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말티즈가 행복한 이유

자존주의 13

사람들이 장항준 감독을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눈물자국 없는 행복한 말티즈.”

이 표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웃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다.

늘 유쾌하고,

늘 웃고 있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편안해 보인다.

왠지 이런 느낌이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혼자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말티즈.


그래서인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편안해 보일까?

예전에 장항준 감독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공부를 못하는 자신이 너무 속상해서

울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아버지가 와서 이렇게 이야기하셨단다.

“나도 공부 못했는데 사장 됐잖아.”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지.”도 아니고

“지금부터라도 공부해.”도 아니다.

그냥 “그래도 괜찮다.”

이 말 하나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 건

대단한 교육이 아니라

이런 믿음 하나 아닐까?

“그래도 괜찮다.”

이 말을 듣고 자란 사람은

세상이 조금 덜 무섭다.

넘어져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

마음 어딘가에

이 문장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아.”


하지만 세상에는

이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하고

어른이 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자꾸 스스로를 의심한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지?”

그럴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해줬으면 좋았던 말을

내가 나에게 해주면 어떨까?


“괜찮아.”

“그래도 잘 살 수 있어.”

자존주의란 어쩌면 이런 태도 아닐까?

누군가가 나를 믿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나를 믿어주는 것.

그래서 오늘도 나에게 이렇게 말해본다.

“괜찮아.”

“너도 잘 살 수 있어.”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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