ
부족한 부분은 많이 알려주세요.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더 노력할게요.
좋은 저녁 시간 되세요.'
다행히 답장은 바로 왔다.
'오해 안 합니다, 과장님!!
이렇게 톡 주셔서 더 오해 안 해용ㅎㅎ
감사합니다!!
제가 왜 말씀드렸는지는
조만간 커피 데이트하면서 설명드릴게요.
저도 아까 말씀드릴 때 더 차분히 설명드릴걸요.
과장님 좋아하니까 오해는 말아주세용.'
용기 내서 문자를 하지 않았다면
오늘 밤 잠 못 잤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이제는 마음이 편하다.
갈등이 생긴다는 건,
그만큼 일에 몰입하고 있다는 뜻 아닐까?
이제 정말 ‘신입 티’를 조금씩 벗어가는 걸지도.
갈등이 있었지만,
기분 좋은 마무리였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나이가 많아서 생겨나는
‘늙은 신입’의 조금은 다른 상황들.
그게 또,
조금은 기대되고,
조금은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