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사귀가 아름다운 칠엽수 이야기
지난여름, 혀를 길게 빼고 할딱거리는 반려견들을 데리고 아파트 산책길에 가로수 밑으로 잠깐 피난을 했습니다. 다른 가로수보다 유난히 크고 시원한 그늘을 내주는 나무가 궁금해 표식을 찾아보았더니, 이름이 "칠엽수"란 나무였지요. 그것 참, 정직한 이름이구나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로 이름처럼 싱그러운 잎사귀 7장이 손가락을 활짝 편 것 같은 모양으로 잎자루 끝에 달려있었습니다. 잎자루에 바짝 붙어 자란 잎은 작고, 가운데로 모일 수록 커다란 잎이 아래로 축 늘어진 모습이었어요. 수형도 아름다운데 나뭇잎이 달린 모양까지 재밌어서 요 녀석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으려나 궁금해졌지요. 반려견들도 시원한 마룻바닥에 배를 깔고 눕고 싶은 눈치길래 조금은 덜 미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지난여름부터 해넘이를 한 지금까지 수집해 놓은 칠엽수 이야기 풀어볼게요.
칠엽수(七葉樹), 이름처럼 하나의 잎자루에 일곱 장의 잎사귀가 달린 나무입니다. 그런데 실제론 다섯 장이 달린 것도 있고, 어떤 건 여덟 아홉 장이 달리기도 해서 백과사전을 살펴보면 다섯 장에서 일곱 장이라고 나와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잎도 잎이지만 칠엽수는 수형이 참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여름 한창때의 모습이 머리 위에서부터 하늘하늘한 레이스가 풍성한 치마를 뒤집어쓴 느낌이랄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칠엽수가 마로니에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마로니에와 우리나라의 칠엽수는 전혀 다른 나무예요. 마로니에는 유럽이 고향인 나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칠엽수는 일본이 원산지지요. 둘은 생김새가 아주 비슷해서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래서 일본에서도 칠엽수를 그냥 마로니에로 부른 듯합니다. 그 일본의 칠엽수를 우리나라에 들이면서 마로니에가 된 것이지요. 마로니에와 칠엽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의 모양새나 열매에서 분명한 차이가 보입니다. 유럽의 마로니에는 꽃이 분홍빛에 풍성한 원추형인데 비해 칠엽수는 꽃이 희고 열매에 가시가 없지요. 마로니에는 열매에 가시가 보송보송하게 나있어요. 그래서 마로니에를 가시칠엽수 또는 서양칠엽수라고 구분해서 부르기도 한답니다.
산책길에 만난 칠엽수는 열매에 가시가 보송보송 나기 시작한 걸로 보아서 서양칠엽수, 마로니에예요.
꽃을 살펴볼까요?
아래는 일본산 칠엽수입니다. 마로니에와 다른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지요? 하지만 전체적인 수형이나, 나뭇잎이 겹잎으로 자라는 모양이 아주 비슷해서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마로니에는 영어명이 Horse Chestnut입니다. 우리나라 말로 옮기면 '말밤나무' 정도가 되는데, 영국인들이 1916년에 발칸 지역에 있는 마로니에를 들여올 때, 터키인들이 병든 말에게 마로니에 열매를 먹이는 것을 보고 Horse Chestnut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Conker Tree가 있는데, Conker 역시 '밤처럼 생긴 큰 열매'라는 뜻이지요. 마로니에는 프랑스어로 '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일본칠엽수와 서양칠엽수가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서양칠엽수는 1912년에 네덜란드 공사가 고종의 환갑을 맞아 선물한 게 처음이라고 하고, 일본칠엽수는 일제 침략기인 1920년대쯤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이때 마로니에라는 이름도 같이 들어와서 서양칠엽수고 일본칠엽수고 모두 마로니에로 불리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고종이 선물로 받은 서양칠엽수는 지금도 덕수궁에 남아있으니, 언젠가 덕수궁을 방문할 때 서양칠엽수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겠죠? 그나저나 생일 선물로 나무를 주고받았다니, 참 운치 있는 일인 것 같아서 저도 언젠가는 나무 선물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 칠엽수에 담긴 이야기
고종이 네덜란드 공사에게 칠엽수를 선물 받은 이야기 외에도 칠엽수에는 실로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안네의 일기에 안네도 마로니에 나무와 깊은 인연이 있지요.
마로니에 나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은신처에 숨어 지냈던 안네의 일기에도 등장합니다. 마로니에 나무는 안네가 25개월의 은신 생활을 하는 동안 희망을 주는 친구였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다락방 밖으로 파란 하늘과 밤나무가 보인다. 밤나무 가지에 맺힌 빗방울이 반짝이고 바람을 따라 미끄러지듯 나는 갈매기와 새들도 은빛으로 빛난다. 이들이 존재하는 한 나는 살아남아 이들을 보게 될 것이고 이들이 있는 한 나는 불행할 수 없다.”
