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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ONN 에콘 May 02. 2023

낯선 죽음.

남겨진 우리의 몫.


반년 전, 정확히는 22년 11월이었다.

현관문에 만들어 놓은 마스크 걸이에 마스크를 벗어 놓기 전까지 아이 표정을 가늠하기가 힘든 몇 년이었는데..


문을 열고 첫째는 황급히 자기 표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엄마. **반 친구가 자살했대.”

가슴이 철렁했다. 같은 또래의 자살기사만 봐도 심장이 떨어지는데, 같은 학교, 같은 학년 친구의 죽음.. 그것도 아이 입에서 튀어나온 자살이란 단어..


아이는 횡설수설, 사실 아이가 횡설수설했는지 듣는 내가 우왕좌왕했는지는 지금 와선 모호하다.

친구가 죽었고,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모두 분위기가 침울하며, 그 친구를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 쪽지들을 붙이며 작은 애도라도 표현하고 있다고.


뭐라고 아이에게 친구의 죽음을 위로해주어야 할지 먹먹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그 이유의 잔상이 내 아이에게만은 들이치지 않았음 하는 이기적인 어미의 마음이 더 크게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다음 날.

학교에서 공문이 왔다.

-교직원 일동은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에 매우 애통해하고 있으며, 슬픔을 극복하고 학교가 정상화될 때까지 노력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를 잃었을 때 과격해지거나 말이 없어지는 등의 이상행동을 보일 수 있으니 가정에서도 아이들을 잘 살펴봐 주시길 바라며…..-


학교도, 소식을 들은 동네 그 누구도 죽음의 방식이나 이유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고 아이를 보내주는 조용한 침묵의 애도에 동참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내 아이의 죽음을 맞닥뜨린 같은 부모 된 사람으로서의 도리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늘 아무렇지 않게 하던 “아 짜증 나, 죽겠네”, 혹은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 “ 등의 죽음이 들어간 아이 말에 내가 과잉반응을 하게 된 것이다. 예전 같으면 ‘어마무시 힘든가 어떻게 해주지?’하며 원인에 집중했을 텐데 자꾸 ’ 죽음‘이란 단어에 집착해 아이를 걱정과잉 상태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아이의 힘들어, 지쳐라는 말에도 눈을 부릅떴다. 아이는 평상시 같지 않은 엄마의 태도에 더 힘들어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아이를 붙잡아 앉혔다. 힘든 시간이고 앞으로도 힘들 수 있겠지만, 그 누구의 죽음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우리였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죽음이란 무게감 있는 단어를 함부로 쓰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우리가 쉽게 입에 담는 죽음이란 단어가 가치 없는 수식어가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그리고 한 달쯤 후,

작년 12월, 둘째가 다니는 초등학교 후문에서 둘째보다 한 살 어린 또래가 하굣길에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아이들은 내가 30여 년 전 다녔던 그 초등학교의 먼 후배이다. 30여 년 전, 차가 지금의 반에 반도 안 되던 시절에도 운전하는 어르신들이 입모아 도보로 다니기 위험한 곳이라 말하던 곳이었다. 더구나 음주에 뺑소니까지.. 아이의 죽음을 보고야 말겠다고 작정한 악마의 짓 같았다.


이상했다. 그 옛날에도 위험하던 곳에 통학로 공사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고 각자의 이익이 반영되어야 하는 곳이니 그랬겠지만 이렇게 긴 세월, 요구하던 대책이 돌고 돌아 아이의 죽음 후에야 이슈화되었던 것이 슬펐다.





학교 관계자분들과 전교의 학부모들이 동참해 안타까이 세상을 떠난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힘을 모았다.(그 슬픔 속에 부모님 노력은 가늠도 못 하지만..)


학교 근방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몇 십 년 만에 일방통행이 되고 비로소 인도가 생겼다.




그 사고 후, 다음 등교일부터 애도는 이어졌다. 교문 앞에 흰 국화꽃이 놓이고 1학년에서 6학년까지 아직 애도가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의 슬픔이 쌓였다.




4학년이던 내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다 어색했어. 학교에 들어가면 보완관 선생님부터 모두 웃으시며 인사했었는데 아무도 웃지 않았어. 그리고 교장선생님이 우셨어. 교장선생님은 대장이잖아. 대장이 우는 건 우리가 진 거 같아 “






그리고..

