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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도

민화를 그립니다: 골골대지만 감사합니다


골골대며 글을 올려봅니다.

침대에 널브러져 누워 익숙한 안방 천장을 바라보며 가만히 몸의 감각에 집중을 해보니,

머리가 지끈거리고

맑은 콧물이 잔뜩 막힌 콧속을 비집고 나와  쉴 새 없이 흐르고 -염치  없는 것!-

목 구녕이 따끔따끔 편도선이 욱신욱신 쓴맛이 느껴집니다.

몸은 빨랫방망이로 끈질기게 두드리다가 찬물을 확 끼얹은 빨래처럼 욱신욱신 으슬으슬 대다 식은땀이 주욱 흐르고

주책맞은 뱃골은 눈치도 없이 베베 꼬이다가 귀띔도 없이 묽은 것들을 내보내겠다고 난리를 칩니다.

그즈음되면 거의 탈진 상태가 되어 팔도 다리도 후들후들, 덮고 있는 이불도 부르르 떱니다.


핸드폰으로 글을 쓰다가 내려놓고 쓰다가 내려놓고, 건강할 땐 쓰지 않더니 왜 구태여 아플 때 이러는지 정신상태가 의아스러워지는 순간입니다.


추석이 지나고 연화도를 완성했습니다.


<연화도> 언뜻 보면 그럴듯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엉터리 투성이다


연화도를 완성하고 이번 주 초부터 저런 난리부르스가 시작되었네요. 일주일간 매일 약을 한주먹씩 먹어도 낮질 않는 게, 아무래도 그동안 몸을 막 굴린 주인에게 본때를 보여주려는 듯 몸이 시위를 하는 것 같습니다. 화염병과 물대포가 난무하는 꽤나 과격한 시위입니다.


선을 따고 첫 색을 입히는데 왜 그리 떨리는지...모란도 때보다 이파리 면적이 커서 잔뜩 긴장한 모양이다


지난 5월부터 부재한 엄마를 대신해 나이 아흔이 되신 아버지를 돌보러 일주일에 두 번씩 서울을 오갔습니다.

나의 아버지기에 일주일간 드실 반찬과 집안 청소며 빨래, 병원 외출을 하는 게 고역은 아니었습니다. 조금 힘들구나 생각 들어도 딸이 오면 생기를 되찾고 반가워하는 아버지를 보면 두 번이 아니라 매일 찾아뵙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지요.

참 이상도 하지... 아버지라고 하면 사실 고마움보다 원망이, 사랑보다는 미움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해 왔었는데 나이가 들어 걸음도 제대로 못하고 그렇게 아들, 아들 하 분이 아들 내외보다는 딸들이 오는 걸 더 반기는 모습을 보며 겹겹이 단단하게 쌓여 있 마음속 무거운 돌덩이들이 흔들거리며 틈이 생깁니다.


모란도 때도 꽃잎에 색을 입혔는데 이상하게 연화도의 꽃잎은 더 어려웠다.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맨 왼쪽의 큰 꽃잎이 민화선생님께서 바림해주신 것이고 나머진 그야말 혼돈의 카오스다


지난 세 달 동안 아버진 코로나에 걸리시고 홀로 외출을 하셨다가 당신도 모르게 균형을 잃고 쓰러져 머리를 다치셨습니다.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아버지가 넘어진 자리를 찾아가 병원에 모시고 갔던 게 불과 한 달 전이네요. 코로나에 걸리셨을 때는 남편과 딸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주일간 함께 격리생활을 하며 돌봐드리고, 머리를 다치셨을 땐 밤새 응급실을 지키며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습니다.

다행히 아버지는 코로나도 이겨내시고 머리에도 아무 이상 없이 어머니가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며 다음 주에 제가 아오기를 기대합니다.


맨 위칸 오른쪽 이파리가 선생님께서 바림해 주신 것이고 오른쪽 이파리는 내가 한 것. 순간 수채화를 배워야 했었나 고민스러웠다


아버지를 러 가는 날이 아니면 딸아이 일로 학교를 오갔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드러난 아이의 정서적인 짐이 걱정되어 선생님과 의사와 다방면에 상담을 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녔습니다.