(안네의 일기 가운데, 1944년 2월 23일)
안네의 마로니에 나무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아마 160년은 넘은 나이가 되었겠네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0년 8월 23일에 태풍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고 합니다. 대신 그 씨앗과 묘목이 자유와 인권, 평화의 상징으로 세계 곳곳에 심어졌다고 하니, 1945년 3월 경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안네와 그 시절의 역사를 살아간 희생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대답은 '아니오'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세계의 평화를 상징하는 상징물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만지고 느끼고 맛보는 세상일 테니까요. 안네가 일기에 쓴 것처럼 자전거를 타면서 바람을 가르고, 이마에 흐른 땀방울을 바삭바삭하게 말려주는 햇살을 느끼고, 그늘이 시원한 바로 그 마로니에 나무 밑에 앉아 한숨을 돌리는 것일 테니까요. 지금의 우리처럼 울고 웃고, 슬퍼하고 우스꽝스러워지기도 했다가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기도 하며 그렇게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 것일 테지요. 상징 따위는 부디 인간 역사에서 다시는 그런 처참한 살육과 광기의 시대가 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우리들의 작디작은 발버둥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안간힘을 다해 마로니에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그 어마어마한 상징성을 잊어서는 안 되겠지요. 이런, 안네의 나무를 찾아보다가 그만 마음에 커다란 파랑이 일고 말았네요.
자, 이번에는 분위기를 바꿔서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칠엽수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조상들은 밤나무 하나를 두고도 나도밤나무와 너도밤나무란 말을 만들었어요. 칠엽수 이야기를 한다면서 뜬금없이 웬 밤나무 이야기인가 싶지요? 그건 '밤'이라는 뜻을 지닌 마로니에 나무와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밤나무,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는 제각기 다른 세 종류의 나무입니다. 밤나무는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에게 맛있는 간식거리를 내주는 나무지요. 밤소보루, 밤고물, 밤정과, 밤(마롱) 라테 등등, 겨울철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간식거리들입니다.
너도밤나무는 열매의 맛이 밤과 비슷하고 잎 모양도 비슷해서 붙은 이름이에요. 분류학상으로도 밤나무와 같은 참나무목 참나뭇과에 속해 친척관계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울릉도에서만 이 너도밤나무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열매 모양이 어떤지 한 번 볼까요?
생김새가 밤과 비슷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맛은 밤이랑 비슷하다고 하니, 겨울철 먹을 것이 부족한 산이나 섬에서는 동물들에게 훌륭한 먹잇감이 되겠네요.
울릉도에는 너도밤나무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옛날, 울릉도에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예요. 어느 날 산신령이 나타나 마을 사람들에게 산에 밤나무 백 그루를 심으라고 이르지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을에 큰 재앙을 내리겠다고 무시무시한 말을 하고 사라집니다. 겨우겨우 정착할 땅을 찾아낸 마을 사람들인데 마을에 재앙이 내리도록 그냥 내버려 뒀을까요? 마을 사람들은 그때부터 열심히 밤나무를 심고 정성껏 가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산신령이 다시 나타났지요. 산신령은 마을 사람들에게 밤나무 백 그루를 심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 있게 밤나무를 모두 심었다고 하자 의심 많은 산신령은 밤나무를 세어보기로 하지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분명 백 그루를 모두 심었는데, 어찌 된 셈인지 밤나무가 아흔아홉 그루밖에 없는 거예요. 아이코! 산신령의 진노가 마을을 휩쓸겠구나 하는 순간! 난데없이 밤나무 옆에 서 있던 작은 나무가 "나도 밤나문데요!"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산신령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너도 밤나무더냐?" 하고 물었고, 작은 밤나무는 "네, 그렇다니까요." 하고 능청스럽게 대답했다고 해요. 작은 나무의 기지로 마을 사람들은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고, 그 후 마을은 산신령의 보살핌을 받았다고 하네요. 작은 나무는 너도밤나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지요? 세월이 흘러 밤나무는 하나둘 사라져 갔고, 마을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해준 너도밤나무만이 잘 보존되어서 오늘날 울릉도에 너도밤나무가 숲을 이뤘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꼭 한번 울릉도에 가서 너도밤나무 군락지도 보고 열매도 주워보고 싶네요.
