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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도 담담해질 수 없는 2

자식 일, 영원한 처음


 "아빠는 불같고 엄마는 돌 같아."

 고등학교 입시를 모두 치르고 난 딸아이가 나를 보며 말한다. 어쩌다가 아빠와 엄마를 불과 돌로 표현하는 대화가 오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딸아이는 가만히만 있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일반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포기하고 서류전형과 면접을 치러야만 진학할 수 있는 고등학교를 택했다. 면접도 학생 면접과 학부모 면접이 따로 이루어지는 고등학교다. 고등학교 입학에 학부모 면접이 웬 말이냐 하겠지만 분당에 그런 학교가 있더란다. 사실 이우학교를 입학하기 위해서는 학부모 면접과 학부모 자기소개서가 필수라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나는 혁신학교라고 해서 보낸 아이의 초등학교 교육체계와 선생님들에 적잖이 실망해 중학교 진학에 대해 꽤나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때 알게 된 학교가 이우학교였고 중학교를 이쪽으로 입학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나의 기대와 달리 아이는 이우 중학교의 입학을 거부했고 친구들과 익숙한 동네에서 중학교 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우학교는 그렇게 내 기억에서 사라졌었다. 


 전기 고등학교 지원 시기가 다가오자 학교가 꽤 어수선했던 모양이다 (딸아이는 교육 비평준화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과학고를 간다는 친구들, 국제고 외고를 간다는 친구들, 직업계 특성화고를 간다거나 마이스터 고를 지원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그리고 암울했던 중학교 생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가진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서류 전형 한 달 전에 기억 속에서 까마득하게 지워졌던 이우학교를 지원해보고 싶다는 말이 나오는 건지, 딸아이의 청천벽력 같은 선언에 그때부터 난 이우고등학교 입학과 관련된 정보들을 알아보고 이우고등학교 교육 체계와 이념, 학부모들의 경험담에 대해 잘 정리해 놓은 자료집을 찾아 한 달 동안 읽고 또 읽었다. 학부모 소개서는 또 어떤지... 20년 만에 쓰게 된 자기소개서는 그야말로 넝마,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가 도대체 내가 뭘 쓰고 있는 건지 모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나의 자소서는 자서전이 되었다가 약력이 되었다가 에세이가 되었다가 판타지 소설이 되었다가 다시 백지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딸아이 소개서까지 같이 봐주자니 한순간에 우리 가족의 역사가 우주 대폭발을 맞은 것처럼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산산이 흩어졌다. 하지만 우주 대폭발 뒤에는 하나의 별이 탄생한다고 했던가, 서류 전형 접수 5일 전이 되자 나도 딸아이도 자소서의 가닥을 잡고 무난하게 갈무리를 할 수 있었다. 





 "그래, 이 정도면 됐을 거야. 서류 전형에서 떨어진다면 학교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학교에 적합한 인물들이 아닌게지, 우리가 부족하다거나 뭘 잘못했다는 건 아니야! 그만하고 넘기자!" 그동안 작성한 두툼한 서류와 아이의 담임선생님께 받은 생기부와 추천서를 취합해 갈색의 서류 봉투 안에 넣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아이는 잔뜩 긴장한 내가 웃기다는 듯 배시시 웃기만 할 뿐이었다. 정작 본인은 이미 여러 달 전부터 생각하던 학교였기 때문에 무덤덤한 모양이었다(여러 달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면 미리 말을 하던가! 학교 입학 설명회도 가보지 못한 채 준비를 해야 하는 부모는 무슨 죄라고!). 이제 선생님께 받은 자료에 학부모와 아이의 자소서, 각종 증빙 서류 목록까지, 제법 두툼해진 서류봉투를 이우학교에 보낼 차례였다. 우편접수로 주어진 시간은 단 5일이었고 그중에 토요일과 일요일이 끼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다. 혹시 우편 접수를 하다가 분실되면 어떡하지? 우리나라의 등기속달 제도가 얼마나 잘 발달되어 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괜히 걱정이 되었다. 그런 걱정을 비단 나 혼자만 하는 건 아니었는지 서류접수 안내문에는 방문접수처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방문접수를 선택했다. 그런데 아뿔싸, 막상 이우학교에 도착하니 방문접수는 이제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어쩌지? 여기까지 왔는데 서류를 받지 않는다니!' 나는 동공 지진이 일어난 눈으로 행정 선생님을 쳐다보며 애처롭게 서류접수 안내문을 들이밀어 보였다.

 "방문접수처와 전화번호가 있는걸요." 나도 모르게 바닥에 바짝 달라붙어 기어가는 지네 같이 목소리가 찌부러졌다. 그런데 문제는 서류접수 방법에 있지 않았다. 서류전형 준비 기간을 너무 촉박하게 드렸던 것인지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챙겨주셔야 할 생기부 기록에 오류가 있었다. 나는 다시 차를 몰고 아이의 중학교로 갔고 제대로 기재된 생기부를 챙겨서 이우학교에 무사히 제출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평소 자지도 않는 늦은 오후의 잠에 깊이 빠졌다. 


