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해를 봐서일까. 집에 있는 캠핑의자를 베란다에 펼치고 앉았다. 해가 중천을 지나 이제 저녁으로 가는 즈음, 요즘 같은 선선한 날씨에는 집에서 가끔 마시는 로얄 샬루트 21년을 꺼내본다.
나는 원래 위스키를 전혀 모른다. 첫 글에서도 말했지만 어둡고 음습한 곳에서 니트가 아닌 원액이라 하는, 온더락이 아니라 얼음에 희석해서 먹는다는 이야기가 당연한 곳에서 마셔본 술이 양주였고, 위스키였다.
글렌으로 시작하는 위스키 종류들은 당연히 본 적도 없고, 꼬냑이니 버번이니 하는 술은 구경도 한 적이 없었다. 그저 소주, 맥주, 막걸리, 가끔 소맥. 이게 술이었고 취한다라는 목적을 위해 목구멍으로 넘기는 행위가 전부인 그런 날들이었다.
그러던 중에도 가끔은, 좋은 술이라도 대접을 하거나 받을 때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참 우스운 일인데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약은 찾아다니지만 좋은 술을 찾은 적은 없었다. 선물용으로 어르신들에게 드린다는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좋은 술을 접하게 되는 날에 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조니워커 종류이다. 조니워커에 대한 이야기도 할 말이 많지만, 30대 후반을 지나면서는 조니워커도 블루까지 올라가게 되는데, 이때에 같은 급으로 등장하는 친구가 바로 로열 샬루트이다.
로열 샬루트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그 와중에 제일 대접받는 느낌으로 자주 보는 위스키가 로얄 샬루트 21년이다. 싱글몰트가 아니고 블렌디드 위스키이니 최소 21년 이상 숙성된 원액들을 가지고 블렌드를 했을 것인 이 술은, 파랗고 극세사 재질의 보자기(?) 같은 것에 싸여서 제공되곤 했던 기억이 있다.
로얄 샬루트는 블렌디드 위스키에 대한 생각을 딱 잡아주는 그런 느낌이다. 맛이 굉장히 일정하다는 느낌을 준다. 다만 오늘 마시는 술은 집에서 마시는 술이라는 특징이 있다. 즉, 오픈한 지 좀 된, 친구들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확실히 향은 좀 많이 날아간 느낌이다. 새 병이 있으니 오픈하면 다시 알 수 있겠지만, 오늘의 로얄 샬루트는 조용하고 은은하기만 할 뿐이다.
맛은 굉장히 부드럽다. 아마도 부드럽다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위스키가 아닐까 싶다. 40도가 넘은 술이 부드럽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첫맛은 "달다"라는 느낌이다. 입에 들어오면서 바닐라향이 살짝 느껴지는 듯하다가 바로 초코렛향이 난다. 피트향은 거의 없고 오래 숙성된 위스키 특유의 부드러움이 입안을 감싼다. 그리고 증발하듯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면서 피니시는 강하지 않게, 하지만 확실하게 위스키임을 남긴다.
가만 보면 재미있다. 라이 위스키를 마시면 스파이시함이 강하게 남아서 혀에 아린 맛이 남아돌며 피니시가 코와 혀 뒤편에 강하게 남는데, 오히려 고숙성의 위스키는 부드럽다는 말이 어울리게 넘어간다.
그런데 인생이 그런 거 아닐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처음에는 독기가 쎄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모두는 각자의 상황과 생각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사람이 유해지게 된다. 자주 하는 말인데,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거기다 공기에 오래 노출된 위스키는 향도 약해지명 더욱 맛이 부드럽게 안정되는 느낌이 든다. 사회에서 아등바등하다가 조급한 생각을 버리게 되면서 독기가 빠진다. 고집을 버리게 되고, 조근 더 유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