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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남 Jan 07. 2020

내 어린 친구 토바(Tovah)

지란지교를 꿈꾸며

 어린 친구 토바(Tovah)


애틀랜타를 떠나 고속도로 75번으로 진입했다. 시속 100Km 이상의 속도로 한 시간 넘게 달리고 있었다. 낯선 도로에서 운전하니 다소 긴장이 되긴 했지만, 곧 토바를 만날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내 어린 친구는 얼마나 변하고 성장했을까?’ 이제 곧 16번 고속도로로 진입해야 했다. 앞으로 한 시간은 더 달려야 할 듯싶었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것은 사바나 해변에서였다. 여러 명의 아이가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유독 그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금발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어린아이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노는 모습이 귀여웠다. 내 딸 선영이보다는 몇 살 많아 보였다. 들고 있던 카메라에 친구들과 놀고 있는 그 아이의 모습을 여러 컷 담았다. 


애틀랜타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해외 출장을 왔다가 주말을 이용해 조지아주 해안에 있는 사바나까지 먼 길을 운전해 왔다. 대 여섯 시간 운전해 돌아갈 길이 꿈만 같았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그 아이가 다가와서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사진을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아이는 내가 자신의 모습을 찍고 있는 것을 의식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주소를 알려주면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잠시 후 아이의 엄마가 와서는 가벼운 인사를 하고 주소를 적어 내게 건네주었다.

“Tovah Shoup

1821 New Buckeye Rd.

East Dublin, GA 31027 USA”

이후 내 친구가 되었던 그 아이는 Dublin에 사는 Tovah Shoup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필름을 인화해서 안부 편지 그리고 예쁜 드레스를 토바에게 보냈다. 토바는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와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 후로도 우리는 수년간 일상적인 내용을 담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몇 년이 흘러 또다시 애틀랜타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나는 토바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이번 기회에 한 번 보면 좋겠다고 했더니 자기 집으로 와 주면 좋겠다고 했다. 


더블린으로 가는 회색 길은 가끔 차 한 대 만날 정도로 매우 한적했다. 도로는 직선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고 하늘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주변은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으며 커다란 나무가 간헐적으로 늘어져 있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더블린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거의 다 온 듯싶었다. 잠시 후 팻말을 따라 441번 국도로 들어서 조금 더 달리니 더블린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왔다. 


토바의 집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기 위해 주소를 들고 눈에 띄는 잡화점으로 들어갔다. 젊은 흑인 여성 2명과 나이 들어 보이는 동양계 아주머니 한 분이 있었다. 아주머니는 토바의 집으로 가는 길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나에게 일본 사람이냐고 물었다. 나는 돌아서서 아주머니의 눈을 바라보며 한국 사람이라 했더니 환하게 웃으시며 자신도 경상도 어느 도시 출생이라고 했다. 이후 우리의 대화는 차 한잔을 마시며 오랫동안 이어졌다.


잡화점을 운영하는 아주머니는 주한미군으로 온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여 이곳에 정착하여 수십 년을 살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자식 이야기며 이곳은 남부 시골이라 아직도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해 흑인이 출입 못 하는 식당도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다 작별 인사를 했다.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한참을 가니 ‘초원의 집’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한 집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저곳이 토바의 집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바의 부모님과 8형제가 나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선물로 가져간 도자기로 된 오르골을 토바에게 주었다. 토바는 오르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수시로 고맙다고 말했다. 선물이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당시 토바는 ‘Home schooling’을 통해 교육을 받고 있었다. 물론 선생님은 그 아이의 엄마였다.

토바와 함께 집 주변 오솔길을 산책한 후 가족과 함께 시내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다 애틀랜타로 돌아왔다.


어느 멋진 날, 토바는 곧 10살이 된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훗날 7학년이 되었다는 소식도 보내왔고, 어느 날은 그 아이의 언니와 오빠가 졸업한 ‘Dublin High School’을 갈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왔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토바의 전부다. 


1985년에 태어난 내 어린 친구 토바는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토바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왜 나는 꾸준히 연락하지 못했을까? 그 아이가 보낸 수많은 편지에는 아직도 주소와 전화번호가 남아 있는데 말이다. 


오늘 토바에게 편지를 썼다. 토바에게 보낼 편지를 들고 봄 햇살이 들어오는 중앙우체국 창가에 서서 설레는 마음으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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