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함을 품은 채, 그래도 우리는 걸어간다

by 선율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기대가 생긴다. 그 기대는 거창한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 내 마음을 조금만 더 알아줬으면, 내 눈빛을 조금만 더 살펴줬으면, 내가 건넨 말의 의미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람. 그런 작은 바람들이 모여 우리 마음에 기대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때, 우리는 서운함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우리는 왜 서운할까.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정말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다. 서운함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는다는 건, 마음이 거기까지 닿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내가 어떤 순간, 어떤 말, 어떤 표정에 서운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곧 내가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무엇이 있다는 뜻이고, 그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서운함은 마음이 멀어져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우리는 서운하면서도, 여전히 그 사람 곁에 머문다. 떠나지 않고, 등을 돌리지 않고, 그 사람과 함께 걷는 길을 이어간다. 왜냐하면 그만큼 그 사람이 소중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가 내 마음 깊은 곳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언제나 완전하지 않다. 우리가 아무리 온 마음을 다해 전해도, 그것이 그대로 닿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보내는 사랑의 언어가 그 사람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전달될 수도 있다. 그런 어긋남 속에서 우리는 서운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 어긋남조차도 서로를 향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서운함은 사랑의 반대말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서운하고, 서운하기 때문에 그 관계를 더 지키고 싶어진다. 나는 그 사람에게 조금 더 인정받고 싶고, 조금 더 깊이 연결되고 싶고, 내 마음이 온전히 닿기를 바란다. 그 마음이 크면 클수록 서운함도 함께 자라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완벽하게 다 채워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중요한 건 그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서운함을 품고도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고, 같은 방향을 향해 걷는 것.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이 언젠가는 조금 더 닿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천천히 나아가는 것.


서운하다는 건 사랑한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다. 기대한다는 건 함께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러니 우리가 때로 서운함에 머무를 때, 그것은 곧 누군가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서운함을 품은 채, 그래도 우리는 걸어간다.

사랑하기 때문에, 좋아하기 때문에, 기대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감정들이 우리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게 하는 이유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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