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있는 하루
“밥은 또 내가 해야 돼?”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혼잣말이다. 마치 밥 짓는 요정처럼,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또 밥을 짓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헛웃음이 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쌀을 씻기 시작하면 어느새 마음이 고요해진다.
“이 쌀, 오늘은 왜 이렇게 윤기가 좋지?”
물속에서 반짝이는 쌀알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온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촉, 물살에 따라 움직이는 작은 움직임들. 그냥 쌀 씻는 중인데, 그 단순한 행위에 자꾸 마음이 정돈된다. 마치 '오늘 하루 리셋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물 맞추고, 전기밥솥 뚜껑 닫고, 버튼 꾹.
딱 거기까진 무심히 하다가도,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잠시 후 스멀스멀 풍겨오는 고소한 냄새.
“아… 밥 냄새 미쳤다.”
혼잣말이 절로 터진다.
그 순간부터 나는 갑자기 밥에 감정이입을 하기 시작한다.
‘오늘 이 밥, 잘 되었을까?’
‘물이 좀 많았나?’
‘아니야, 오늘은 뭔가 예감이 좋아.’
뚜껑을 열 때면 살짝 설레고, 김이 확 올라올 땐 ‘나 오늘도 해냈다’는 묘한 뿌듯함이 있다. 대단한 요리를 한 것도 아닌데, 밥 잘 지었다는 이유만으로 하루가 조금 나아지는 기분. 은근히 행복한 순간이다.
“야, 밥 맛있다!”
가족이 한마디 하면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
“그냥 평소처럼 했어.”
말은 그렇게 해도 속으론 불꽃놀이 중이다.
돌이켜보면, 밥 짓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라 하루의 중심 같은 것이다. 귀찮다고 해놓고 결국은 나를 다독이는 시간이고, 바쁜 일상 속에서 묵묵히 반복되는 나만의 의식이다. 쌀 씻고, 물 맞추고, 기다리는 이 세 가지 행위 속에 하루가 정리된다.
오늘도 나는 투덜거리며 밥을 지었고, 또 고요한 위안을 얻었다.
밥 한 공기로 참 많은 걸 한다,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