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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글쓰기

무너진 중심을 세우기 위한 잣대로써의 글쓰기

 


 텔레비전 채널을 무심히 돌려보다, 황석영 작가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당대 역사의 산증인이자 우리 문학의 거장이나 마찬가지인 그이기에 기계적으로 리모컨 올림 버튼을 누르던 손가락이 멈춰 섰다. 황석영 작가는 그때 막, 한 때 스님이 되려고 무작정 절에 들어가 생활했던 젊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진행자는 내가 우리나라 최고의 MC라고 생각하는 유희열 씨였다(물론 유희열 씨는 음악가지 진행자는 아니다. 하지만 최근 그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맡는 진행은 그만의 여유와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 경험에서 우러난 공감, 그리고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타인의 인생에 대한 여전히 소년 같은 호기심이 눈빛에 묻어나 나는 그야말로 우리나라 최고의 MC라고 생각한다).

 뭐에라도 홀린 것처럼 황석영 작가의 이야기를 듣다가 패널 중에 한 명이(아마도 소설가 김중혁 씨였던 것 같은데...) 그가 쓴 책의 내용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 과연...? 하고 나도 모르게 황석영 작가의 입에서 나올 문장에 귀를 기울였는데, 그의 대답은 뜻밖에도 "기억나지 않는다"였다. 그의 말 한마디로 패널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나도 하아? 하면서 웃음짓게 되었다.




  4.19 혁명과 베트남 파병, 5.18 민주화운동, 민간인 최초 방북과 그로 인한 망명과 수감 생활까지,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하고 그 모든 순간을 망각 속에 잊히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 위해, 실체 없는 기억을 실체가 있는 글로 옮기며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글쓰기를 한다는 그가 정작 기억나는 문장이 없다니 웃음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그의 대답에 유희열 씨는 소년 같은 얼굴로 그를 멋있다고 했고, 소설가 김중혁 씨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그때 황석영 작가의 얼굴 표정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김중혁 작가가 왜 그렇게 멋쩍은 표정을 지었는지 미처 보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경우는, 알 수 없는 안도감과 괜스레 마음이 위로받는 웃음이 나왔다.




  나는 작년 가을이 한창일 무렵 브런치를 시작해 그동안 모아놓았던 글들과 그때그때 쓴 글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올렸다. 브런치 글쓰기를 하면서 다른 작가들이 올린 글을 마치 꿀을 쫓는 벌처럼 이 글에서 저글로 옮겨 다니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그러다가 다른 작가들이 올린 글에서 공통점 하나를 발견했다. 어느 순간 구독자수와 라이킷 수, 조회수에 연연하며 필사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이들은 브런치의 상업적이며 빅데이터에 의해 구축된 해시태그 망에 걸려든 글이 인기글이 되는 것을 원망하기도 했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 나는 내 글의 구독자나 조회수, 라이킷 수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앞으로도 열렬한 희망사항이다). 다만 지금도 마찬가지인 이 상황이 되기까지 나도 그들과 같은 고민을 했고 개인적으로 글쓰기에 대한 지독한 열병을 앓기도 했다




