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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무인연

달나라 토끼님, 어떤 나무가 좋으신지요?

계수나무의 비밀




산책을 하다가 수형이 아름다운 나무를 만났습니다.

'어? 여기에 이런 나무가 있었나?" 할 정도로, 반려견들 때문에 하루에 꼭 두 번씩 산책을 나가는데도 수형이 이렇게 아름다운 나무는 처음 보았지요. 2년 전 나무가 많은 동네에 이사를 온 덕분에 산책길이 매번 즐겁고 행복합니다. 어떤 나무일까 궁금하던 차에 나무에 달아놓은 표식이 있어 보았더니 '진짜?' 하고 환성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듣고 불렀던 동요에 나온 계수나무였으니까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모두 알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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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에 무심코 노래만 흥얼거렸지, 노래에 나오는 계수나무가 이렇게 근사하게 생긴 나무였는지 처음 알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뭐든 처음 알게 되는 것은 놀랍고 설레는 법!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가 계수나무에 대해 폭풍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더 놀라운 사실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데, 계수나무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싶었지요.


♣ 계수나무에 얽힌 놀라운 진실!


계수나무는 한자로 桂樹라고 씁니다. [ 桂 계수나무 계] 자에, [ 樹 나무 수] 자 지요. 그런데 이 ' 桂'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나무 목木] 자에 [홀 규圭] 자를 결합한 모습입니다. [홀 규圭] 자는 '상서로운 구슬'을 뜻하는 [옥 규玉圭] 자를 회의문자로 나타낸 것인데, 신하를 책봉할 때 쓰는 문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계수나무의 뜻을 파헤쳐 보면 "상서로운 나무"라는 뜻이 되지요. 동요 속 달의 나라에 계수나무가 등장하는 이유, 짐작이 가지요? 이름에 걸맞게 계수나무는 먼 옛날부터 수많은 민속신앙을 만들어 낸 나무기도 합니다. 이 민속 신앙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기로 하고, 계수나무의 이름에 얽힌 몇 가지 놀라운 이야기를 더 알아보도록 해요.


계수나무를 한자로 쓰기는 하지만 사실 계수는 중국 이름이 아닙니다. 계수나무의 중국 이름은 연향수連香樹로, 하나의 줄기에 연달아 난 이파리에서 향이 난다고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계桂는 일본에서 이 나무에 붙여준 한자명입니다. 일본명으로는 [가쓰라]라고 하는데, 이 일본명을 따서 영어 학명으로 [Katusra tree]라고 부르지요. 계수나무는 실제로 일본과 중국 남부지역이 원산지기 때문에 계수보다는 일본명인 가쓰라 나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네요.


그럼 일본명 [가쓰라]는 무슨 의미일까요? 중국명이 연향수인 것처럼 일본어 가쓰香出는 향이 난다는 뜻입니다. 계수나무의 잎에서 나는 향기를, 향의 원료로 사용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옛날 일본에서는 7~8월이면 계수나무의 잎을 말려서 가루를 내고 향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향으로 제사를 지내 조상의 영혼을 맞았다고 하니 계수나무가 상서로운 나무임은 분명하네요. 일본에서 한자명으로 상서롭다는 의미의 계桂 자를 붙여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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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결국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이름 계수나무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붙여준 한자명이 우리나라로 넘어와서 쓰이게 된 것이에요.




여기에서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을 알아볼까요? 처음에 계수나무가 우리나라 동요에 나온다고 말했었는데,



동요에 나오는 그 계수나무가 지금 우리가 사진으로 보고 있는 계수나무가 아니라는 사실!





동요에 등장하는 계수나무는 사실 중국의 [목서木犀]에 대한 전설이 넘어와 설화로 전해지다가 동요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목서木犀]를 [계수桂樹]라고 부르기 때문에 혼동이 된 것이지요. 아래 사진이 목서입니다.


목서.jpg 출처: https://blog.naver.com/d2027/222015147764



우리가 알고 있는 키가 비죽하니 큰 계수나무보다 이 목서가 토끼가 앉아 방아를 찧었을 법한 나무 같지요? 중국에서는 이 목서가 달에 있다고 믿었는데, 목서를 계수라고 부르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는 목서와는 다른 진짜 계수나무가 달에 있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목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계수나무. 전혀 다른 나무랍니다. 그 때문인지 전해지는 전설도 전혀 다르지요.