한편 나도밤나무는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너도밤나무 열매가 야생동물의 먹이가 되고, 사람들에게 식용유나 등유로 쓰이는 것과 달리 나도밤나무 열매는 먹으면 큰일 날 수 있어요. 나도밤나무는 열매의 생김새가 밤과 정말 닮았지만, 열매에 사포닌과 글로코사이드 같은 독성 물질이 있어서 날로 먹었다가는 정신을 잃을 수도 있지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칠엽수가 바로 이 나도밤나무에 속합니다. 서양칠엽수의 열매가 밤과 얼마나 닮았는지 볼까요?
그렇지 않아도 칠엽수가 관상수로 많이 쓰이는데, 가을날 길 위에 밤이 떨어졌다고 주워와서 쪄먹었다가는 정말 큰일 날 수도 있겠지요? 행여라도 덕수궁에 갔다가 칠엽수 열매를 주워오는 일은 없도록 주의해야겠습니다.
나도밤나무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손꼽히는 학자인 율곡 이이 선생의 이야기입니다. 역사책과 오천 원 권에서 볼 수 있는 분이 나오니 조금 친숙한가요?
늦깎이에 아들을 낳아 애지중지 키우던 이원수 공이 하루는 아들 이이와 함께 길을 가던 중에 지나가는 도사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도사는 어린 이이가 크게 될 상이지만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사주라며 밤나무 천 그루를 심어 호환을 면하라고 이르지요. 이원수 공은 도사의 말대로 뒷산에 밤나무 천 그루를 심어 정성껏 가꿉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이가 스무 살이 됩니다. 어느 날, 이원수 공의 집에 어떤 사람이 찾아옵니다. 뜬금없이 나타난 그 사람이 이이를 내놓으라고 하자 이원수 공은 옳거니! 하며 의기양양하게 밤나무 천 그루를 심었다고 큰소리를 치지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밤나무를 다시 세어보니 한 그루가 모자라는 거예요. 그때 옆에 있던 나무가 "나도 밤나무라고요!"하고 외치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자 그 낯선 사람이 갑자기 호랑이로 변해서 죽더라는 겁니다. 나도밤나무 덕에 이이는 화를 면했고 훌륭한 인재가 되었지요.
이이가 율곡(栗谷 밤나무 골)을 호로 사용하게 된 이유를 알것도 같네요. 이야기가 너도밤나무와 다른 듯하면서도 같지요? 어찌 되었든 모두 인명을 구하느라 너도 나도 힘을 모았으니 참 고마운 나무들입니다.
나도밤나무에 대한 이야기 하나 더 해 볼까요? 이번에는 일본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앞서 칠엽수 열매에는 독성물질이 있어서 식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고 했어요. 원래 칠엽수 열매는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풍부한데, 그러한 성질 때문에 열매가 야생 동물들의 먹이가 될 수 있지요. 칠엽수 열매는 야생 동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번식하기 위해 탄닌 같은 독성물질을 만들어내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칠엽수 열매를 날 것으로 먹게 되면 구토와 설사 현기증을 일으키거나 정신을 잃을 수 있지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칠엽수 열매를 이용해 기가 막힌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고 해요. 바로 도치모치라는 떡인데, 우리나라에서 도토리를 말리고 갈고 우려서 탄닌 성분을 뺀 다음 가루를 내서 묵을 만드는 것처럼, 칠엽수 열매로 만든 것입니다. 도토리묵 같은 색깔의 떡이라, 텁텁하고 쌉쌀하고 꺼끌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찾아본 자료에 나온 도치모치는 당장이라도 도치모치를 특산품으로 판다는 돗토리 현으로 날아가서 사 먹고 싶을 만큼 먹음직스러워 보였어요.
특히 미니 화로에 구워낸 도치모치는 언젠가는! 반드시! 먹어봐야겠다는 소소한 목표가 생겼답니다.
이렇게 말이죠.
아주 추운 겨울날이었어요.
눈이 발목까지 쌓여서 온 세상이 하얀 이불을 뒤집어쓴 것 같은 그런 날이었지요.
느릿느릿 아줌마가 산책을 나가기로 했어요.
머리에 털모자를 눌러쓰고, 털 귀마개를 하고,
털장갑을 끼고, 두꺼운 털양말에 털 장화를 신고,
누비 조끼에 패딩 코트까지 입었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깨에 보숭보숭한 담요까지 둘렀어요.
느릿느릿 아줌마는 겨드랑이에 구수한 보리차가 담긴 보온병을 끼고,
한 손에 미니 화로와 숯과 성냥이 든 주머니를,
다른 한 손에 도치모치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산으로 갔어요.
산속은 소리를 모두 삼킨 것처럼 고요했지요.
느릿느릿 아줌마는 털모자와 털 귀마개 사이로 빼꼼 나온 눈을 기웃기웃 거리며,
적당한 자리를 찾았어요.
