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아이
엄마는 거대한 솜털처럼 둥실 떠가는 구름들의 행렬을 보고 사신 같다고 말했다. 옛날 베트남에는 왕비에게 조공을 바치는 풍습이 있었는데, 어둠이 내려앉기 직전에 강렬한 태양빛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구름이 마치 금은보화를 두 손 가득 안고 줄지어 가는 사신 같다고 했다.
희복이는 노을이 지는 바닷가를 등지고 앉아 산등성이 위로 흘러가는 구름들의 행렬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바라보는 하늘은 엄마를 닮았다.
“누나, 빨리 오지 않으면 밥 다 떨어진다!”
커다란 소나무 아래 줄을 지어 배식을 기다리는 일꾼들 틈에서 동생이 소리쳤다. 희복은 엉덩이에 묻은 모래를 털고는 까맣게 그을린 동생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걱정 마, 누나가 네 몫까지 떠 줄 테니.”
희복이 동생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아니, 희복이 아니야. 오늘은 감재 좀 팠어?”
“어디, 팠다 뿐이겠어? 트럭 한 가득이지.”
아랫동네 사는 정길네 아줌마가 희복을 아는 체하자 혜숙이 아줌마가 대뜸 끼어들어 희복의 말문을 막았다.
혜숙 아줌마는 희복이와 영재를 돌보는 아줌마였다. 그래서인지 희복의 일이라면 마치 엄마라도 되는 양 두 팔을 걷고 나섰다. 좀처럼 말이 없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희복은 그런 혜숙 아줌마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희복이 야가 아주 지 엄마를 닮았다니께. 야 엄마도 일 하나는 끝내주게 잘했제. 야 엄마가 식당에 오고부터 구디기가 득실대던 주방이 거울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으니께. 아주 타고났제 타고났어.”
혜숙이 아줌마가 자기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혜숙 아줌마와 엄마는 부산의 어느 식당에서 함께 일하던 사이였다고 한다. 그때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엄마를 언니처럼 챙겨주며 도와준 게 혜숙 아줌마였다. 그러다가 혜숙 아줌마가 식당 일을 그만두고 이곳 강원도 산골 마을 감자 농장의 소작살이로 들어갔다. 쥐꼬리만 한 식당 월급을 받느니 소작살이가 훨씬 났겠다고 했지만 실상은 식당일을 하면서부터 밖으로 나도는 남편을 붙잡아두려는 게 더 큰 속셈이었다.
“근데 딸이 여기 있는데 왜 코빼기도 안 보이나?”
정길네 아줌마가 불쑥 주둥이를 놀렸다. 그러자 혜숙 아줌마가 눈을 부릅뜬 채 정길네의 말꼬리를 잘라버렸다.
“그것까지는 알 것 없고.”
배식대의 줄이 점점 짧아지면서 희복이 밥을 뜰 차례가 되었다. 희복은 서둘러 동생과 자기 몫의 밥을 식판 한 가득 뜨고는 콩나물 무침이며, 두부 부침, 김치를 꾹꾹 눌러 담았다. 감자 수확기가 되는 이맘때 즈음이면 언제나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수확기 때만 잠깐 부리는 일꾼들도 그런지 모두 마을 한가운데 놓인 평상에 앉아 묵묵히 저녁밥을 비우고 있었다.
“영재야, 많이 먹어.”
“응, 누나. 우리 이거 다 먹고 조개 잡아서 또 구워 먹자.”
“안 돼. 이제는 날이 많이 추워져서 바다에 들어가면 감기 들어.”
“칫, 오늘도 조개 구워 먹고 싶었는데.”
“너무 늦게 들어가면 혜숙이 아줌마도 싫어하니까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숙제하자.”
“하지만 난 숙제하기 싫어.”
“오늘은 누나가 같이 숙제 봐줄게, 응?”
“칫!”
영재는 그래도 못마땅한지 누나를 곁눈질로 흘겨보았다.
그날 밤 희복은 영재의 숙제를 모두 봐주고, 목까지 이불을 덮어준 뒤에야 감나무가 있는 마당으로 나왔다. 어느새 깜깜해진 밤하늘 너머로 파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희복은 두 팔로 무릎을 감싼 채 감나무 아래 앉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산을 바라보았다.
엄마의 손을 잡고 처음 이곳 강원도 산골로 왔을 때 희복은 한국의 산이 고향의 산과는 전혀 다르다고 느꼈다. 한국의 산이 아저씨의 억센 팔뚝 위로 거칠게 솟아난 핏줄이라면 고향 산은 엄마의 야트막한 가슴처럼 낮고 은은했다. 차가운 10월의 산바람을 맞으며 엄마는 혜숙이 아줌마만큼은 믿어도 좋다고 수없이 되뇌었다.
