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크기가 같아요!

이혼이 뭐 어때서! 그래서 너는 행복해? 7

명절만 되면, 언니의 오랜 친구인 그 언니를 만난다.

몇 년에 한 번일 때도 있고, 연달아 마주칠 때도 있다.

만나기 전부터 장면이 그려진다.

인사하고, 웃고, 그리고… 늘 같은 대화가 시작된다.

“언니, 오랜만이에요.”

“그래, 잘 지냈어?”

나는 습관처럼 밝게 대답한다.

“네. 저는 요즘 너무 행복해요.”

그리고 잠깐의 정적.

언니는 늘 같은 대답을 되돌려준다.

“너는 좋겠다.”

“언니는 어때요? 아직도 남편이 힘들게 해요?”

나는 웃으면서도 마음 한쪽이 무거워진다.

언니의 대답이 이미 예고되어 있으니까.

“응… 미칠 것 같아.”


언니는 오래전부터 힘들어했다.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욕하고,

그 싸움의 크기가 ‘부부싸움’이라는

단어로는 모자랄 정도였다.

‘와… 저렇게까지 하면서 어떻게 같이 살지?’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되뇌었다.

그런데도 언니는 매년 그 자리에 있었다.

가끔 마주칠 때마다 10년이 넘게 흘렀지만,

언니는 “여전히” 그 집에 있었고,

"여전히” 남편 욕을 했다.

“이번엔 또 뭐 때문에 싸웠는데?”

“그 인간은… 말이야. 하…”

가끔은 툭 던지듯 이런 말도 한다.

“나도 이제 그냥… 각자 살기로 했어.”

“이성 친구? 뭐, 있지. 남편도 그런 것 같고.”

그 말이 더 서늘하게 들렸다.

‘각자 살기로 했다’는 말은

어른들의 휴전처럼 들리지만,

아이들도 그걸 휴전으로 느낄까?


나는 몇 번이나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니… 이혼할 생각은 없어요?”

“이 정도면… 언니가 너무 힘든 거 아니에요?”

그러면 언니는 얼굴을 굳히고,

마치 정답을 외우듯 말한다.

“아이들이 어리잖아.”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살 거야.”

“둘째 스무 살 되면… 그때 헤어지지.”

매년 똑같은 멘트.


그 말이 반복될수록, 내 의문은 더 선명해졌다.

아이들은, 그 집 안에서 정말 행복할까?

‘온전한 가정’이라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엄마 아빠가 한집에 같이 있으면 온전한 걸까.

아니면…

아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이 온전한 걸까.


나는 한 번, 아주 조심스럽게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부모가 맨날 싸우는 집은…

이혼을 했든 안 했든,

아이에게 남는 상처의 크기가 같아요.”

언니는 말이 없었다.

그 표정이 ‘반박’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걸 나는 안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 역시 “아이 때문에”라는 말을 붙잡고

긴 시간을 버틴 적이 있다.


그런데 상담실에서 들은 말 하나가

나의 마음을 울렸다.

이혼 직후, 나는 상담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저 결국 이혼하게 됐어요.”

민망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놀랍도록 담담하게 말했다.

“잘하셨어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혼 전에는요,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이 커서

아이에게 온전히 에너지를 주지 못했을

가능성이 커요.”

“이제는 그 에너지를 온전히 아이에게 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아… 이혼 자체가 문제가 아니구나.’

어떤 집은 겉으로는 ‘온전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사랑은 계속 새고,

에너지는 계속 미움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아이는 그 흐름을 매일 배운다.


나는 여전히 믿는다.

이혼이 정답인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누군가는 끝까지 붙잡아서

더 단단해지기도 할 테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겉모습을 지키느라

아이에게 줄 사랑을

미움에 다 써버리는 집이라면,

그 ‘온전함’은 정말 누구를 위한 걸까?


그저 겉으로 좋아 보이는 그 선택은

어쩌면,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독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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