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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사, 그리고 오랑우탄 두 마리

멈춤을 이야기하다



사람이 외면하고 싶은 어떤 사실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부정하고 싶은,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게 되지만 양 어깨 위에 오랑우탄 두 마리가 앉아있는 것처럼 그 무게를 무시할 수 없는 어떤 사실.   


아이가 망원동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서울 나들이를 나섰다. 망원동이라는 동네는 나도 처음. 3년 만의 방역 규제 완화로 거리는 봄나들이 인파로 북적였다. 주차 공간을 찾는데만 진이 다 빠져서 과연 망원동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던 찰나 골목골목 가벼운 옷차림으로 친구와 연인과 가족과 나온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고 조급한 마음이 저절로 느슨해졌다. 봄바람의 영향 때문일까, 마음속에 배경음악처럼 울린 다린의 음악 때문일까. 


'5년이 걸렸구나. 내가 일을 내려놓기 위해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구나.'

오른쪽 어깨에 앉은 오랑우탄이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지쳐하기도 지쳤다는 듯, 허탈하게, 조금은 슬프게. 


브런치를 시작할 즈음이었던 것 같다. 마음속으로는 하던 일을 이제 그만 놓아야겠다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그러지 못해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심화과정 수업을 들었었다. 같은 맥락의 일에서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분야를 도전해보자 생각했었다. 그리고 수업이 한 차시 한 차시 진행될수록 이제 그만 일을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명확해졌다. 


나는 번역을 그만하고 싶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앞으로 나가지도 멈추지도 못하고 울었다. 


나는 번역하는 일이 너무 좋았다. 번역을 처음 시작할 때 그랬다. 이 일이 앞으로 나의 업이 될지 무엇이 될지 알지도 못한 채 그저 좋아 오랜 시간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일했다. 쉬운 문장을 우리말로 맛깔나게 옮겨놓는 것도 좋았고, 어려운 문장이나 단어를 어떻게든 풀어내 우리 문장으로 단아하게 옮기는 것도 좋았다. 책상과 의자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멋졌다. 사랑을 하는 순간에도 그렇지 않은 순간에도, 아픈 순간에조차. 어느 공간이든 관계없이 문자와 내가 만들어내는 소우주가 좋았다. 


그런데 

점점 지쳤더란다.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결혼한 뒤로 일이 힘들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랜 시간 집중을 요하는 일이었기에 집안 살림을 하면서, 양가 부모님을 모시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일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하루에 한두 시간 눈을 붙인 게 전부인 날이 많았다. 힘들어서 울었지만 그래도 나는 앞으로 나갔다. 일을 해서 행복했다. 내가 나를 정의할 수 있는 유일한 타이틀이었기 때문이다. 누구의 딸, 누구의 며느리, 아내, 엄마가 아니라, 번역가 아무개로서.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깨달음은 이미 오래전에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한 해 두 해, 실력이 늘고 경력이 쌓이는 동안 나는 내가 내놓은 작업물에 대해 단 한 번도 더 나은 대우를 받는다거나 심지어 심적으로 응원을 받은 적도 없었다. 회사는 나의 요구와 항의 회유를 단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다. 내가 내놓은 작업물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이름이 또는 회사 대표의 이름이 심지어는 그 딸의 이름이 번역가 이름으로 올라간 적도 있었다. 딸은 번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일에 대해서 그 어떤 법적 절차도 밟지 못했다. 돈도 없고 방법도 몰랐지만 이 회사가 아니었다면 아동 청소년 문학 번역을 접해보지도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고마움 때문이기도 했다. 그 딸은 지금 번역 에이전시라는 명목으로 출판사들을 돌아다니며 일감을 가져오고 있고, 직접 번역을 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서점에 출간되는 번역서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번역 심화 과정을 들으면서 교수님이 얘기해주신 말이 가슴을 짓눌렀다. 여전히 많은 번역가들이 자신이 하는 작업물에 대해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출판사들은 번역가 알기를 호구 알듯 하고, 조금만 눈을 돌리면 값싼 해외 유학파 아르바이트생 번역가들이, 경력 단절이 되지 않기 위해 부르는 값에 일거리를 넘겨받는 주부 번역가들이 널려 있기에 - 그것이 나를 지칭하는 것인지는 심화과정을 듣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 싼 값으로 얼마든지 자기 몸값을 높이려는 번역가들을 대체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심화과정 수업을 들으면서 오랫동안 욕심을 내었던 종교와 철학, 성인 문학 분야로 발을 넓히려고 했던 내 마지막 남은 불씨는 맥없이 꺼져버렸다. 그야말로 지쳤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힘들게 공부해서 어렵게 새로운 분야로의 문을 열고 그 과정을 다시 반복한다는 사실이..... 글을 쓰는 지금도 번역을 하고 있는 게 아닌데도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힘들고 맥 빠진다. 


