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는 한잔만 - 2
와일드터키 라이 40.5
그런 날이 있다.
갑자기 먹먹해지는 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가장 문제인 날. 일상이 문제가 있거나, 집안에 일이 있거나, 회사에서 깨지거나 한 날이 아니다.
그냥 그런 날이다. 아무 일이 아닌데 그냥, 말 그대로 그냥 오늘이 숨쉬기 힘든 날.
뭐, 사실. 그리 큰일이 생기지도 않는다. 일상이 반복될 때 그 일상의 감사함을 잊는 게 아닐까 하는, 그래서 이런 복에 겨운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날이다.
와일드터키는 그래서 81이나 101이 아닌 라이로 선택했다. 라이는 호밀을 사용하는 술이다. 그래서인가 미국의 버번에 비해 강하다. 라이가 이런 맛이었지 하는.
첫맛에 약간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잘 모르는 향이 있다. 후추? 같은 느낌으로 훅 치고 들어온다. 글렌캐런 잔이 향을 잘 느끼게 해 줘서일까? 훅하고 들어오는 강한 향은 코 끝을 탁 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위스키 특유의, 강한 도수가 목을 타고 넘어간다. 전반적인 향이 섬세하기보다는 강하고 세다. 아니 쎄다.
라이를 처음 접한 건 불릿이라는 술로 접했다. 삼십 대에 이런저런 인맥으로 알게 된 빡빡이 한 명이 있었다. 정말 신기한 친구였고, 동갑내기라서 금세 친해졌지만 생활수준의 차이로 금세 멀어졌다.
그 친구는 꽤 부유했고, 나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조금 어려움을 느끼는 수준이었다. 아구정에 사는 그 친구는 매일같이 바를 갔고, 바텐더 전부와 사귀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빡빡이는 성격이 참 좋았고, 말빨도 좋았다. 늘 정장을 입고 다녔고, 땀을 흘리지만 매너로 모든 걸 커버했다.
그때 배운 술이 불렛이었다. 근데 그때는 버번으로 알고 있었는데, 딜런바에 오니 불렛 라이가 있었다. 이거도 한번 마셔봐야지.
그나저나 호밀이라는 건 정말 익숙하지가 않다. 호밀밭의 파수꾼, 호밀빵 정도를 제외하면 호밀이라는 친구를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잘 안 어울리는 친구였을까?
그래서인지 빡빡이가 가끔 그립다. 이름도 기억이 안 나지만, 그 모습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역시나 사람은 특징으로 기억하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