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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에 MZ세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올해 들어 내 삶에 한 가지 변화를 주었다. 아이의 학교에서 지역공동체에 기반해 세운 '우주소년'이라는 작은 책방에 회원가입을 한 것이다. 그동안 작은 책방에 관심은 많았지만 어쩐지 책방에 출입하면 그 작은 공간에서의 내 움직임이 책방 주인에게 모두 읽히는 것 같아 부담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또 대형서점만큼 책이 많지도 않거니와 진열된 책들이 주로 책방지기의 취향을 반영한 것들이라 발길을 돌린 적도 있었다. 대형서점이나 중고서점은 서고의 간격이 넓거나 빼곡해서 직원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군데군데 처박혀 마음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책방에는 대부분 손님이 없기 때문에 깊은 정적 속에서 책방지기와 1:1이 되어 마주 앉은 채 책을 읽어야 할 때도 있다. 그렇게 앉아서 오랫동안 책을 읽다가 한 권도 사지 않고 그냥 나가는 날에는 마음이 또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은 책방이 좋았고 오랜 망설임 끝에 큰맘 먹고 우주소년이 운영하는 밴드에 가입했다. 처음에는 눈팅으로만 책방지기가 올리는 서평과 크고 작은 소식들, 이벤트들을 보면서 언제 한번 방문해 봐야지 마음을 먹은 찰나!


두둥!

3월에 독서모임을 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갈까? 말까? 갈까? 말까? 를 며칠 반복하다가 결국 처음부터 나답지 않게 너무 무리하지 말자 싶어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3월 중순이 다 지나서 이번에는 학교 밴드에 우주소년에서의 독서모임 참여를 독려하는 공지가 다시 올라왔다. 신청했다. 그것도 3월이 반이나 지나서야. 이렇게 될 바에 처음부터 신청해서 책이라도 느긋하게 읽을 걸, 후회하면서도 손가락은 재빨리 온라인 중고서점의 구매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2주 동안 부랴부랴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읽었고 모임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그날! 나의 핸드폰에 보건소 문자가 떴다.


'안녕하십니까 ***보건소입니다.

귀하게서는 코로나 19 확진자입니다. 감염병 예방법 제18조(역학조사)에 따라 어쩌고저쩌고~'



 걱정보다는 못마땅함이 몰려오는 이 기분을 어쩌나. 큰맘 먹고 신청한 모임인데, 회비까지 이미 입금했는데, 구시렁구시렁대며 모임 주최자에게 불참 의사를 알리는 문자를 보낸 것이 바로 일주일 전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고, 모임이 시작되는 그 시간에는 포대자루를 뒤집어쓰고 몽둥이를 맞는 것 같은 근육통과 오한으로 끙끙 앓았다. 자가격리 일주일이 지난 지금, 이제 근육통과 오한은 없지만 한 가지 증상이 사라지면 다른 증상이 시작되는 기묘한 경험을 하며 하루하루 코로나를 이겨내고 있다. 오늘의 증상은 후각 상실이다.  


 각설하고, 모임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읽은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브런치 지면을 통해 조금이나마 정리해볼까 한다. 사실 이런 장르의 책은 내 책장에 전무하다시피 해서 서평을 쓰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이번 리뷰는 인터뷰 방식을 조금 도입해서 작성해볼까 한다.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1.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어떤 책인가?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저자는 모두 열여섯 명이다. 각 글마다 이야기하는 소재는 모두 다르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사회문제, 가령 취업, 대학, 꿈, 결혼, 내 집 마련 등 한 번 씩은 고민해봤을 법한 내용을 담고 있다.

 1장에서는 저자들이 종말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법을 꽤나 현실감 있게 들려주고 있다. 2장에서는 그들 나름대로 이 시대에 저항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장과 2장 사이 그리고 2장과 3장 사이에는 이 책을 기획한 대통령 직속 국가 교육회의 위원 겸 청년특별위원장인 박석준 님이 온라인을 통해 저자들과 함께 나눈 좌담이 실려있다. 각각의 저자들이 직면한 사회문제 가운데 어느 부분에 비중을 두었는지를 대화 형식으로 풀어나갔다. 3장과 에필로그에서는 여러 객관적인 수치와 통계를 통해 이 시대 청년 세대가 맞닥뜨린 문제가 비단 한 세대만의 특정한 문제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준다.