어떻게든 내 가치를 높여야겠다는 생각에 투쟁을 하기 시작한 것이 5년 전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거래하던 회사와 손절하기로 마음을 먹고 이 회사 저 회사에 내 이력을 보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출판사에 직접 이력서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덩치가 작은 아동 청소년 문학 전문 출판사는 싼 값에 일감을 넘길 수 있는 번역회사가 있는데 굳이 내 이력서를 눈여겨볼 리 없었다. 덩치 큰 출판사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거래하는 터줏대감 번역가들이 있다. 이력서를 넣고 기다리고 또 넣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마음은 조급해졌고,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소식을 전한다는 이전 회사의 계획적인 문안 메일 앞에 내 의지는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어느새 나는 이전 회사에서 제시하는 터무니없는 가격에 내 시간들을 파묻고 있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나는 안으로 함몰하는 삶을 살았다.


일 년 전부터 모든 일에서 손을 뗐지만 나는 내 상황을 입 밖으로 한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 앞으로 나가지도 멈추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다른 일에 눈을 돌리기도 했지만 어느 것 하나 마음 깊숙이 스며들거나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지 못했다. 나는 인터넷 서점에서 내 이름을 찾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았고 아마존에 새로 나온 외서가 무엇이 있는지 검색하는 일도 그만두었다. 책을 손에 펼쳐 드는 일도 무의식적으로 피했다. 책에 시선이 가는 것 자체가 아프고 힘들었다. 기분 좋게 차갑고 빳빳한 겉표지를 펼치고 나면 마주하게 되는 활자들이, 그 전에는 나를 작은 소우주로 안내했던 그 활자들이 깨진 유리조각이 되어 내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서점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책을 보면 심장이 짓뭉게지는 것 같았다. 나는 서점을 멀리했다. 


남편이 요새는 왜 책을 읽지 않느냐고 했던 일이 단편 단편 떠오른다. 나는 '그냥 별로.....'라는 말로 얼버무리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다가 재작년 겨울 즈음에 남편이 새로 발견했다는 북카페에 나를 데려가 주었다. 발걸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내가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북카페를 찾았을 남편의 마음이 고마워 가볍게 데이트하는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북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낮게 깔린 음악과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만든 공동空洞 안에 사람들의 의식이 활자를 따라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어느새 겉표지가 맑고 푸른 책 앞에 서 있었고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다시 책을 읽고 있다. 손에 책을 들고 읽는다는 행위 외에는 그 어떤 의미도 없는 독서로서의 독서. 갓난아이가 걸음마를 떼듯 한 장 한 장 책장을 정성스럽게 넘긴다.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때로는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는 글쓰기를 하고 책을 읽으며 번역과 작별하는 시간을 가졌다. 


망원동 봄바람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나가는 계절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 때문이었을까. 이제 말해도 되지 않을까, 망원동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오른쪽 어깨 위에 앉은 오랑우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오른편 차장 너머 한강으로 지는 노을을 잘도 감상하면서.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어. 

앞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게 될 딸아이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매일 회사 가기 싫다고 투덜대는 남편이지만, 그래서 불안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런 남편에게 온전히 의지해보고 싶기도 해. 

앞으로의 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따위 앞서 걱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들과 함께 살고 싶어. 


왼쪽 어깨 위에 앉은 오랑우탄에게 그렇게 말했더니 그렇게 해도 되지 않을까 대답해준다. 왼편의 한강은 다리 난간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면서. 


