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내어주기 전에 눈을 맞추는 일

by 선율

좋아하는 사람을 마주할 때, 나는 먼저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본다. 무언가를 말로 전하지 않아도, 그 눈빛 안에는 수많은 언어들이 조용히 숨어 있기 때문이다. 나를 향한 그 사람의 마음, 내가 미처 듣지 못했던 그 순간의 숨결, 말보다 더 깊은 울림이 그 눈 안에 가만히 머문다. 나는 그 시선을 통해 나와 그 사람 사이의 온도를 느낀다. 그것이 따뜻한지, 조금은 멀어져 있는지, 혹은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어떤 복잡한 감정들이 서로를 향해 잔잔히 흐르고 있는지.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사람의 눈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그 눈을 통해, 나 자신에게도 숨기고 있던 내 마음의 결을 들여다볼 수 있다. 나는 정말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구나, 혹은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마음 한쪽에 오래 자리 잡고 있었구나, 하는 감정들이 눈빛 속에서 비로소 또렷해진다. 그 사람이 나를 느끼는 그 찰나의 숨결 안에서, 나는 나의 감춰둔 진심을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단지 마음이 끌리는 것을 넘어서, 그 사람과 눈을 맞추는 일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꼭 연인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함께 일하며 서로의 고단함을 나누는 동료일 수도 있고, 오랜 시간 곁에 있었던 친구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제나 묵묵히 다정함을 건네는 가족일 수도 있다. 그런 이들의 눈빛에는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사랑과 연민, 응원과 존중이 있다. 나는 그 눈빛을 통해 내가 살아온 날들의 외로움과 억눌림이 천천히 위로받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나도 몰랐던 나의 감정들이 그 눈빛 앞에서 조용히 풀려나기도 한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들이 있다. 눈빛은 그런 마음들을 비추는 조용한 거울과도 같다. 우리는 그 눈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서로의 진심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눈을 맞춘다는 것은 단지 얼굴을 바라보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의 내면을 살며시 열어보는 일이고, 나의 마음을 한 걸음 내보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언제나 마음을 내어주기 전에, 먼저 눈을 맞춘다. 그 사람의 눈 안에 담긴 조용한 진심을 읽어내고, 나의 마음도 천천히 그 안에 걸어 들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마주한다. 눈빛이 먼저 스며들고, 마음은 그다음에 따라온다. 나의 마음이 다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먼저 온전히 느끼고 싶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이들을 바라본다. 아무 말 없이, 다만 눈빛으로. 조용히, 깊이,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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