2. 각 장 들여다보기

 1장에는 총 여섯 명의 저자가 현재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웹소설 작가 김수호 님과 강릉 운양초등학교 교사이자 강릉 청소년 마을학교 날다의 총괄 교사인 김기수 님, 다원예술 퍼포머이자 아로마테라피스트 박지은 님, 녹번동 초록집에 머물고 있는 중소기업 4년 차 직장인 연굳 님, 총신대학교 교수 김한나 님, 연구활동가 김태환 님이 현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겪은 어려움을 에세이처럼 풀어나간다.


'사회화'라는 말을 좋아했다. 홀로 살아남기 힘든 세상에서 비슷한 사람끼리 뭉치고, 비슷한 생각을 하며 서로 돕고 힘을 모아 살아가야 하니까. 하지만 이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서른 살이 되어서야 알았다. 나의 사회화는 선망, 욕망, 절망 도망, 실망처럼 ''망'으로 끝나는 말들로 가득했다. '나'라는 사람은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누군가가 만든 기준과 가치 속에 허우적거리는 내가 있었다. 그때부터 사회화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가 사회화란 이름으로 나의 삶에 관여하는 걸까. 사회화는 '망'으로 끝나는 여러 말들, 'X망' 속에 '나'를 잃어가는 폭력의 연속이 아닐까. 어떻게 하면 사회화라는 알을 깨고 나와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을까.

- 'X망 세상'에서 살아남기 중 (김기수)


자본으로 해석할 수 없는 것들도 가치를 숫자로 증명해야만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은 인적자원이 되었고, 교육은 학생들에게 등급을 매기기 시작했다. 학교는 우정을 나누는 곳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곳이 되었다. 실패하는 사람은 노력이 부족한 사람의 다른 말이었고, 노력이 부족한 사람은 도태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사노동도  온전히 자신의 몫인 사람과 그 모든 것이 타인에 의해 충족되는 사람의 시간은 같을 수가 없다. 물리적으로 하루 24시간이라는 점에서는 같겠지만, 그 점이 오히려 불평등의 원인이 된다. 가난은 책임져야 할 일이 많음을 뜻하고, 그 책임에 비례하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좋은 부모를 타고나는 것도 스펙이고 그러한 운이 따라주는 것도 실력이라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공정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개인의 노력과는 무관한 것들이 불공정을 정당화하는 게임에서 우리는 포기를 반복하며 살아갈 것인가.

86세대, X세대는 그 이름의 시작이 어찌 되었건 당사자들에 의해 수용되고 집단적 정체감을 형서하였다. 특히 86세대는 그러한 정체감을 바탕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힘을 지닌 주류세력이 되었다. 반면, 청년세대를 향한 무수히 많은 이름들은 주로 86세대들에 의해 해석되고 명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을 정치적 소비자로 객체화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름표라기보다 기득권이 달아준 꼬리표인 것이다.
 청년이 시대의 화두라지만 정작 청년들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구체제의 버스가 떠나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앞서 살펴보았듯 청년이 겪고 있는 문제는 청년세대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구조적 모순과 불평등이 빗어낸 결과이다. '악!'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청년들을 두고 '힘드니까 무엇을 해주겠다.'는 식의 땜질 처방은 구체제에 대한 연명치료이며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다.

-종말로의 초대 중 (박석준)


 2장에는 이러한 구체제의 땜질 처방이 오늘날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가를 일곱 명의 저자의 입을 통해 들려준다. 특히 전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생회장 김나현 님이 학생회장으로 마주한 대학의 민주주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에서 잘 나타난다.


 코로나 19 발생 초기 비대면 수업을 하는 상황에서,


나조차도 중학생 때부터 EBS를 포함한 인터넷 강의를 주로 들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당연히 학교에서 이와 비슷한 형태의 비대면 강의 계획을 마련해 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면담 시작 직후 내 앞으로 제출된 '비대면 강의 계획안'을 보고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했다. '교수의 강의 내용 음성 녹음 파일과 PPT 파일 제공'이 첫 번째로 적힌 학교의 자랑스러운 계획이었다.

