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무인연

시작

유년 시절의 하늘, 그리고 나무

유년 시절의 하늘, 그리고 나무



어린 시절 버릇처럼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었다. 하늘에는 많은 것이 있었다.

구름, 달, 해, 별, 바람, 어둠, 빛, 새, 잠자리, 새까만 날벌레 떼…

가만히만 있어도 하늘은 늘 움직였다. 움직이는 하늘을 따라 나의 의식도 흘렀고, 의식의 흐름에 따라 시간도 흘렀다. 나는 성장했고, 이제는 가끔씩만 하늘을 본다. 가끔 보는 하늘 속에 이제 나는 없다.

하늘을 보기 위해 난 옥상에 올라가곤 했다. 우리 집은 5층으로 된 주공 아파트였는데, 그때만 해도 5층 거주민들은 자유롭게 옥상을 출입할 수 있었다. 아파트마다 옥상문이 전자자물쇠로 잠겨 있는 지금과는 달랐다. 나는 옥상에 의자 하나를 가져다 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올라가 앉아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중에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며 흘러가는 구름과, 영원의 시간 동안 내게로 왔다가 영원의 시간을 거쳐 저 하늘 너머로 사라져 가는 별을 보는 것이 가장 좋았다. 자랑은 아니지만 추운 겨울날 옥상에서 별을 보다가 다음 날 39도가 넘는 열 감기에 걸린 적도 있었다.

하루는 옥상에서 날개를 다쳐 날지 못하는 비둘기를 발견했다. 비둘기는 부상이 심했는데, 몸에 기생하는 기생충이 허옇게 스물스물 기어 나올 정도였다. 나는 비닐장갑을 끼고 비둘기를 상자에 담아 일주일 동안 돌봐주었다. 그래 봤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상처부위를 깨끗이 닦고, 빨간약과 그때도 있었던 후시딘을 발라주는 것 밖에는 없었다. 비둘기는 처음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더니 삼일이 지나자 물을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차마 지렁이를 잡아 올 마음은 생기지를 않아서 집에 있던 좁쌀을 상자에 뿌려줬던 기억이 난다. 비둘기는 좁쌀 따위는 싫었던지 칠 일째 되는 날까지 물만 먹었다. 비둘기는 육일 째 되는 날 상자 안에서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비둘기가 날갯짓을 하자 기겁을 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상자를 안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비둘기를 집으로 데려온 지 팔일째 되는 날이었다. 비둘기는 일주일 만에 느끼는 햇살이 어색했던지 처음엔 상자 안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바람의 냄새를 맡고 상자 밖으로 나오기 위한 필사적인 날갯짓을 했다. 나는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비둘기를 잡고 초록색 방수처리가 된 옥상 바닥에 놓아주었다. 비둘기가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비둘기는 내가 날숨을 내쉬기도 전에 하늘 위로 높이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늘이 비둘기를 따라서 넓은 포물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 나는 비둘기를 기다렸다. 내가 돌봐준 걸 고맙게 여기고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유치하지만 흥부의 까치를 기대했다. 하늘을 보면서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이 없던 나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나도 비둘기가 오지 않자, 하늘 보는 일이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옥상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걸어가 보기도 하고, 5층 사는 사람들이 스티로폼 상자에 심어놓은 상추니 고추, 이름 모를 꽃을 쳐다보기도 했다. 그렇게 해도 지루함이 가시지 않자,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옥상에서 내려다본 공원은 무척이나 아늑해 보였다.


공원은 내가 엄마 심부름으로 구멍가게를 갈 때나, 동네 친구와 만날 때 지나다니는 길목이었다. 가끔은 친구와 처음부터 헤어질 때까지 공원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단순히 길목일 때는 몰랐는데 옥상에서 내려다보니, 공원은 꼭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라퓨타」에 나오는 라퓨타 성처럼 –당시 고등학교 고학년이었던 오빠 덕분에 나는 「라퓨타」가 우리나라에 개봉하기도 전에 해적판으로 볼 수 있었다– 선명하고 근사해 보였다. 특히 공원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나무가 무척이나 따뜻하고 아늑해 보여서 나는 당장에 공원으로 내려가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가 되었다. 옥상에서부터 5층을 뛰어 내려가면서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친구를 만나기로 한 것도, 좋아하는 음악 앨범을 사러 가거나 동네 책방을 가는 것도 아닌데, 하늘을 보기 위해 옥상으로 가는 것도 아닌데, 뭔가 신선한 바람이 가슴 한가운데서 회오리치는 기분이었다. 1층까지 내려온 나는 빠른 걸음으로 공원 한가운데 솟아난 나무를 향해 갔다.


