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있는 하루
어른이 된다는 건, 스스로 밥을 차려 먹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반찬 몇 가지를 꺼내어 밥을 차리고, 국을 데우고, 때로는 라면 한 그릇으로 한 끼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렇게 익숙해진 식사의 어느 날, 문득 한 숟갈을 입에 넣는 순간 “어, 이 맛… 나 아는 맛인데?”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만들어주던 미역국, 고등어조림, 김치볶음밥의 맛과 비슷한 그 무엇. 그 맛 하나에 마음이 일렁이고, 아득한 시절로의 문이 열린다.
그건 단지 ‘맛’ 이상의 감각이다. 어린 날의 부엌, 보글보글 끓던 냄비 속 김, 식탁 너머 엄마의 뒷모습 같은 것이 통째로 떠오르는 장면의 환기다.
기억은 이상하게도 혀끝에서 되살아난다. 낯선 여행지에서도 그랬다. 오래전 제주의 한 식당에서 먹었던 갈치조림의 맛이, 서울 골목의 작은 밥집에서 문득 되살아났다. 그 순간 나는 제주로 다시 날아가 있었다.
무심코 지나친 시간이 음식 한 점으로 되살아나고, 그곳의 햇살과 바람, 공기의 냄새까지도 따라온다. 나의 감정은 그렇게 입안에서 부드럽게 피어난다.
나는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었다. 많은 시간을 쏟아 붓고, 치열하게 살아낸 시절이었다. 그 시절이 그리워질 때면 나는 닥터페퍼를 마신다.
달콤하고 톡 쏘는 그 맛은 마치 타임머신처럼 나를 미국의 작은 방으로 데려간다. 캔을 여는 순간 벌컥벌컥 마시던 밤들, 도서관에서 돌아와 지친 몸을 의자에 던지며 마셨던 기억,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 그리고 그 모든 설렘과 고단함이 거기 담겨 있다.
사실 나는 닥터페퍼를 자주 마셨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음료는 나의 기억 전체를 이끌고 온다. 나는 그 맛 하나로 수천 킬로미터를 건너, 시간을 거슬러 간다.
우리는 맛으로 기억하고, 향기로 감정을 꺼내 쓴다. 그리고 그 기억은 때로 아주 생생하고, 나를 위로하고, 삶의 에너지가 된다.
잊고 지내던 감정을 다시 꺼내고 싶을 때, 나는 의식처럼 엄마의 레시피를 따라 요리를 하거나, 먼 나라의 음료를 마시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과거의 나를 떠올리고, 그때의 나처럼 다시 열정적으로 살아보자며 스스로를 북돋는다.
삶은 그렇게, 기억의 맛으로 오늘을 살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