또 하루키 이야기인가 하겠지만 내게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번역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 한다. 하루키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계산사라는 직업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

그러고서 그들은 나에게 샤플의 방법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혼자서만 할 것, 한밤중에 할 것, 배가 부르거나 공복 상태가 아닐 때 할 것, 그리고 정해져 있는 음성 패턴을 세 차례 반복해서 들을 것, 그것에 의해서 나는 세계의 끝이라는 드라마를 콜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콜 되는 것과 동시에 내 의식은 혼돈 속으로 가라앉는다. 나는 그 혼돈 속에서 수치를 샤플한다. 
샤플이 끝나면 세계의 끝의 콜도 해제되고, 내 의식도 혼돈 밖으로 나온다. 샤플은 완성되고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역샤플은 문자 그대로 그 반대다. 역샤플을 하기 위해서는 역샤플용 음성 패턴을 듣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내부에 입력된 프로그램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무의식의 터널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내부를 빠져나갈 뿐이다. 그래서 나는 샤플을 할 때마다 몹시 무방비하고 불안정한 기분이 된다. 세뇌 작업은 별도다. 세뇌 작업은 힘은 들지만, 그것을 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 긍지를 지닐 수 있다. 모든 능력을 그곳에 집중시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것에 반해서 샤프링 작업에는 긍지도 능력도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용당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도 모르는 나의 의식을 이용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인가를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샤프링 작업에 관한 한 나는 내 자신을 계산사라고 부를 수가 없다. 
 또한 내게는 좋아하는 계산 방식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 나는 세뇌 작업과 샤프링이라는 두 가지 방식에 대한 면허를 받고 있으며, 그것을 멋대로 바꾸는 것은 엄하게 금지되어 있다. 만약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산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계산사를 그만 둘 생각이 없다. 조직과 마찰만 빚지 않는다면, 개인으로서 계산사만큼 자유롭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은 달리 없으며 수입도 좋다. 15년만 일하면, 그다음엔 편하게 살아 나갈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모을 수가 있다. 
-11. 착의, 수박, 혼돈 (샤프링의 끝없는 고통) 중에서


                                                                 *

나는 주어진 수치를 오른쪽 뇌에 넣어 전혀 다른 기호로 전환시킨 다음 왼쪽 뇌로 옮기고 왼쪽 뇌로 옮긴 것은 또 처음과 전혀 다른 숫자로 끄집어내어 타이프 용지에 쳐 나갔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이것이 바로 세뇌다. 
 전환 코드는 계산사에 따라 각기 다르다. 이 코드가 난수표와 전혀 다른 점은 그 도형성에 있는데, 결국 오른쪽 뇌와 왼쪽 뇌(이것은 물론 편의적인 구분이다. 결코 진짜로 뇌가 좌우로 나뉘어 있는 것은 아니다)의 갈라진 양식에 비밀의 열쇠가 숨겨져 있다. 
-3. 비옷, 야미쿠로, 세뇌 작업 (노박사의 소리 뽑기) 중에서 


스물다섯에 처음 번역을 접했을 때, 대학 초년생 시절에 읽었던 하루키의 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생각났었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일은 하루키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묘사한 계산사의 일과 같을지도 모르겠구나, 가슴이 마구 뛰었었다. 난생처음 보는 외서를 손에 들고 활자들이 보여주는 세계로 빨려 들어갔을 때는 주인공이 샤프링 작업이라고 명명한 경험을 하는 것 같았고 그 카오스의 세계를 정돈된 우리 문장으로 한 줄씩 완성해나갈 때는 진정한 계산사가 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주인공이 이야기한 15년을 넘기지 못했다. 조직과의 마찰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었고, 그러는 사이 나는 계산사라는 직업에 완전히 지쳐버렸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주인공은 어땠더라? 그는 15년을 넘기고 진정한 계산사로써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오래전에 읽은 거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참에 다시 읽어야겠다. 


앞으로 나가지도 멈추지도 못한 채 울기만 했던 마지막 해에 북카페에서 내가 마주한 책은 [모든 밤을 지나는 당신에게]였다. 밤이 되기 직전 해거름에 잠시 반짝 빛나는 선명한 푸른빛의 책 표지에 이끌려, 나는 이윽고 내 젊은 시절의 뜨거웠던 여정을 멈출 수 있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천천히 가라고 천천히. 그래도 되니까. 한 마디 한 마디, 한 음절 한 음절 소리 내어 말한 뒤에 이제 됐다 싶은 순간에 발을 떼도 늦지 않아. 

한강 다리를 모두 건널 즈음 양 어깨 위에 앉은 오랑우탄 두 마리가 시시하다는 듯이 허리를 구부정하게 말고서는 시큰둥하게 대답해주었다. 


나는 자유로워진 것일까? 


앞으로 또 어딘가로 나아가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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