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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ONN 에콘 Dec 02. 2022

둘째는 다 안다.

첫째의 사춘기.


사춘기라는 터널의 시작이 언제이고 그 끝이 어디쯤인지 모든 부모가 알면 좋으련만, 선천적으로 아프단 이유로 유대감이 강했던 첫째와 나의 예민한 관계에서 조차, 중2짜리 첫째의 사춘기 시작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말 수가 줄어도 몸 어디가 불편하겠지, 방문을 닫아도 내가 알면 속상할까 봐 그런 것이겠지 가늠이 잘 안 됐다.

거기에 시험 스트레스까지 겹치니 혼자 공부하는 첫째를 방해하면 안 되겠다는 일념으로 난 사춘기라는 팻말을 저기 뒤에 감추어 놓았었다.


서너 달 전, 한창 더운 어느 날, 첫째는 폭탄선언을 했다.


"나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 갈 거야. 꼭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그러려면 미국의 **대학교를 가야 하고, **대학교 입학을 위해선 고등학교는 미국에서 나오는 게 좋을 것 같아."


보통 첫째는 아주 사소한 일까지 나와 의논하는 편이었다. 어느 날, 어떤 옷을 입을지부터 친구와 관계가 소원해졌는데 그게 어떤 말 때문이었다 등.. 시시콜콜의 어원이 우리 관계에서 비롯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미국 유학이라니? 그것도 1년 반 뒤인 고등학교 때?

아이의 꿈을 어떤 식으로 이루어나가게 해줘야 할지 고민은 고사하고 내 머릿속은, 며칠 전 세브란스에서 받은 좋지 않은 신장 수치와 유학을 가서 식단관리를 소홀히 했을 때 아이가 헐떡거리며 아파할 고통의 순간만이 맴돌았다.


우선 아이에게 네 뜻을 알겠고, 부모의 입장에서 경제적, 정신적, 신체적(일부러 건강문제는 제일 뒤에 얘기했다. 제일 먼저 걱정했지만. 본인의 결함으로 꿈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좌절할까 봐) 문제점들을 이야기해줬다. 그간 아이의 의견에 긍정적이었던 엄마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포장된 말로 자신이 품은 첫 번째 꿈을 묵살하려는 의도를 아이는 정확히 읽었다.


첫째의 방문이 닫혔다.

학원도 다니지 않던 첫째는 하교 후, 온종일 그냥 2 평남짓 자기 방에서 올곧이 자기 꿈만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첫째의 사춘기 시작이 언제인지 정확히 명명할 순 없지만 난 대화가 붕뜨게 된 이때부터라고 가늠한다.

그때부터 내 시선과 마음은 첫째의 닫힌 방문 언저리를 서성였다.


놓쳤다. 둘째를.


둘째에게는 늘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둘째도 아프지 않게 큰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앓고 있는 너무나도 익숙한 천식이라는 병이라 공감하고 해 줄 수 있는 게 많았다. 더구나 남자아이라 정제시키지 않은 직설적인 말에도 첫째처럼 끙끙 앓지 않아서 좋았다. 모든 것이 둘째는 수월했다.


마치 둘째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껏 자신에게 할당받은 사랑을 받아내야만 할 채무관계 때문에 나를 만난 것처럼 사랑스러운 행동만 골라했다.

첫째에게 없는 (더구나 남자아이인데도) 애교가 넘쳤고, 때와 장소에 맞는 존댓말과 남편의 몫까지 대신해주려는 것 같은 살림 도우미 면모는 둘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더구나 웃을 때 푹 패이는 양쪽 볼의 보조개는 좀비도 사람으로 살리기에 충분한 약이었다.


"엄마 오늘 힘들었는데 약 줘"

"여기요" (보조개 쏙 함박웃음)


첫째의 유학 이야기를 무마하기 위해 두 달 넘게, 미국 유학, 북미권 조기유학, 비인가 국제학교, 인가 국제학교 등 몸이 부서져라 빵을 굽고 와서 발을 동동거렸다.

유학박람회를 다니고, 국제고등학교(특목고), 인가 국제학교(송도, 제주도), 비인가 국제학교(학원형 외국학교 진학 목표) 등의 차이점을 익히고 첫째와의 전투태세를 정비했다.


각각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아이의 신체적, 학습적 능력과 경제적 능력을 고려하여 특목고로 분류되어 SAT 준비와 수능 준비가 모두 가능한 국제고등학교로 결론을 내렸다.


첫째와의 긴 이야기가 몇 주간 이어졌다. 첫째는 나의 정보 검색을 본인을 도와주기 위한 노력으로 정당히 인정해 주는 쿨함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첫째와의 대첩이 끝나가는 듯했다.



그제야 그간 "숙제 다 했니?, 별 일 없없지? 잘 먹어서 예쁘네"란 말만 해왔던 둘째의 상태와 공부가 걱정이 되었다.


영어 사교육 대신 주중에 영어로 된 전자책을 소리 내어 읽히고, 영어책 한 권의 음원을 듣게 하는 게 우리 집 영어 공부 방법이었는데 둘째가 제대로 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은지 2달 여가 지나있었다. 7세부터 해 온 이 일과는 우리 집 아이들에겐 밥을 먹고, 똥을 싸는 것처럼 당연했던 일이라 아이가 했다고 말을 하면, 오늘 똥을 쌌구나 하는 말처럼 듣게 되는 일종의 습관이었다.

큰맘 먹고 둘째에게 관심을 보이기 위해 "얼마나 잘했는지 볼까?"라며 아이의 숙제 검사를 시작했다.