언젠가는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거라는 희망적인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딸아이의 마음은 여전히 으깨지기 쉬운 젤리처럼 불안정하지만 나의 사랑하는 딸이기에 언젠가 글에 썼듯 아이가 넓은 바다에 나가도 두려워하지 않고 파도를 타기를 기도해봅니다.


연잎 뒷면은 바림이 그런대로 나온 것 같아 한숨 돌렸다. 그래 이렇게 하나하나씩 해나가는 거야! 그런데 가시에 가서 다시 좌절ㅜ.ㅡ 왼쪽이 선생님 오른쪽이 내 것. 병난 것 같다!


아버지와 딸아이를 돌보지 않는 시간이면 반려견을 산책시키고 집안을 돌보고 남편을 챙기고 틈틈이 그렇게  민화를 그렸습니다. 남편의 도움과 민화를 그릴 때의 그 집중하는 시간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런데도 이 염치없는 몸뚱이는 시위를 하고 있네요. 철없는 것!


그 모든 시간들을 겪는 동안 남편은 저를 도왔습니다.

보통은 '남편은 묵묵히 저를 도왔습니다.'를 떠올리겠지만 그렇지는 않고 ^^; 장난기 많은 이 양반, 팍팍 티 내며 장난을 걸며 도왔네요.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묵묵히 돕는 우직한 남편을 바라는 바이지만 묵묵히 돕든 장난기 넘치는 말들로 티를 팍팍 내며 돕든 우직하고 고맙긴 마찬가지니 아무래도 좋습니다... 남편은 나에게 85% 저리 즈음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나는 왜 그림의 윤곽선이 또렸해야 안심이 될까? 선생님께서 은은하게 연꽃의 윤곽을 정리하랬는데 또 다시 우끼요에처럼 되버렸다! 민환데!!



부르르 떨리는 이불속에서 남궁인 작가의  [제법 안온한 날들]에 나오는 한 구절이 마음속 깊은 곳에 감사하게 스며듭니다.


<감사하다는 말>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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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에서 나오는 말로 들릴 때도 있지만 때로는 으레 그런 상황에서 필요에 의해 주고받는 듯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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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의 시대를 살고 있는 나, 그리고 우리를 생각했다. 혹자는 그 감사함이 얼마나 진실된 감정인지 파악하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아르바이트 생이나 환자처럼 누군가를 응대해야 하거나 낯선 이를 믿어야 하는 사람이 먼저 감사를 표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의 태도나 자격이다. 우리는 종종 감사를 표하는 사람에게 폭언을 가하거나 얼굴에 햄버거를 던지는 일을 목격한다.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실상 도움은 내가 받고 있는 것이며, 그 말을 갚으려면 그들의 일이 조금이라도 순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생각 없이, 다만 자신이 순간적으로 관계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상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일수록 책임이 더 크다. 흩어지는 수많은 언어 속에서 감사하다는 말의 의미를 정작 되새겨야 할 쪽은 어느 쪽일까.


아버지를 뵙고 돌아갈 때면 아버지는 빼놓지 않고 제게 "고맙다. 고맙다." 고 하십니다.

자기 무게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딸아이도 마음이 잔잔한 날이면 '가족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하는 식으로 "엄마 고마워."  툭 던집니다.

남편은 뜬금없이 옆구리를 쿡 찌르고 배시시 웃고 갑니다.

반려견 세 마리는 언제나 그렇듯 눈만 마주치면 꼬리를 흔들어 줍니다.

엄마는 먼 이국 땅에서 제게 고맙다고 하고

장사를 하느라 바쁜 언니를 위해 추석 음식을 조금 나누어주었더니 언니는 제게 답례로 굳이 커피 한 잔을 내려 주차장까지 내려와 건네줍니다.

이번 추석은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어 황도 한 상자를 들려 보냈을 뿐인데 동서는 너무 달고 맛있다며 전화를 줍니다.

상담을 마친 뒤 선생님과 상담사님이 어려운 걸음 하시느라 고생했다며 감사하다 합니다.

나는 내 마음 편하자고 한 일인데 모두 고맙다고 합니다.


남궁인 작가의 말대로라면 나는 이제 큰 일 났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 말을 들을만한 자격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일이지만 그래도 좋은 건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저야말로,

골골대지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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