그날 면담에서 학생들이 이야기할 시간은 주어졌지만 학교에서는 나를 포함한 학생대표들의 의견을 듣고 계획을 수정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되지 않아 교수들에게 그 계획안 그대로 비대면 수업 방식 공지가 보내졌다..... 나는 늘 우리 학생회 집행부 친구들이 수많은 데이터와 분석을 토대로 만든 기획안과 아이디어를 갖고 학교를 찾아갔지만, 학교는 '학생들이 뭘 몰라서 그런다'며 반려시켰다.

그해 10월 나는 부총장으로부터 "네가 시장잡배냐?"라는 말을 들었다. 학교 집행부와 학생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인 회의에서였다.... 그 부총장은 눈을 부릅뜨고 내게 "너 정치하냐?"하고 물었다. 오히려 부총장에게 '정치의 의미를 알고 내게 말한 것이냐'라고 묻고 싶었지만 괜한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때 총장이 한마디 덧붙였다. 교수가 학생에게 어디 반말할 수도 있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 요지였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른들에게 또 한 소리를 들어서가 아니었다. 강의실이 아닌 학교 행정과 정책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이 테이블에서 강의실 위계질서를 그대로 가져온 총장, 부총장 포함 대학 처장단의 낡은 사고방식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에서였다. 그분들의 머릿속에 학생들은 그저 강의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 피교육자일 뿐, 대학에서 어떠한 의제에 대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동등한 주체로 인식되지는 못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교수씩이나 되는 지성인들이, 또 과거에 우리와 같은 나이로 살아갈 때 독재정부에게 민주화를 요구했던 이들이 이러한 논리를 펼치는 것이 이상하고 또 수상했다.

-학생회장으로 마주한 대학의 민주주의 중 (김나현)

 

 2장에는 그 외에도 대학 알리 대표이자 발행인인 차종관 님이 맞닥뜨린 대학 공동체의 현실과 그 대응 방안으로써 대학 사회의 언론 자유 실현을 사명으로 안고 살게 된 경위를 그리고 있으며,

 제주도에 살면서 제주도 지역 공동체 내에서의 청년들의 역할을 새롭게 고민하고 지역 내 청년 일자리 창출에 힘쓰고 있는 전국 청년정책네트워크 정책위원장 강보배 님의 이야기도 실려있다.

 대기업 직장인이었지만 월급만으로는 집 한 채 살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투자로 돈을 벌어 퇴사까지 하게 된 강용석 님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솔깃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또 여성 청년 활동가로 진로를 전향한 이누리 님, 협동조합 고치의 이사로서 문화기획, 마을교육, 청년 정책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서원 님 모두 종말로 향해가는 한국사회에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모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단지 이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용접공 작가 천현우 씨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공정에 문제제기를 하며 우리 사회 전반의 구조적 모순과 불평등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기득권층과 미래세대를 이끌어갈 청년층 모두 살아나갈 수 없다고 외치고 있다.

오랫동안 '경쟁≒노력"이라는 명제에 반기를 들지 못했다. 근데 책을 보면 볼수록 세상을 알면 알수록, 저 공식은 그저 불공평의 정원에서 무럭무럭 자라난 나무임을 깨달았다. 그들이 말하는 경쟁, 즉 시험 선발은 불공평하고 비합리적인 데다가 효율도 아주 나쁜 제도였다. 그러나 이미 시험 선발로 자리를 차지한 자들은 이 사실을 애써 부인했다. 그 혹세무민의 끝을 느낀 사건이 바로 공공 의대 사건이다. 그때 의료인 숫자를 늘리자는 이야기에 반박하는 의사들과 엘리트들의 모습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없는 사람들이 참아야 하는 이유'는 언제나 단순했다. 노력 부족, 개인의 재능, 시장성 없음 등이었다. 반면 '있는 사람들이 양보해야 할 때'는 온갖 복잡한 논리가 난무했다. 그들의 말을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명백한 사실 하나는 깨달았다. 바로 저들은 애초에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생각이 없다는 것. '내 말을 못 알아듣겠지? 그런 닥치고 우리말에 따르기나 해라.' 건전한 논쟁이 아니라 전문 지식으로 찍어 누르려는 그 오만한 모습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여기서의 공정은 명문대와 대기업의 좁은 문을 두고 다투는 경쟁을 긍정하면서 출발한다. 공정론의 핵심은 '경쟁이란 곧 필연이니 차라리 모두들에게 똑같은 룰을 적용시키자!'다. 여기서 사용된 공정이란 단어에 따르면,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모든 시도가 불공정 행위가 된다. 농어촌 전형, 여성할당제, 장애인 채용, 국가장학금, 지역전형, 비정규직 정규직화. 약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마저 모두 반칙과 특혜로 몰아붙인다. 그들의 얼마 안 되는 할당 몫까지 몽땅 경쟁의 장으로 가져오라며 윽박지른다.