둘째의 전자책은 2달 전에 멈춰있었다. 그 사이 컴퓨터 기록은 유투버 게임 시청 목록이 다였다.

분명, 매일 물어보았을 때  그간 "다 했어요~"라는 답이 돌아왔었는데, 둘째와 나의 신뢰가 끊어졌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


물론 첫 거짓말은 아니었다. 혼나기 싫고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몇 번 사소한 거짓말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난, "넌 있는 그대로 완벽해! 거짓말로 널 꾸밀 필요가 없어. 네가 솔직히 이야기해 준다면 함께 방법을 찾아볼 거야"라고 이야기해주었고, 그때마다 우린 위기를 극복해나갔었다.

그런데 몇 달에 걸쳐 이어진 거짓말이라니...



둘째를 때렸다.


왜 그랬냐는 말에 점점 더 거짓말이 쌓여갔다. 안 한 게 아니다. 기록이 사라진 거다부터 시작해서, 가슴을 치며 자신을 믿어달라는 오스카급 연기까지..

거짓말하지 말고 왜 그랬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하라는 천장을 뚫을 듯한 나의 큰소리에, 엄마를 철저하게 속이다니 한심하다는 도돌이표 멘트에 둘째는 절규했다.


"엄마는 내가 없어도 행복해. 엄마의 행복한 삶에 난 필요 없으니까."


'철썩~'


아이의 뺨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11세 남자아이, 그것도 애교쟁이 나의 둘째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신이 몽롱했다.

나도 아이도 울고 있었다.

15년 넘게 아이들을 키우며 단 한 번도 장난으로라도 치거나, 매를 들어 훈육한 적이 없었다.

육아카페나 육아 고민상담 글에서 아이를 때렸다는 글을 보면 '어떻게 엄마가 아이를 때릴 수 있어? 말이 돼? 인성이 덜 된 것 아니야?'라며 혀를 찼던 게 나다. '대화로 가능하지 않은 게 세상에 어디 있는데?'라며 코웃음까지 쳤었다.

그런 내가 둘째의 뺨을 쳤다.

우는 둘째를 내버려 두고 우는 나만 겨우 챙겨 차가운 밤거리로 나와 걸었다.


아이를 때린 행동의 원인을 찾아야 했다.

'아이가 거짓말이라는 커다란 잘못을 해서?

아이들은 크면서 다 거짓말을 한다고, 수십 권 읽은 육아책에서 그랬잖아.

나도 내 부모를 작게 크게 속여왔잖아.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내가 더 잘 알잖아.'


내 속을 학대하듯 뒤집어엎어 살펴보았다.


내 안의 불안, 그리고 분노.


스스로 영어 책을 읽고, 책 읽고 대화하게끔 공부를 시키는데 학원에 다니며 선행하는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앞서 있었다.

둘째가 다 해놓지 않고 다 했다고 거짓말했을 때, 끝까지 추궁한 이유이다.

그래야 더 빡세게 잡아 앉혀 책을 읽히든, 쉬운 책부터 찬찬히 읽히든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지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내 안의 불안이 아이 몸에 손을 댄 가장 첫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분노였다.

둘째를 볼 때가 내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는데, 그런 내게 어떻게 "엄마는 내가 없어도 행복해!"라는 말을 감히 했는지..

난 전혀 행복하지 않았는데, 그저 일에 치이고, 돌봄 속에 사느라 지쳐있었는데 어찌 날 행복으로 규정해 버리고, 본인은 내 행복의 파괴꾼이라고 자처하는지, 날 하나도 모르는 둘째의 말에 대한 분노였다.



손찌검의 원인에 나 자신의 불안과 분노만 있을 뿐, 아이의 잘못은 없었다.

손찌검의 원인이 내 불안과 분노 때문이었다면 이제 아이 거짓말의 원인을 찾아야 했다.


시선의 부재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재밌었던 책을 추천해 주거나, 짬 내서 보드게임을 해주던 누나가 몇 달 사이, "잘 잤어?"라는 말에도 대꾸가 없는 패닉을 둘째는 영문도 모른 채 겪어야 했다.

그렇게 갑자기 변한 얄미운 누나에게 엄마는 누나가 아니라면 누나 방문이라도 좋다는 기세로 누나 방의 닫힌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올곧이 둘째의 입장에서만 생각해 보니 자신이 철저하게 배제된 몇 달간이었을 것이다.


늘 잘하고 가족의 행복이었던 둘째는 내가 본인에게 관심이 없던 순간에조차 잘 해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순간순간 찾아오는 외로움과 적막함에 아이는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엄마에게 실망을 주면 안 된다는 마음 둘 다를 품었다. 외롭고 지친 마음에 유튜브 게임 속 세상을 매일 전전하고 엄마의 관심이 지금보다 더 멀어질까 두려워 그동안의 완벽한 모습을 지켜내기 위해 숙제를 다 한 척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자신의 상처를 감싸기 위한 가면으로 거짓말을 선택한 둘째가 가여웠다. 미안했다.


돌아와 뜨거운 사과를 했다.

엄마가 부족했다고, 더 많이 사랑하겠다고..


둘째는 다 안다.

내 시선이 본인에게 머물 때를 정확하게!

그리고 그 시선을 돌려놓기 위한 방법까지도!

멀어질 때는 금세였는데 둘째는 더디게 내 곁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 또한 둘째가 알고 선택한 정확한 길일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난 오늘도 둘째에게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시선을 공평히 나누는 방법을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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