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불러도 우렁이는 온데간데없고,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사람들을 하나씩 붙들고 물어봐도 우렁이를 봤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들판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우렁이를 계속 부르다 잠에서 깨어났다.
3일 동안을 이런 종류의 꿈에 시달리다가 식은땀에 젖은 채 잠에서 깼다. 다음 날엔가는 우렁이가 침대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다가 놀라 잠에서 깨보니 내 옆에 편안하게 몸을 기댄 채 옆으로 누워 자고 있었다. 난 우렁이를 더 가까이 바짝 끌어당겨 꼭 껴안았다가 풀어주었다. 잠결에 손을 대도 우렁이는 그 작은 그르렁거림 하나 없이 내게 몸을 맡겼다. 옆에서는 남편의 규칙적인 숨소리와 오몽이가 들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렁이가 이상행동을 보인 것은 한순간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가 오늘은 자기 둥지에서 꼼짝을 않고 누워만 있는다. 밥그릇에 사료를 담고 부르면 자다가도 꼬리를 흔들며 곧장 사료 그릇 앞으로 왔던 아이가 아무리 불러도 오지를 않는다. 두툼한 담요를 깐 둥지에 똬리를 튼 채 자고 있는 아이를 깨우니 아이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다. 그런데 눈을 뜨지 못한다. 한참이 지난 뒤에 풀로 단단히 붙인 것 같았던 눈꺼풀이 가까스로 열리더니 하얗게 변해있는 눈동자가 보였다.
건강이 좋지 않은 반려동물과 산다는 것은 언제나 앞으로 닥칠 일을 마음속에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우렁이는 2년 전 산책을 하다가 봄철 아파트 화단에 뿌려놓은 유박비료를 먹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돌아오기까지 한 달이 걸렸고 그중 보름 동안 나의 하늘에는 언제 터질지 모를 물구름이 무겁게 표류하고 있었다. 우렁이는 생과 사의 문턱에서 무슨 이유에선지 생을 택했고 나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수의사 선생님은 우렁이가 잘 이겨냈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간만큼은 끝내 예전의 상태를 되찾지 못했다. 아무리 소량이라도 사람에게 마저 치명적인데, 유박비료를 이겨낸 개는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노라고 수의사는 말했다. 나는 그 뒤 매일 하루에 두 번 사료를 먹이기 한 시간 전에 수의사 선생님이 처방해준 간 보조제를 우렁이에게 꼬박꼬박 먹이고 시중에서 판매하는 영양제까지 구해 사료에 섞어주었다. 사료는 물론 간질환을 앓고 있는 반려견에게 맞는 것으로 주었다. 한 번 상한 간은 아무리 좋은 보조제와 영양제를 먹여도 원래대로 돌아올 가능성이 적다. 다만 더 악화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먹이는 것이다. 간의 건강을 알려주는 네 가지 효소 중에 어느 하나라도 그 지표가 기준치를 벗어나게 되면 우렁이는 곧바로 간성 혼수가 오거나 발작을 일으켜 죽을 수가 있다. 그렇게 2년 동안 나는 우렁이의 간수치를 지켜내기 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약을 먹이고 돌봐주며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일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내 앞에 검은 머리를 쑥 내밀며 칠흑같이 어두운 입을 벌려 모든 것을 어둠 속에 삼킬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란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 2년 동안은 그 시뮬레이션대로 우렁이가 죽음을 맞을 일은 생기지 않았었다. 우렁이는 나와 그리고 나머지 두 반려견과 행복한 나날을 보냈고 죽음은 아직 동쪽 하늘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둥지에 똬리를 튼 채 하얀 눈으로 두리번거리는 우렁이를 가만히 일으켜 세워 불러보았다. 아무리 크게 불러도 우렁이는 내게 오지 않았고, 두려움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다리를 덜덜 떨며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자리를 옮겨 안방 밖 복도로 나갔는데도 우렁이는 따라오지 않는다. 한참이 지난 뒤에 겨우 용기를 냈다는 듯이 다리를 뗐지만 얼마 가지도 못한 채 우렁이는 안방 문에 머리를 박는다. 박고 나서는 길을 잃은 채 비틀대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시 큰 소리로 불러보지만 우렁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갑작스러운 우렁이의 변화에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죽음이 내 등 뒤로 내려앉은 소리였다.
급성 당뇨로 인한 수정체 혼탁 현상과 청력 상실. 이번에 내린 수의사의 진단이었다. 급성 당뇨가 오는 일도 흔치 않고 급성 당뇨가 왔다고 한 순간에 백내장이 생기고 청력이 상실되는 경우도 흔치 않은 일이라고 한다. 우렁이는 흔치 않은 일만 당한다. 유기견이 되었다가 다시 한번 파양 되는 아픔을 껶고, 나에게 와서는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맞는다. 당뇨 수치가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 그대로 죽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경우라고 하는데 우렁이는 또다시 생과 사의 문턱에서 생의 문지방을 넘어 나에게 오려고 발버둥 친다. 우렁이는 죽음과 어떤 거래를 했을까. 내 등 뒤로 내려앉았던 죽음이 다시 자기가 있던 동쪽 하늘로 올라간 듯하다. 청력을 잃었던 우렁이는 수의사의 인슐린 처치로 청력이 어느 정도 돌아와 있다. 한번 잃은 시력은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우렁이는 나를 냄새 맡고 내 목소리를 듣고 배를 뒤집어 보이고 발버둥을 치며 반가워한다. 꼬리를 치고 먼 눈으로 나를 찾아내기 위해 병원 의자에 머리를 부딪혀 가며 날카로운 후각으로 내 체취를 추적한다. 죽음이 우렁이와 시간을 미루는 거래를 했다면 나와는 우렁이가 이렇듯 고통 속에서가 아닌 편안하게 마지막을 맞을 수 있도록 조금만 그 성깔을 죽이는 조건으로 거래를 했으면 좋겠다. 동쪽 하늘에서 음울하고 음흉하게 맴돌고 있지만 말고. 그동안에 찾아올 죽음을 대비해 머릿속을 그의 생각으로 채우고 내 주변의 생을 거둬가는 방식이나 거둬진 생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미리 그려내고 있는 내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그래 아무리 준비를 해도 죽음 내가 너를 적응하는 경우는 없을 것 같으니 부디 내게 소중한 존재를 거둬갈 때면 그 끝 모를 어둠과 고통을 품은 무자비한 입으로가 아닌 부드럽고 따뜻하고 편안한 손길로만 다루어주기를. 너에게 그런 손이 있기를.
인슐린 수치를 맞추고 간 수치가 안정이 되면 우렁이는 다시 내 품으로 돌아온다. 힘든 병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우렁이를 위해 나의 삶 역시 바쁘고 고달파지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돌봐줘야 할 사람은 존재는 어차피 늘어나게 되어 있으니 괜찮다 싶다. 그들의 생보다 더 잘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내 인생이기에 그들을 돌보고 편안하게 나이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만으로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