고향을 떠날 때도 엄마는 그랬다. 꼭 아빠를 만나서 너를 데리고 오겠노라고 희복에게 되뇌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떠난 엄마는 소식이 없었고, 희복은 5년 뒤 무궁화라는 뜻의 화얌복이라는 이름이 적힌 여권 하나와 할머니가 주신 여비를 가지고 엄마를 찾으러 한국으로 왔다. 화얌복은 엄마가 한국에 있을 아빠를 떠올리며 지어준 이름이었다.
“아까는 속상했제?”
어느새 인지 혜숙이 아줌마가 등 뒤에 서 있었다.
“아… 아니에요.”
희복이 말끝을 흐렸다.
“그래, 그런데 어쩌겠냐. 니가 여기 온 것부터가 얘깃거리니 아이가. 내 너를 딸처럼 봐주고는 있지마는 여 마을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
“희복아.”
“네, 아주머니.”
“느이 엄마와 같이 식당 일 했을 때 말이다. 느이 엄마가 허구한 날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왔었다. 그때 내가 그저 팔자려니 하고 살라고 얘기하기는 했지마는 느이 엄마가 정말로 그렇게 될지 누가 알았겠나. 그저 그 추운 날에 네 손 잡고 여로 왔을 때 내가 붙잡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느이 엄마한테 평생 미안하고 죄스럽고 그렇다.”
“…….”
혜숙 아줌마가 거친 손으로 희복의 등을 찬찬히 쓸어주며 말했다.
“동네 사람들 하는 말은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 내 느이 엄마 불쌍해서라도 너와 영재 잘 돌볼끼다, 그라니 걱정하지 말고. 알았제?”
“네에.”
희복은 혜숙 아줌마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어 무릎 사이로 얼굴을 푹 파묻은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만 들어가 자래. 이 양반은 오늘 안 들어 올라나 보다.”
혜숙 아줌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헐렁한 일바지를 탁탁 털고 방으로 돌아갔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채 꼼짝하지 않고 있던 희복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희복은 그날 밤의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온 아빠는 여느 때처럼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고, 희복은 겁을 집어먹은 채 울먹이는 7살 영재를 데리고 현관 밖으로 나왔다. 가을 밤바람이 허술한 잠옷 사이로 불어 들어왔다. 희복과 영재는 추위에 떨며 집안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날따라 엄마의 흐느낌이 금세 멎었다. 희복은 영재를 밖에 세워두고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거실에 쓰러져 있었다. 희복은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갑자기 숨이 멎는 듯 눈앞이 깜깜해졌다. 엄마 곁으로 달려가 쓰러져 있는 엄마를 흔들어보았지만 엄마는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의 머리 주위로 피가 흥건했다. 아빠는 맞은편 방에서 팬티 바람으로 코를 골고 있었다.
희복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맨발로 영재를 데리고 파출소로 달려갔고, 그 뒤의 일들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희복이 기억하는 것은 어떻게든 영재를 데리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영재와 영영 떨어져 살 수도 있었다. 그때 생각난 것이 언젠가 엄마가 데리고 갔던 강원도의 혜숙 아줌마네였다. 희복은 영재와 함께 도망치듯 이곳 강원도 산골마을을 찾아왔다. 그때가 희복이 열네 살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여름과 가을이 세 차례 지나가는 동안 희복은 감자 수확으로 어느 정도 돈을 모았다. 그러는 동안 아빠의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희복과 영재를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혜숙 아줌마의 먼 친척이려니 생각하고 허물없이 대해주었다. 그중에서도 혜숙 아줌마네 아저씨가 유독 희복에게 잘 대해 주었다.
희복은 아저씨에 생각이 미치자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아저씨와 마주치기 전에 방 안으로 들어가 동생이 자고 있는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혜숙 아줌마가 집에 있을 때만큼은 아저씨도 희복을 불러내지 못했다. 희복은 아저씨의 억센 팔뚝 위로 솟아난 우락부락한 핏줄을 애써 잊으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번 감자 수확만 잘 마치면 떠나는 거야.’
희복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며 생각했다.
‘다시는 여기로 돌아오지 않는 거야.’
할머니가 계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돈은 모았다. 영재도 데려갈 수 있다. 이곳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희복과 영재를 아들과 딸처럼 키워준 혜숙 아줌마에게 조금 미안했다. 희복은 혜숙 아줌마가 종종 밤늦도록 제삿집 일을 돌보느라 들어오지 않을 때, 아저씨에게 이끌려 안방으로 드나들고는 했다. 희복은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지만 그때마다 영재가 깊은 잠에 빠져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줌마에게는 말하기조차 두려웠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다시 내쫓기듯 방황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수확기만 지나면 된다. 그때까지만 잘 견디면 희복은 영재를 데리고 엄마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 그곳으로 가면 희복은 다시 화얌복이 되어 어쩌면 아직까지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할머니의 품에 안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화얌복이 아니라 사계절 내내 활짝 피어날 수 있는 고향 땅의 화얌복이 되어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희복은 그날을 꿈꾸며 곤히 잠든 동생의 얼굴을 품 안에 꼭 끌어안았다. 희미한 새벽빛이 화얌복의 야트막한 가슴 위로 서서히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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