이러한 공정론이 왜 지지를 얻었는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표준 취업 경로는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이 대표하는 15%의 성 안으로 입성하는 걸 전제로 만들어져 왔다. 즉, 애초에 대다수가 들어가지 못할 직업세계가 기본값이라는 뜻. 이 15%의 직장의 공통점은 연공급제를 통한 임금 상승과 고용보장을 동시에 누린다. 경력을 쌓아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할 수 있다. 반대로 85%의 성 밖은 아주 가혹하다. 월급은 최저임금에서 맴돌며 비정규직으로 온갖 일터를 전전한다. 경력 대신 나이만 쌓여간다. 이럴진대 성 안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 선발의 공정에 안 민감할 수가 없다.

문제는 시험 룰로 옥신각신하는 한 줌짜리 공정 따위가 아니다. 불공평이 너무 오랫동안 쌓여 잘못된 구조 자체를 망각하는 게 진짜 문제다. 절반조차 살아남지 못하는 가혹한 불평등 구조. 이 구조를 정당하고 유포한 이들은 과연 누굴까. 멸 달 전 한강 의대생 사망 사건을 보며 확신했다. 대중들의 기이할 수준의 엘리트 선망은 언론이 부추긴 감정이었다. 물론 사람이 죽은 일이다. 안타까운 일 맞다. 하지만 이게 그렇게나 공론화의 가치가 있는 일이었나? 차라리 사회 구조적인 문제랑 얽힌 청년 문제들, 수많은 현장 실습생 사망 사건들이 훨씬 공론할 가치가 있지 않나? 언론이 이 모양이니 지방대생도 복학왕의 이미지에서 좀처럼 벗어나질 못한다.

사회 근간을 지탱하는 노동자들은 시장 가치가 아니라 일의 중요성만큼 대우와 존중을 받아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위에서 말한 대표성 불평등도 개선해야 한다.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이 아닌 노동자들은 산재 사망 때나 소환된다. 구성원 비율로 보면 이들이 훨씬 다수인데도 소수자 문제마냥 다루어지고 있다. 수많은 필수 노동자들에게 마이크를 쥐여 주고 질릴 만큼 문제 제기를 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이분들이야말로 힘들다고 말할 자격을 넘치도록 가진 분들 아니겠는가.

-경쟁하기 싫다 중 (천현우)


 3. 이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제목을 보아서는 언뜻 무거운 이야기만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책을 기획한 박석준 님 역시 두 번째 좌담에서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기획하는 단계에서 책이 너무 무겁고 어둡게 느껴진단 이야기가 나왔다고 할 정도니 당연한 얘기지만 즐. 겁. 게 읽을만한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청년 세대의 삶을 비관적으로만 조명한다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가령 학교와 지역사회의 연계로 지역 청년들의 미래 일자리 창출에 힘쓰고 있는 전국 청년정책네트워크 정책위원장 강보배 님의 행보와 한 사회의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대학 언론의 민주화를 위해 듣도 보도 못한 일들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 대학 알리 대표 차종관 님의 이야기, 청년운동이니 여성운동이니 됐고! 지구를 구하자! 며 여성, 청년, 인권, 평등 다방면 분과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누리 님의 행보는 오늘날의 청년세대뿐 아니라 답답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기성세대에 조차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문제에 대해 논의를 촉발시키고 전혀 새로운 발상으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함께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과 희망을 보여 준다.