그때까지 길목 이외의 다른 의미가 없었던 그 공원은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는 볼 수 없는 흔치 않은 구조였다. 공원 한가운데 십자 모양의 길이 나있고, 십자 길 사방으로 풀과 꽃이 자라고 한가운데 커다란 나무가 우뚝 솟아있는 구조였다. 그러니까 공원에는 큰 나무 네 그루가 서있는 셈이었다. 나무 아래는 벤치가 놓인 곳도 있었고, 조금 옆으로 비껴서 작은 정자가 세워진 곳도 있었는데 나는 벤치가 놓인 나무 아래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마치 허공 속 어느 지점에 빨려 들어갔다가 느슨해진 틈새로 새어 나오는 것 마냥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말소리, 자전거가 지나가는 소리, 개가 짖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매미가 우는 소리, 바람이 부는 소리, 나뭇잎이 나부끼는 소리. 소리는 처음에 하나씩 들리다가 나중에는 한꺼번에 들려왔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뭇잎이 바람결에 나부끼는 소리만 남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울창한 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가 사라지고 보였다가 사라졌다. 눈부신 햇살이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을 따라 반짝거렸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손바닥만 한 빛을 가득 품고 있었다.

그 뒤로 나는 공원의 나무 아래서 하늘을 보는 일이 많아졌다. 나무 아래서 올려다본 하늘은 옥상에서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움직이지 않았지만, 자잘하게 빛나는 빛들이 내 눈을 시큰하게 물들여주었다. 나는 하늘과 함께 초록으로 빛났다가 주황색 옷으로 갈아입고, 헐벗었다가 하얀 입김을 내뿜는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나무는 어느 날 문득 연둣빛 속살을 수줍은 듯이 내주었다가 미처 따라잡을 틈도 없이 울창한 초록 물결로 다시 빛났다. 나무는 하늘과는 전혀 다른 리듬으로 움직이면서도 하늘을 품고 있었고, 소리와 땅을, 허공과 나를 품고 있었다. 나는 그 나무 아래서 열한 번의 여름을 더 보내고, 떠났다.


나무를 떠난 뒤에 내 삶 속에 나무는 더 이상 없는 듯했다. 하늘 속에 내가 이제 없듯 나무도 나를 잊은 것 같았다. 나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보았고, 사람 사이에 생겨나는 추상적인 공간을 보았고, 그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에너지의 충돌을 보았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카오스 속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언젠가 나무가 수줍게 속살을 내주었던 것처럼 그렇게 문득, 나는 그늘을 드리워 주는 나무 아래 서게 되었다. 나무는 그대로였다. 그때 그 시절 내가 올려다보았던 나무는 아니었지만, 나무는 영겁의 시간 속에 갇혀버린 그때의 나무처럼 푸르렀다. 사람들 틈에서 어지러웠던 마음이, 공간 안에서 갈 길을 잃었던 시간들이, 나 스스로 만들어낸 감옥에 갇혀 코끼리 거죽처럼 꾸덕꾸덕해졌던 사념들이, 나무 그늘 아래서 한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대신 짙은 초록빛과 신선한 공기와 나뭇잎이 부딪히며 내는 시원한 소리가 그 자리에 들어찼다. 실로 오랜만에 신선한 바람이 가슴 한가운데서 회오리쳤다. 나는 나무를 올려다보았고, 나뭇가지 사이로 손바닥 크기만큼 빛나며 움직이는 하늘을 보았고, 나무가 품고 있는 소리들을 들었다. 하늘 속에 나는 여전히 없었지만 나무 그늘 아래 나는 여전히 나무와 함께 있었다.

나는 나무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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