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주의 8
가끔 제테크 유튜브나 교육 영상을 본다.
처음엔 의욕이 넘친다.
“오… 맞아.”
“그래, 나도 이제 좀 달라져야지.”
영상 속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부자는 작은 습관에서 갈립니다.”
“하루 커피값 5천 원만 아껴도
1년에 180만 원입니다.”
여기서부터 내 표정이 미묘해진다.
고개는 끄덕이는데
마음은 자꾸 계산기를 두드린다.
‘하루 5천 원이면…’
‘한 달이면…’
‘1년이면…’
그러다 문득 내 손에 들린 라떼가 보인다.
아. 그 순간 라떼가 죄인이 된다.
“아… 그래서 내가 아직 이 모양인가?”
“혹시… 이게 다 이 라떼 때문인가?”
라떼 한 잔 들고 괜히 인생 반성 타임.
그래서 가끔은
라떼 향이 그렇게 땡기는데도 혼잣말을 한다.
“야, 오늘은 참자.”
“믹스커피도 커피야.”
“부자는 원래 이런 거 안 마셔.”
그러고는 믹스커피를 탄다.
컵을 들고 한 모금 마시는데…
음.
맛의 문제가 아니다.
기분이 안 오른다.
아낀 느낌은 있는데
기뻐지지는 않는다.
왠지 내가 나한테 너무 짜진 기분.
그때 깨달았다.
아, 이건 절약이 아니라
나를 쪼그라뜨리는 거구나.
나에게 라떼 한 잔은 사치가 아니다.
아껴야 할 돈이 아니라, 충전해야 할 감정이다.
마음이 이유 없이 가라앉은 날,
혼자 있고 싶은 날,
사람들 사이에 있는데도
유난히 혼자인 것 같은 날.
그럴 때 라떼 한 잔을 주문한다.
“따뜻한 라떼 하나 주세요.”
그 말 한마디만 해도
이미 마음이 반쯤 풀린다.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따뜻한 햇살 아래 앉아서
라떼를 한 모금 마시면
이상하게 숨이 돌아온다.
책을 펼치든,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보든,
그 시간만큼은 누구한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어른들의 시간에는 가끔 외로움이 있다.
늘 사람은 많은데,
내 말을 “듣는” 사람은 많은데,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는 시간.
가족과도 늘 이런 대화만 오간다.
“밥은 먹었어?”
“숙제는 챙겼고?”
“오늘 뭐 했어?”
근데 말이다. 가끔은 이런 말도 하고 싶다.
“나 오늘 좀 힘들었어.”
“아무 일도 없었는데 괜히 마음이 가라앉았어.”
그 말을 어디에도 못 꺼낼 때가 있다.
그럴 때 라떼 한 잔은 말 없는 친구가 된다.
아무 조언도 안 하고,
아무 질문도 안 하는데
그냥 옆에 있어 주는 존재.
맞다.
라떼는 비싸다.
라떼 한 잔, 두 잔 모으면
빌딩은 못 사도
뭐 하나쯤은 더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걸로 내 마음의 여유를 사고 싶다.
내 자존감을 충전하고 싶다.
“그래서 넌 부자가 안 되는 거야~”
누가 이렇게 말해도 좋다.
응. 맞아.
그래도 나는 라떼를 마신다.
남들이 뭐라 해도 나를 조금이라도
나답게 만들어주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곧 죽어도 간다.
Go. 진행시켜!
그런 의미로 오늘도 나는 라떼를 마시러 간다.
빌딩은 없지만,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나를 여유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줄,
나의 자존감을 빵빵하게 충전시켜줄
라떼를 마시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