 황석영 작가는 글쓰기가 치유라고 했다. 나에게 글쓰기는 안간힘을 쓴 뒤에 마인드 컨트롤이다. 치유나 마인드 컨트롤이나 그 결이 비슷할지 모르지만, 나는 마음에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그러다가 소용돌이에 잠식될 때, 또는 반대로 미풍을 탄 가벼운 깃털처럼 끝 모를 높이로 치솟아 마침내는 우주 밖으로 튕겨나갈 것 같은 마음을 다잡아 다시 하늘과 땅 사이 어딘가 위치한 내 심장 자리에 잡아 놓기 위해 글을 쓴다. 나의 글쓰기는 치유보다는 무리카미 하루키의 '잣대'에 더 가까운 것이다. 나와 나를 둘러싼 사물하고의 관계를 확인하는 잣대로써 글이 완성되면 나의 마음은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것이 치유로까지 이어지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황석영 작가는 아픈 기억을 글로 실체화시킴으로써 치유를 받고 성숙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쓸수록 그 간극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더욱 어려워지고, 그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움츠러들고, 움츠러들다가 결국 황석영 작가가 말한, 글이 시작되는 지하 7층 방에는 미치지도 못한 채 아무것도 없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지하 5층 방 어디쯤에서인가 손가락을 멈추고 방문을 닫고, 계단을 올라 온갖 소리와 빛으로 눈이 먼 세상으로 나온다. 그 빛 안에서 나는 한동안 화이트 아웃이 돼버린다. 그러니 나의 글쓰기는 치유와는 조금 거리가 멀어 보인다. 물론 모든 사물 순환의 원리를 따른다는 자연법칙에 따라 나의 이런 상태도 결국에는 다시 제자리를 찾아간다. 화이트 아웃이 지속되는 듯하다가 어느 날 문득, 나는 다시 지하로 향하는 문을 열고 지하 7층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의 잣대를 꺼내어 사물의 관계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유념해야 할 점은 사. 물.이라는 것이다. 나는 사. 람. 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무척 어려워한다. 심지어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두렵다. 간혹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뒤로 한 발짝 물러선 채, 마치 언제나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랍장마냥 그들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그들 삶에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서랍장에 쌓인 먼지를 닦는 것이고, 나는 그들이 나를 써주기 때문에 딱 그들이 써주는 그만큼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것이다. 때문에 나의 글이 타인과의 실질적이며 성숙한 관계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사. 물. 에 들이대는 잣대는 다만 무언가로 인해 어지러워진  마음을 제자리 갖다 놓는다는 순기능 외에는 어떤 기능도 없다. 이런 상태가 된 데에  직업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느냐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15년이라는 시간을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분석하고 이해하고 공감한 다음, 그것에 맞는 어휘와 문장으로 옮기는 일 치유가 아니라 잣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동화를 비롯해 청소년 문학을 번역하는 일에는 잣대가 더 엄격하게 적용되야한다. 청소년 문학 번역은 아이들의 정신을 움직이는 작업이기 때문에 일반 문학보다 더  섬세하게 선별해서 어휘를 선택해야 한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용한 잣대가 적절한 것인지 아닌지 또 다른 잣대를 들이밀어 검열해야 한다. 물론 그런 작업은 출판사의 편집을 거쳐 이루어지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번역가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번역을 하면서 나 혼자 끙끙대는 그런 시간이 버거워서, 또 신경  만큼 내가 한 일에 대한 대가적절한 것 같지도 않, 일거리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것 아니기에, 나는 지난겨울부터 완전히 탈진상태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브런치 라이킷 수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구독자 수가 늘지 않는 것에 대해 내 글의 본질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글을 빨리 올리고는 싶지만 뜻대로 속도가 나지 않을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자기 사는 이야기를, 살면서 마주하게 된 사람과의 관계와 현상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맛깔스러운 말들로 올리는 작가들 보면 브런치를 외면하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15년이란 시간을 글쓰기에 몰두하고도 이 정도의 글밖에는 쓸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열등감이 내 글쓰기 인생 전부를 부정하게 했다(우리나라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정말 너무나도 많다!)


