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1)
무엇보다
우리 삶이 늘 시적일 필요는 없다
책상에
볕이 들고 어둠이 스밀 때까지
두 사람이 궁리하는 것이
둥근 나무의 일몰이라면
긍지라는 건
경언아
송창식을 들으며
홀로 맹물에 밥을 말아먹고
눈물 앞에 허수아비처럼 서 있게 되더라도
이해하지 말자
둘이라는 건
상필아
출근 때문에
리버풀 경기를 포기하지 말고
꽃이 활짝 피면 꽃 사진을 찍는
아저씨가 될지언정
헤아리지 말자
기쁨이라는 건
빛을 수집하여
글자로 채울 수 없는 여백에 두고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을 때 집 생각이 간절해진다
완성이라는 건
빵 옆에서 세상 진지한
시인이랑 친구 먹으니 시집도 선물받는다 얏호 외치는
그해 여름 미소가 예쁜 갱
짝눈으로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유뽕
사람이라는 건
졸릴 때 자고
배고플 때 먹고
일할 땐 일하고
놀 땐 놀게 하소서
아픔 없이 데려가소서
믿음이라는 건
의자에게 빚진 생각만큼 의자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오래 말하지 않아도 무섭지 않고
친구들과 작은 운동장에 모여 일광욕하고
어제오늘 부쩍 산다는 건 뭘까, 라는 생각이 든다
행복이라는 건
좋은 날씨는 천사와 함께 온다
꿈에서는
알아서 자라는 사랑을 꿈꾸고
잠들기 전까진 알 수 없는 사랑을 가꾸길
슬픔이라는 건
비록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여전히 암흑일지라도
걱정 말고
불을 밝히고 탁자 위에 놓아두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건
오늘의 집에
두 사람이 들고 온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들고 오지 않은 것
덕분에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다가간다
그것이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시다
-김현, <오늘의 시>
긍지는 사소해 보이는 것에도 들어 있다. 이를테면 두 사람이 아주 오랫동안 나무의 일몰을 궁리하는 것. 나무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혹은 언제가 나무의 일몰일 것인가 고민하는 일도 긍지가 될 수 있다.
둘이라는 것은 이해하지 말아야 할 무언가. 설사 송창식을 들으며 홀로 맹물에 밥을 말아먹고 눈물 앞에 허수아비처럼 (외로이) 서있을지라도. '나'는 영원히 하나고, '우리'도 하나니까. 또는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하니까.
기쁨은 헤아리지 말아야 할 무언가. 출근 때문에 리버풀 경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듯. 리버풀 경기를 좋아하던 상필씨가 꽃 사진을 찍는 아저씨로 나이가 들더라도 여전히. 헤아리지 않을 때에만 기쁨은 기쁨일 수 있으니까.
완성은 빛을 수집하는 일, 그 빛을 채울 수 없는 여백에 두는 일, 집을 떠나 집을 생각하는 일 같은 무언가. 결여가 있어야 비로소 완성이 완성되기 때문. 그럼 그 완성은 완성인가? 찰나의 빛을 수집하는 것처럼 완성은 아주 불가능한, 그러나 '완성'이라는 시니피앙이 존재하는 방식으로만 존재하는 것. 국경을 넘을 때 간절해지는 집 생각은 결코 집이 될 수 없고 집이 주는 안락함이 될 수 없지만 집을 생각하는 찰나에 우리는그것을 느낀다. 동굴 벽의 그림자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은 '유뽕'과 '갱'이라는 고유명사로 설명해야 하는 무언가. 잊지 않았지? 나는 하나고, 우리도 하나(가 되어야 하)니까. 사람이라는 일반명사를 '완성'하는 것도 빛을 수집하는 것과 같은 일.
믿음은 결국 한 방향. 사람이라는 일반명사를 완성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대부분 별 것 아닌 일이고 그것은 결국
행복. 의자에 앉아 생각한 만큼 멍하니 의자의 그림자를 바라볼 수 있고, 오래 침묵해도 무섭지 않고, 친구들과 작은 운동장에서 일광욕을 하는 것처럼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는. 그러니까 산다는 건 뭘까, 이렇게 별 것 아닌 일로도 행복해지고 기도문은 쓸모없어지는데. 이토록 사소한 행복을 긍지로 삼을 수도 있겠다. (2연으로 돌아가라는 도돌이표)
그러나 슬픔 또한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지. 알아서 자라는 사랑은 꿈에서만 가능하고, 잠들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은 공을 들여 가꿔야 하니까. 그것도 그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그럼 이제야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할 차례. 사랑이 뭐냐면- 집에서는 여전히 암흑이 기다리는데도, 걱정하지 말란 듯 불을 밝혀주는 것. 그런다고 암흑은 사라지지 않지만. 간절히 집 생각을 하는 사람은 기차에 몸을 싣고 국경을 넘고 있겠지만. 국경을 넘으며 집 생각을 할 사람을 위해 암흑따위는 없다는 양 불을 밝힐 수도 있게 하지. 이런 불빛을 모두 모아 수집한다면 사랑도 완성되겠지만. 애초에 빛에서 그림자를 떼어낼 수는 없고 암흑도 그러하다. (5연으로 돌아가라는 도돌이표)
영원히 하나인 '사람', 그러니까 모든 이에게 타자인 '나', 그러나 너와 내가 우리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은 서로를 위해 켠 불이 아니라 그 불로 물리치고 싶었던 암흑이라고. 서로의 암흑으로 말미암아야만 하나가 될 수 있고 그 과정은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시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오늘의 시. 두 사람은 하나가 되며 둥근 나무의 일몰을 궁리하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삶이 늘 시적일 필요는 없다. (1연으로 돌아가라는 도돌이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