계수나무에 얽힌 전설


계수나무(목서)와 관련된 중국의 전설입니다. 오강이라는 사람이 하늘의 진노로 달나라에 가서 계수나무를 베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베는 자리마다 새로운 가지가 돋아나서 오강은 지금까지도 달 한구석에서 크게 자란 목서를 베고 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에서는 토끼가 이 계수나무 아래서 쿵더쿵 방아를 찧으며 떡을 만드는데, 역시 무한 루프로 반복되는 등에 식은 땀나는 형벌보다는, 우리나라의 전설이 훨씬 정감 있고 마음 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 나라로
구름 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어떤 전설이 전해질까요? 사실 계수나무에 관련된 전설은 일본이 가장 많습니다. 계수나무가 민속신앙으로 자리 잡을 정도로 상서로운 나무였기 때문에 쓰임도 많고 이야기도 많지요. 아까도 이야기했듯 일본은 계수나무 잎을 말려 가루를 낸 다음 향을 만들어 제사에 섰습니다. 그 때문에 [향의 나무]라는 방언이 널리 쓰이고 있지요. 계수나무 잎이 가장 향기로울 때가 낙엽이 질 무렵인데, 그 냄새가 간장 같다고 해서 [간장 나무]라는 방언도 생겼습니다.


일본의 아이누 족 전설에 따르면 강물에 떨어진 계수나무의 빨간 싹이 민물고기가 되었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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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계수나무 어린 잎 , 우> 둑중개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우리나라 토속 민물고기이기도 한 둑중개에 이런 예쁜 설화가 있었다니 뜬금없이 둑중개가 부러워집니다.


아이누 족은 계수나무 껍질을 태워서 그 재를 물에 넣고 끓인 다음 식혀서 머리를 감는 용도로 썼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계수나무 샴푸였던 거지요. 또 나무껍질을 삶아 그 물에 밥을 지어 누룩을 조금 넣고 술을 빚기도 했다고 하니 계수나무의 쓰임이 정말 다양합니다. 여기에서 눈치 빠른 분들은 아마 아하! 눈치채셨을 거예요. 계수나무껍질, 바로 계피가 떠오르시지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계피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려져 있습니다. 향기로운 잎부터 계피로 쓰이는 껍질과 수려한 수형까지, 계수나무가 상서로운 이유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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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수나무에 관련된 일본 아이누 족의 재미있는 전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오다스동굴이라는 일본의 옛 영웅에 관한 전설이에요. 어디에 있는 동굴 이름이 아니라, 이름이 오다스동굴입니다.^^



하루는 오다스동굴이 계수나무와 들매 나무로 배를 만들었는데,
만들고 보니 들매 나무 배가 너무 무거운 겁니다. 그래서 들매 나무 배는 만들어놓고 쓰지도 않고
계수나무로 만든 배만 좋아하고 자주 애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배를 매어둔 곳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머리가 긴 여자와 곱슬머리 여자가 엉켜 싸우고 있지 않겠어요? 오다스동굴이 가만히 들어보니 머리가 긴 여자가 하는 말이
"너는 매일 밤 고기잡이에 데리고 나가서 귀여움을 받으니 참 좋지? 나는 언제나 육지에 매여 있으니 마르고 여위어 가고 있는데!"라면서 분통을 터뜨리고 있더라는 겁니다.
오다스동굴은 그 길로 소리 지르는 여자를 칼로 베었고, 여자는 들매 나무 배가 되어 두 동강이 났다고 합니다. 곱슬머리 여자도 상처를 입은 채로 계수나무 배로 돌아갔지요.
오다스동굴은 들매 나무 배를 불로 태워버리고 다시는 들매 나무로 배를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전설은 괜히 수고스럽게 무거운 들매 나무로 배를 만들어 바다에 가라앉히지 말라는 교훈적이 내용을 담기 위해 전해진 전설이라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배에도 혼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정월과 시기에 맞춰 제물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 뱃사람들의 무사를 비는 풍속이 있었다고 하니까요.


들매나무.jpg 들매나무 (출처: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



재밌는 전설이긴 하지만 조금 으스스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만들 때는 정성 들여 만들었을 텐데, 앙칼지게 쌈질한다고 단칼에 베어버리다니요. 저라면 잘 어르고 달래 육지에서도 쓰임이 있는 물건으로 풍속을 만들어달라 부탁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래도 바다 생활을 하는 뱃사람들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 역시 이럴 땐 단호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리카락이 길고 앙칼진 혼을 가진 들매 나무 배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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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산책하는 아파트 화단에 자리 잡은 계수나무입니다.

수형이 정말 멋지지죠? 조금 어린 나무들은 동그란 이파리들이 긴 가지를 따라 마주 보고 자라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서로 팔랑거리는 모습이 꼭 곱게 화장한 앳된 아가씨들이 치맛자락을 날리며 삼삼오오 낭랑하게 웃는 모습 같아서 보고 있으면 기분이 명랑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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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화사하지요? ^^


그런데 사람의 욕심이란게,

가을의 계수나무는 또 얼마나 예쁠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 Ⓒ 2021 아프리카와 고양이 글

- Ⓒ 2021 아프리카와 고양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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