 내 글쓰기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나도 다른 작가들처럼  지극히 개인적이며 일상적인 일들을 이야기해야 하는가(과연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빅데이터의 해시태그를 신경 쓰고, 요즘 떠오르는 이슈들에 대해 날 것 그대로의 내 생각을 드러내야 하는가? 그렇게 해서 내 글에 반응이 오기 시작하고, 의견을 묻거나 비판을 하거나 동조를 하는 댓글이 달리면 나는 그들에게 무슨 답글을 남겨야 할까? 그렇게 된다면 사물하고의 관계가 아닌 사람하고의 관계가 돼버리는 것이다. 나는 과연 그 관계를 감당할 수 있는가? 아니 감당하고 싶은가? 지하 7층 방에서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젓고 있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관계 맺기를 좋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나는 전자 쪽에 가깝지 후자 쪽은 무척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화이트 아웃 상태에서 맞은 열병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쩌면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서인지도 모른다. 혹은 나 스스로 낸 상처가 초래하게 될 어마어마한 결과가 두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그 이유가 결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가 상처를 드러내 놓고 극복하고 새로운 삶으로 도약하는 것은 아니다. 그 치유의 과정이 모두에게 동등하고 은혜롭게 내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말로 하는 극복은 정말로 쉽고 간단해 보인다. 내가 안고 있는 아픔을 글로 드러내고 그 상처를 실체화시키는 일은 당장에는 마음을 치유받는 느낌이다. 하지만 상처를 글로 실체화시키는 작업 뒤에, 정말로 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행동이 수반될 때에야 상처가 아물고 그 아래로 새살이 돋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치유이다. 황석영 작가는 실제로 그 과정을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에 글쓰기가 치유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동주 시인이 그랬고, 박완서 선생님이 그랬고, 미야자와 겐지 씨가 그랬고, 무라카미 하루키 씨가 그렇다. 그리고 이 브런치에서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치유하기 위해 글쓰기를 하는 몇몇 작가들이 그렇다. 나머지는 어느 쪽이냐 하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자기 상처를 은폐하고 외면하거나, 가끔 꺼내보는 서랍장의 사진처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가 다시 서랍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는 쪽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대신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 자기 상처와 맞닿지 않는 선을 가진 사물과 사람들하고 관계를 맺거나 나처럼 한 발짝 떨어져 관조한다. 그런 사람들이 하는 글쓰기가 치유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다만 저 한 몸 무너지지 않기 위해  중심을 잡는 기능밖에는 하지 못한다. 그나마도 중심을 잡을 수 있어 나는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삶으로까지 도약하지는 못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애쓸 수는 있으니, 그것 또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이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내 주변인의 삶이 불가피하게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데,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내게 유의미한 주변인의 삶에 파동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 관조는 그렇게 해서 생겨나고, 가끔은 아주 미미하게 나마 그들의 삶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너무나도 미미해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나 혼자 그 사람이 좋아 주는 도움인 것이다. 


 위험한 것은 중심을 잡았을 뿐인 것을 마치 새로운 삶으로 도약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착각하고, 착각에서 깨어나고, 다시 아등바등 애쓰다가 또다시 착각에 빠지고, 착각에서 깨어나기를 반복. 그 반복의 끝이 마침내 새로운 삶으로의 도약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되었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자리 바뀜이 되어야 한다. 그 자리 바뀜을 가져다주는 것은 앞서도 말했지만 결국 행동 밖에는 없다. 




 내가 "기억에 남는 문장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한 황석영 작가의 말에 안도감과 마음을 위로받는 기분이었다고 말한 이유는 치유받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조차도 자신이 쓴 문장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참 인간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치유받는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결국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글쓰기를 한다. 그 에너지라는 것은 단순히 나의 자리를 바뀌게 할 뿐만 아니라 타인과 사회, 문화 전반의 흐름을 바꿔놓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의 글쓰기는 어떻게든 철저하고 무자비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해왔다. 나는 그런 글쓰기를 해본 적이 없기에, 나의 글쓰기는 언제나 나사 하나가 빠진 것처럼, 아니 실상은 하나가 하니라 수백수천 개의 나사들이 서로 맞지 않은 너트에 끼워진 것처럼 삐그덕 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철저한 글을 쓰는 사람이 나처럼 자신이 쓴 문장 하나쯤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감히 상상해볼 수도 없었다. 그런데 황석영 작가조차 자신이 어떤 문장을 썼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니, 요즘 들어 내가 들은 유일한 위안의 말이었다. 물론 훌륭한 문장이 너무 많아서 기억을 못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래도 하나쯤은 기억할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고 하시니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기로 했다. 




 요즘 들어 나는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왔다. 그렇게 된 것이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글쓰기가 즐거워진 것은 사실이다. 나는 여전히 나와 사물 사이의, 사물과 사물 사이의, 사물과 현상 사이의 관계를 나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잣대를 대고 있고, 그 잣대에서 나온 글들로 나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그리고 점점 번역에서 멀어지고  싶어 하는 나를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다. 오랜 시간 해 온 일에서 벗어나기란 정말로 쉽지 않다. 이 마음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만약 내가 해오던 일에서 비로소 벗어나게 된다면 조금쯤은 새로운 삶으로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잣대의 글쓰기로 자리바꿈 하지 못했던 삶을 그동안의 업을 내려놓음으로써 자리바꿈 할 수 있다면 치유의 글쓰기도 쓸 수 있게 되려나? 아직은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당분간은 그동안의 나를 유지하며, 나답게 글쓰기를 해볼까 한다. 비록 아무도 눈치채진 못하더라도 잣대의 글쓰기 안에도 따뜻함은 존재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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