 1차 서류전형 합격자 발표까지 일주일은 그럭저럭 보낸 것 같았다. 크게 떨리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았다. 나와 아이는 각자의 일상을 살아나갔고 남편은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당연히 1차는 통과한다는 쪽에 합격 패를 올렸다. 그리고 일주일 뒤 남편의 호언대로 1차 서류전형 합격 통지를 받았다. 아이의 1차 합격 통지를 받은 뒤부터 나는 "좋아 좋아, 우리 1차 합격자께서 좋다는데!" "역시 1차 합격자! 아주 독창적이야!" 등등 아이와 이야기를 할 때마다 1차 합격자임을 강조하며 아이를 띄워주었다. 그동안 커오면서 난생처음 보는 엄마의 행동에 아이는 적잖이 당황했고 -나는 어떤 일에든 표현이 꽤 건조한 편이라 남편도 아이도 제발 반응할 때 영혼을 좀 담아달라고 부탁하곤 한다- 나 역시도 새롭게 발견한 나 자신에게 웃음이 났다. 모르긴 몰라도 합격 발표를 기다리는 그 일주일 동안 무의식 중에 꽤나 걱정을 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서류 전형 합격 비율이 25%라면 그다음에 이루어지는 학생 면접과 학부모 면접에 적용되는 합격 비율은 각각 40%와 25% 기 때문이다. 엄마의 신나는 모습에 당황한 아이는 그 뒤부터 긴장을 하기 시작했고 나 역시도 면접에서 어떤 질문이 나오고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롯이 나를 위한 면접이었다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임할 텐데, 아이의 면접에 참고인과도 같은 자격으로 참석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이의 합격여부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때부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학부모 자소서를 쓰는 것도 꼬박 한 달이 걸렸는데, 40여분 진행되는 학부모 면접이라니.... 부모로서 허술하고 불완전하며 긴장되고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깊이 생각하고 대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나는 느리고 느리고 또 느린 성격이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든 행동을 하기 전에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표현이 건조하다, 영혼 없는 반응이라는 소리도 그래서 듣게 되는 것이고 남편에게 항상 듣는 대한 외국인이라는 소리도 대답할 말을 생각하느라 방송사고 수준의 긴 정적 상태를 흘려보내고, 적합한 표현을 찾기 위해 뇌를 풀가동 하느라 저 세상에 가있는 표정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텔레비전에 나오는 대한 외국인을 보니 우리나라 말을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잘하던데, 대한 외국인이라는 표현도 이제는 맞지는 않는 것 같다-. 2차 면접까지 1주일. 나와 딸은 흡사 머릿속에 감전 회로를 단 것처럼 일주일을 보냈다. 





 "아빠는 불같고 엄마는 돌 같아."는 말이 무슨 뜻인지 딸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기절한 듯 자고 일어난 뒤였다. 

 "아빠는 감정적이잖아. 면접할 때 입에 침이 마르도록 내 자랑을 했다며. 엄마는 내가 고입 입시 치른다니까 아무 일도 아닌 양 초연한 것 같더니 아빠 말로는 면접 때 완전히 얼었다던데?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완전 돌덩이가 됐다면서." 아이의 말이었다. 

 '머릿속에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그랬어! 이쒸! 그리고 너 엄마가 엄마 얘기 심지어 가족 자랑이라도 어디 가서 잘 안 하는 거 알잖아. 그런데 우리 가족에 대해서 너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는데 당황하지 않겠느냐고! 무슨 얘기부터 해야 하나 생각할라 치면 아빠가 먼저 치고 들어와서 청산유수 네 자랑을 하는데, 나 참 아무리 금쪽같은 내 자식이라지만 이 정도로 자랑을 해야 하나, 낯부끄럽기도 하고 되려 감점이 되지 않을까 겁이 났단 말이야. 그리고! 좀 차분하고 교양 있게 말하고 싶은데, 입만 뗐다 하면 무슨 염소가 새끼라도 낳고 있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는 걸 어떡하라고!' 

 딸에게 하고 싶은 변명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한숨만 내쉰 채 흐흐 웃음만 흘렸다. 면접관은 둘째치고 남편과 딸에게까지 내 밑천을 모두 내보인 날이다. 


 하아...


 이제 2차 합격자 발표까지 4일이 남았다. 

 "괜찮아! 2차 합격이야." 남편은 그렇게 말하지만 나는 또 소심해져서 딸아이에게 2차에서 떨어지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떨어진다면 그건 면접관들 보기에 우리가 정말 그들의 교육이념에 맞지 않는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라서기 때문이고, 오히려 입학하면 네 진로에 불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우리를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려준 것일 거라고 딸아이가 상심하지 않도록 설명하고 있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부디]라고 하며, [바랍니다]라는 문구를 무슨 기도문처럼 카톡 프로필 소개글에 올렸다. 


 아아, 자식 일은 무얼 해도 언제나 처음이고 혹여라도 나로 인해 잘못될까 언제나 두렵고 조급해지고 절대로 무심해질 수 없는, 담담해질 수 없는 그런 일이구나.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심장이 뜨겁게 달궈진 팬에 올린 콩처럼 탁탁 튀어 오르고 있다. 



-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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