 이 책은 1장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도 되지만, 책날개에 소개되어 있는 각 저자의 프로필을 먼저 읽은 다음, 관심이 가는 저자의 글부터 찾아서 읽는 형식으로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나의 경우 대통령 직속 국가 교육회의 위원 겸 청년특별위원장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갖고 있는 박석준 님의 프로필을 읽자마자,

 "대통령 직속기관 씩이나 되는 곳에 소속된 사람이 사회문제에 대해 얘기하면 얼마나 얘기한다고? 권력이라는 타성에 젖어 청년들이 맞닥뜨린 어려움을, 이 세대가 허덕이고 있는 문제들을 과연 진지하고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탁상공론이나 하며 책 한 권 더 낸 거겠지..." 하며 흔히들 공무원, 국가기관 등에 갖는 고정관념을 갖고 박석준 님의 글부터 펼쳐보았다. 하지만 "자, 뭐라고 하는지나 보자고." 하는 마음으로 펼쳐보았던 박석준 님의 글 '종말로의 초대'를 읽고 나는 속으로 '어어?' 하게 되었다. 결코 가볍지 않고 진지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담담한 이야기 속에서 나는 이 책의 다른 저자들의 글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세 번째도 타이틀이 거창한 저자들부터 찾아서 읽다가 나는 결국 마음을 고쳐먹고 이 책이 의도한 바, 책의 맨 첫 장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으로 다시 돌아가 이 시대 청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 책은 처음부터 차근히 읽어나가도 좋고 중간부터 궁금한 부분을 찾아서 읽어도 좋다. 결국에는 지나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와 또 읽어보게 되고, 공감하게 되는 부분들에는 밑줄을 긋게 되고, 딸아이에게 읽어보라고 해보고 싶은 부분은 책장 모서리를 접게 되는 책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사회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좌절하고 어쩔 수 없이 포기하기도 하는, 또 포기하기도 했던 인생을 살고 있는 열 세 명 저자들 이야기 중에는 반드시 내가 살아왔던 행보를 보여주는 저자가 있기에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게 된다. 내가 살던 시대에 경험했던 어려움들이 이 시대에 아직까지도 잔존해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게 되고, 앞으로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게 된다. 대기업 쇼핑몰의 상술과 코로나 19 팬데믹, 어지러운 세계정세 속에서도 시장 상인들이 살아나갈 수 있도록 카카오 페이라는 결제 시스템을 시장에 도입해 판매와 배달 다방면에서 길을 모색한 시장연합의 똑똑한 청년 조합원에게 박수를 보내게 된다. 비록 책의 제목은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지만, 그 안에는 청년뿐 아니라 기성세대와 노인들이 함께 살기 위한 길을 모색하는 경험들이 각 저자들의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


4. 이 책은 누가 읽으면 좋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한민국 국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가 읽어보았으면 한다. 물론 너무 어린 자녀들은 제외하고. 그렇지만 혹시 누가 알겠는가? 그 어린 자녀들이 자라 언젠가 헌책방 구석에 처박혀 있는 이 책을 발견하고는 '아, 우리 부모세대에게는 이런 고민이 있었구나. 지금의 나보다도 혹은 지금의 나처럼 치열했구나.' -부디 지금의 나보다는 덜 치열했구나 하는 생각은 안 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특히나 하루가 멀다 하고 텔레비전에 나와 그들 멋대로 지어낸 MZ세대라는 이름 꼬리표를 청년에게 달고는 땜질식 청년정책이니 미래세대의 연금정책이니 실효성 없는 일자리 정책을 내놓고 천박한 말로 탁상 앞에서 서로를 헐뜯는 두 거대 정당의 의원들에게 이 책을 추천! 하는 바이다. 제발 그들에게 이 책을 읽고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는 지성과 감성이 있기를, 그리하여 제대로 된 길로써 이들 청년의 미래를 보장하고 기성세대의 노후를 보장할 수 있는 현명한 정책을 내놓을 수 있기를.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행복한 청년이 만들어 낸 모두를 위한 나라가 있. 다.」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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