꽁꽁 얼어붙은 시냇가 바위는 너무 울퉁불퉁해서 화로를 올려놓을 수가 없었어요.
눈 무게에 쓰러진 나뭇가지들은 밟기만 해도 바스락 부러져 버렸지요.
나뭇가지들을 치우고 눈을 쓸어내도 땅이 꽁꽁 얼어붙어서
엉덩이를 깔고 앉을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참새 한 마리가 눈 쌓인 나무 위에 앉아 조용히 아줌마를 지켜보았어요.
겨우내 나무 구멍에 자리를 잡은 청설모는
느릿느릿 아줌마의 발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빼꼼 내밀었지요.
그 바람에 구멍을 막고 있던 눈덩이가 부스스 떨어졌어요.
시냇가 너머 눈 덮인 덤불숲 사이에 멧토끼도 아줌마를 몰래 지켜보았어요.
느릿느릿 아줌마는 아담하면서도 윗면이 판판하게 잘려나간 나무둥치를 찾아냈어요.
둥치 위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어깨에 두르고 있던 알록달록한 담요를 그 위에 살포시 펼친 다음,
한 손에 들고 있던 화로를 둥치 위에 올려놓았지요.
느릿느릿 아줌마는 화로 옆에 앉아 숯을 넣고 성냥으로 불을 붙였어요.
그러고는 화로 위에 석쇠를 올리고,
바구니에 담긴 도치모치를 꺼내 석쇠 위에 올려놓았지요.
한 개, 두 개, 세 개
타닥타닥
호드득 호드득
떡을 굽는 사이, 느릿느릿 아줌마가 보온병을 열어 보리차를 따랐어요.
보온병 뚜껑에서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났어요.
느릿느릿 아줌마는 부러진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도치모치를 찍어 호호 분 다음 한 입 베어 물었어요.
뜨끈뜨끈한 보리차를 홀짝 마시고 또 한 입 베어 먹었지요.
이제 석쇠 위에는 도치모치 두 개가 남았어요.
느릿느릿 아줌마는 두 개째 도치모치를 나뭇가지로 푹 찔러서 또 호호 불었어요.
세 개째 도치모치도 푹 찍어서 호호 불었지요.
그리고 호호 분 도치모치 하나를 두 개로 나눠서 나무 위 단단한 가지 위에 올려놓았어요.
마지막 도치모치는 시냇가 너머로 훌쩍 던졌답니다.
느릿느릿 아줌마는 다시 보숭보숭한 담요가 덮인 나무둥치에 앉았어요.
남아있는 화롯 불씨에 손을 녹이고 보리차를 호호 불어마시며 느릿느릿 딴청을 피웠답니다.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던 참새가 날개를 푸드덕 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청설모가 나무기둥을 후다닥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지요.
시냇가 너머 덤불숲에서는 포드득 포드득 눈 밟는 소리가 들렸어요.
화로 속에서는 불씨가 조용히 타들어가고 있었어요.
타닥타닥
호로록 홀짝
사부작사부작
고요했던 산에 따뜻한 소리가 스며들었어요.
- 아프리카와 고양이
도치모치는 일본에서는 유명한지 동화책에도 나와요. 1971년에 출간된 사이토 류스케의 [모치모치 나무]라는 동화책입니다. 손주를 용감한 청년으로 키워내고 싶은 할아버지와 겁쟁이 손주, 아름다운 모치모치 나무가 만들어내는 가슴 따뜻한 동화랍니다. 모치모치 나무의 본문 26쪽을 보면 칠엽수를 아름답게 그려낸 삽화를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본문 8쪽에 도치모치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지요.
가을이 되면 반짝반짝 빛나는 갈색 열매를 수북이 떨어뜨려 줘.
그 열매를 할아버지가 나무절구로 찧고 맷돌로 갈아 가루로 만들지.
그걸로 떡을 쪄 먹으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게 맛있어.
- [모치모치 나무] 가운데 본문 8쪽
당장에 도치모치를 먹을 수는 없겠지만 다시 추워진 날씨에 이불속에 들어가 도치모치와 비슷한 우리나라 찹쌀떡을 먹으며 사람들에게 따뜻한 삶의 힘을 주는 나무 이야기를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봄에는 여린 잎사귀를 부끄러운 듯 내밀고 ,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과 아름다운 꽃을 내어주며
가을에는 맛있는 떡과 사람에게 이로운 약재가 되어주고
겨울에는 사람과의 마음 따뜻한 인연을 이어주는 칠엽수 나무는,
늘 곁에 두고 매만지며 마음을 나누고픈 나무가 아닐까,
글을 마치며 생각해 봅니다.
ⓒ 2021 아프리카와 고양이 글
ⓒ 2021 아프리카와 고양이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