그 패배 후, 펜스가 생기고, 통학로가 완성된 후, 하교한 아이가 말했다.

“등교할 때 교장선생님이 웃으셔”





아직도 이 사건은 갈 길이 먼 재판을 진행 중이다. 오늘 3개월 넘게만에 기사가 나왔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638158?cds=news_edit



세상 그 어디에도 남겨진 이들이 견딜만한 죽음은 없다.

그냥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리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생각힌다.


첫째에겐 죽음이란 단어조차 가볍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줌으로써, 둘째에겐 모두의 노력으로 위험하지 않은 스쿨존을 조성해 줌으로써,


그렇게 아이들의 죽음이 생판 모르는 사람의 죽음처럼 낯선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헛 된 죽음이 아닐 수 있길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피해자 가족의 법원 출석 호소문을 덧붙입니다.




피해자 가족 입장문


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지난해 12월 2일 오후 학교에서 돌아오던 중 음주 뺑소니 사고에 의해 하늘나라로 떠난 동원이의 아빠입니다. 아이의 신원을 파악하지 못하여 저녁 퇴근시간이 되어야 소식을 들은 저는 아닐 거라고 되뇌며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날따라 출근하는 저에게 더 큰 목소리로 그리고 더 깊이 고개를 숙이며 ‘회사 잘 다녀오세요’라고 했던 동원이가 차디찬 주검으로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고 저는 정신을 잃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원이는 저에게 둘도 없는 친구였으며, 저의 부족한 점까지 작은 목소리로 조언해 주는 속 깊은 아이였습니다. 독서광으로 지적 능력도 뛰어났지만 무엇보다 따뜻한 가슴을 가졌기에 장차 커서 이 세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저희는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이런 꿈은 2022년 12월 2일 오후 4시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학교 후문을 나오던 중 음주 뺑소니 운전자에 의해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아득한 심연에서 더듬어가며 잃어버린 아이를 찾고 있는 막막함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 차례 동원이에 대한 생각이 날 때면 그리움이 성난 파도와 같이 밀려와 저는 그 파도가 잔잔해질 때까지 몇 시간이고 목 놓아 울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저희 가족은 그날 이후로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너무나 큰 절망과 고통 속에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아빠 하고 외치며 들어올 거 같아 우리는 동원이의 책, 장난감, 사진, 침구 어느 하나도 치우지 못하고, 매일 밤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이 메어져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동원이의 동생은 아직도 큰 충격에 그 사건을 인정하지 못하고 거부하는 상태이며 그 상처가 언제 터질지 몰라 저희는 노심초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매 순간 부정하고 싶지만, 우리 동원이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 동원이의 평소 심성을 고려할 때 분명히 동원이는 동원이 동생, 친구,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하늘나라에서도 바랄 것이라 확신합니다. 남아 있는 가족, 친구를 죽이는 어린이 음주 사망사고는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우리 아이는 백주 대낮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던 중 학교 후문 앞 횡단보도에서 음주운전자에 의해 희생되었습니다. 가해자는 대낮에 제대로 운전을 하지 못할 정도의 만취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여 학교 후문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우리 아이를 치고 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가해자가 사고 이후의 쓰러져 있는 아이를 방치하고 떠나는 모습, 그 이후 아이를 구호하지 않고 방관하는 모습, 그리고 본 재판정에서 뺑소니 혐의를 부인하며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저희를 너무나 고통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 며칠 전에도 너무나 아름답게 생기 넘치던 아이가 추모공원에서 한 시간 반 동안의 화장 후에 하얀 백골이 되어 우리 앞에 나왔습니다. 그 오랜 화염 속에서도 동원이의 두개골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엄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움푹 들어간 자욱과 새끼손톱 만한 두개골 파열이 저를 향해 사고 당시의 고통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두개골이 파괴될 정도로 역과하고 가면서 단차가 거의 없는 빗물배수로인 줄 알았다는 가해자의 변명은 저희를 두 번 죽이고 있습니다.


부디 공정한 판결로 음주운전은 너무나 큰 범죄 행위이고, 뺑소니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선택이며, 이들이 결합된 어린이보호구역 사망사고는 그 어떤 사망사고보다 중한 범죄임을 판시하시어, 이 사회에 다시는 이와 같은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제가 드리는 마지막 소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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