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있는 하루
물 한 모금 마시는 일조차도 살아 있다는 증거라면, 밥 한 숟갈 떠넣는 건 거의 선언문이다. “나, 아직 살아 있습니다!” 밥을 씹으며 다짐한다. 오늘도 어쨌든 버틴다. 어제 다진 마늘이 오늘의 국에 녹아들고, 남은 반찬이 오늘의 식판 위에 재등장하는 그 순환 속에서 나도 반복되지만, 이상하게도 매번 다르다. 생은 반복이고, 밥도 그렇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드는 생각이 있다. “오늘 뭐 먹지?” 살아있다는 증거가 이렇게도 지질하고도 강력하다. 국이 끓고, 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소리가 나면, 온몸의 세포들이 미세하게 기지개를 켠다. 살아있는 건 단순한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일상의 연속성이다. 내 뇌가 오늘도 식단을 고민하고 있다는 건, 아직 이 삶에 참여 중이라는 뜻.
가끔은 너무 귀찮다. 요리를 하고, 먹고, 설거지를 하는 이 삼위일체의 무한 반복.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건 내 생명 유지 장치다. 배달 앱을 켤까 하다가도 냉장고 속 반쯤 남은 애호박을 떠올리면 “그래, 오늘은 된장찌개다” 하며 뇌는 빠르게 메뉴를 계산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산다. 살아 있다는 건 선택하는 일이고, 그 시작점이 바로 ‘오늘 뭐 먹지’다.
요리를 명상이라 말하면 너무 예쁘게 포장한 것 같지만, 나는 진심이다. 양파를 썰다 보면 눈물이 나고, 그 눈물 속에 묵혀둔 감정이 같이 빠져나온다. 삶의 독소도 함께 빠져나가는 기분. 간을 보고, 조금 짜네 하며 물을 더 붓는 그 감각은 꼭 인간관계를 조율하는 일과 닮아 있다. 그만큼 섬세하고, 그만큼 어렵다.
먹는다는 건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일이며, 동시에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증명서이기도 하다. 누가 나를 보지 않아도, 오늘 혼자 라면을 끓여 먹은 당신, 당신은 위대하다. 나를 위해 라면 하나 끓여 먹는 일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그건 삶을 위한 작은 축제다.
사색을 위한 뇌는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슬퍼할 때도 기뻐할 때도 배는 고프다. 감정은 섬세하지만 위장은 꽤 단순하다. 제때 밥을 안 주면 바로 반응한다. 살아 있다는 건 이렇게 구체적이고 솔직하다.
그러니까 오늘도 물을 올린다. 쌀을 씻고, 채소를 다듬고, 국물 한 그릇을 만든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건 분명히 나를 위한 의식이다. 뭔가 그럴듯한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도, 저녁에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있다면, 오늘도 나는 살아냈다.
그리고 다시 내일을 고민한다. 내일은 뭘 먹을까? 이 질문, 결코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