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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남 Jan 24. 2020

안녕, 나의 천사 - 나흘의 기록

내 딸 선영이

안녕나의 천사 - 나흘의 기록 

  

그날 아기는 엄마 배를 가르고 세상의 빛을 보았다.

 경이로운 일은  나이  27 11개월  일어났다.’


1989. 6. 23(금) 

아침 일찍 병원에 도착하니 아내는 벌써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실 앞에서 한참이나 기다렸다. 오전 7시 50분쯤 간호사가 곧 수술한다고 알려주었다. 눈을 감고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았다. 심장이 뛰고 숨소리마저 느낄 정도로 주위는 고요했다. 산모와 아기가 무사하기를 기도했다. 지금까지 그리 간절해 본 적이 없었다. 8시 20분쯤 의사가 나왔다. “예쁜 공주님입니다. 축하합니다.”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한 귀여운 아기의 아빠가 된 것이다. 눈물겹도록 기쁜 일이다.

 

아내는 의식 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고 저만치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기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얼마 후 의식이 돌아온 아내는 가끔 신음을 내는 걸 보니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빨리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AM 10:00) 


내 아기는 1989년 6월 23일 금요일 오전 8시에 태어났다. 무게는 3.4kg, 키는 49cm이고 혈액형은 A형 RH+이었다. 


출생 장소: 김신근 산부인과

소재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라이프 쇼핑센터 2층

의사 이름: 김신근

간호사 이름: 정순이, 현미선, 김복실

 

이 경이로운 일은 내 나이 만 27세 11개월 때 일어났다. 

창문 너머로 우리 아기를 보았다. 갓 태어난 아기는 좀 이상스럽던데 내 아기라 그런지 정말 귀엽기 그지없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아기가 조금 커서 재롱부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행복하다는 느낌이 한없이 밀려왔다. (PM 7:50)


1989. 6. 24(토) 

입원실에는 침대가 2개 있고 그사이에는 두 평쯤 공간이 있었다. 아내는 밤새 서너 번 일어났지만, 무사히 밤을 보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불과 하루 지났는데…….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가 들리는 방까지 가 보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저 마음만 아플 수밖엔. (AM 8:00) 


오후 6시, 퇴근 후에 다시 병원으로 왔다. 아내는 표정이 없었다. 기운마저도 없어 보였다. 말하거나 웃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나도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간호사에게 부탁하여 아기를 보았다.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모습이었다. 조심스레 안아 보았다. 

사랑스러운 나의 아기. (PM 9:00) 


1989. 6. 25(일) 

어젯밤에도 아내는 여러 번 일어났었다. 열도 좀 있었다. 어제부터는 소변을 보러 직접 화장실에 가곤 했는데 처음에는 몹시 힘들어하더니 몇 번 해보고 나서는 잘하는 것 같았다. 회복실 쪽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내도 이젠 한결 편해진 모양이었다. 심통도 부리니 말이다. (AM 7:00) 


오전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오셔서 아기를 보시고 저녁 무렵에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오셔서 아기를 보았다. 모두 예쁘다고 말씀하셨다. 예쁜 아기 모습이 항상 눈에 선했다. 자꾸 보고 싶어 졌다. 이 아기가 빨리 자라서 한 번 꽉 안아보고 싶었다. 


아내의 회복 속도가 제법 빨라지고 있었다. 이젠 말도 잘하고 평상시와 같이 심술도 부리고 뭐 그렇다. 내일쯤이면 완전히 나아질 것 같았다. 오늘 우리 아기 사진을 찍었다. 잠든 모습을. 그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나의 천사, 나의 아가. (PM 8:00)


1989. 6. 26(월) 

어제는 늦게 집에 가서 자고 오늘 아침 일찍 처제와 함께 병원으로 왔다. 처제는 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출근하고 나 혼자 아내 옆에 남았다. 나도 30분 후면 출근을 할 예정이었다. 처제가 가기 전에 아기를 보고 싶어 했지만 볼 수는 없었다.


아내는 오늘 새벽에 드디어 가스가 나왔다고 했다. 어제보다 더 많이 회복될 것 같았다. 우리 아기도 좀 더 컷을 테지. 우유도 제법 잘 먹는 것 같았다. 신생아실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기의 울음소리인지 구분은 안 되었지만 무척 신경이 쓰였다. (AM 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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