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충고는 없다.

자존주의 7

너무나 착한 동생이 있다.

볼 때마다 늘 이런 생각이 든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예의가 바를 수 있지?’

나이 차이가 무려 열세 살.

그런데도 말투, 태도, 표정까지

언제나 조심스럽고 공손하다.

그런데 어느 날,

지인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동생 있잖아…

사람들이 은근히 안 좋게 말한 적도 있어.”

순간 이해가 안 됐다.

저렇게 착한 애를? 왜?

그래서 직접 물어봤다.

“너, 사람들이 너 나쁘게 말한 적 있대.”

그러자 동생이 웃으면서 말한다.

“누나… 나 예전에 쌈닭이었어.”

“…뭐?”

이야기는 이랬다.

동생이 볼링을 치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다가와 한마디씩 얹는다.

“자세는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치면 안 되지.”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들은 정말 한마디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동생은

그 한마디를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폭발했다.

그러자 상황은 이렇게 바뀐다.

“쟤 왜 저래?” “성격 이상한 거 아니야?”

이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공감이 됐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사람들은 착해 보이는 사람에게

유독 이렇게 말한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이건 충고야.”

“이 정도 말도 못 들어?”

그런데 참 신기하다.

그 잔소리를 하는 사람들,

정작 자기 인생은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

왜 그럴까.

자존감이 없을 때의 나는

그 말들을 곧이곧대로 들었다.

‘내가 이상한 건가?’ ‘내가 부족한가?’

하지만 자존감을 조금 되찾고 나서 보니

그들은 그냥…잔소리쟁이들이었다.

더 엉망인 삶을 살면서 착해 보이는 누군가에게

훈수 두고 싶었던 사람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굳이 잔소리 많은 사람을

가까이 두지 않는다.

사람이 잔소리로 바뀔 거라 믿는 건 착각이다.


이 말은 부모에게도 꼭 하고 싶다.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건

부모의 말이 아니라 부모의 행동이다.

집안의 분위기고, 평소의 습관이다.

아이가 달라지길 원한다면

아이를 바꾸려 하지 말고

내가 먼저 그렇게 살면 된다.


잔소리는 아이를 바꾸지 못한다.

상처만 남길 뿐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잔소리는 더 쥐약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큰 깨달음이 있거나,

마음이 울리는 순간이지

말이 아니다.

믿음이 없는 사이에서 건네는

아름다운 충고는

대부분 상처주는 잔소리일뿐이다.


그래서 나는

내 자존주의를 이렇게 정리한다.

함부로 충고하지 말 것.

함부로 충고받지도 말 것.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건 결국 나뿐이다.

남들 말에 상처받지도, 흔들리지도 말자.

스스로 나를 인정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일요일 연재
이전 06화바위틈에서 꽃을 피운 민들레홀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