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속 재료들로 만든 하루의 조각

밥이 있는 하루

by 선율

냉장고 문을 열면 붐비는 식재료들이 먼저 말을 건다. 마트에서 이것저것 사다보면 일주일은 거뜬히 버틸 수 있을 만큼 재료가 쌓이고, 그런 냉장고는 대부분의 집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나의 냉장고도 다르지 않다. 하루 이틀 장을 보지 못한 날, 나는 냉장고 앞에 서서 조용히 머리를 굴려본다. 오늘은 무얼 먹어야 할까. 무엇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다.


안쪽에 자리 잡은 무와 감자, 양파가 눈에 들어오면 먼저 된장국이 떠오른다. 국물은 그 세 가지면 충분하다. 야채칸에 남은 양배추를 보면 양배추 채를 썰어 무침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아침엔 된장국, 점심엔 양배추 무침을 밥 위에 올려 쓱쓱 비벼 먹는다. 저녁쯤엔 언제 사두었는지 기억도 가물한 파스타 면이 떠오른다. 냉장고 속 쓰다 남은 야채들과 올리브 오일만 있으면 근사한 알리오 올리오가 완성된다.


냉장고 속 재료들로 그날 하루의 식사를 완성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든든해진다. 부족한 듯해도 실제로는 충분하다. 매번 거창한 계획 없이도 한 끼, 한 끼를 채워나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나를 안심시키고,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을 준다.


하루의 먹거리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사실 삶 자체가 늘 완벽한 적은 없었으니까.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일들을 해결하고, 생기는 일정을 조율하며, 예상치 못한 감정들을 수습하며 살아간다. 그런 삶의 감각은 냉장고 앞에 서서 식재료를 조합해 한 끼를 만들어내는 모습과 닮았다.


오늘도 나는 냉장고 문을 열며 생각한다. 지금 있는 재료로, 오늘 하루를 살아내자고. 즉흥적인 결정과 루틴 사이 어딘가에서 나를 위한 하루를 설계하고, 그 하루를 가능하게 만든 식재료들에게 감사하며, 그렇게 오늘도 내 삶의 조각 하나를 완성한다.

작가의 이전글늦은 저녁,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