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특수교사 정서인 쌤 Apr 12. 2021

제자인 청각장애학생이 교원 임용시험에 합격한 기쁜 소식


오늘 오전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갈 무렵 저장되어 있지 않은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에는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올 때 안 받을 때가 많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는 달리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받았다.

이상하리만큼 오늘 전화는 무의식적으로 그저 받았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2005년에 유치원을 졸업한 최00엄마입니다. 최00아시지요?"

"그럼요. 알다 마다요. 늘 소식이 궁금했어요. 잘 지내지요?"


2005년 2월에 청주 용정동에 있는 파견학급에서 유치원을 졸업한 제자 여학생의 어머니이었다. 2004년 청주 파견학급으로 충주에서 출퇴근했다. 그해에 유치원 담임을 했다. 그 당시 여학생 3명과 남학생 1명이 있었다. 

그중에서 3명의 학생들은 일반학교로 통합 나갔다가 어떤 학생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여학생 1명은 중학교 입학할 때. 남학생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본교로 전학을 왔다. 4명 중 3명은 대학을 진학하고, 나머지 1명은 전공과를 졸업하고 현재 시설에 취업해 있다. 

*진이는 대구대학교 특수교육학과에 다니다가 휴학한 뒤 이번 3월에 4학년으로 복학한다. *호는 나자렛대학교 수어 통역과 졸업해서 현재 강원도 농아인협회에 취업하여 일하고 있다. *정이는  특수학교 유치원만 다니고, 초등학교 1학년 때 부터 일반학교에 통합 나가서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교원임용시험을 치렀는데 당당히 합격하여 현재 특수학교로 발령을 받아 전공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04년 청주 용정동에서 파견학급을 운영할 때 나는 그해 *정이를 만나 정말 행복하게 수업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똘망 똘망 한 눈빛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에는 보청기를 착용했는데 나의 입모양만 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이해하는 *정이가 신기할 정도로 독 화력이 뛰어난 어린이였다. 

구화(상대방의 입모양을 보고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는 것)로 의사소통을 하며 비장애인들 속에서 대학교까지 졸업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대견했다. 정말 자랑스러웠다.

*정이는 와우를 착용하고 있지만 뒤에서 말을 하면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입모양을 서로 볼 수 있는 상태에서는 대화가 가능한 학생이다. 이젠 의젓한 선생님이 되었다.

교사가 되어 학생들에게 잘 가르칠 수 있을지, 어려움은 없을지 여러 가지 걱정이 된다고 하시면서 마음이 무겁다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니 나 역시 마음이 짠했다. 겪어나가야 할 문제였다. 부딪쳐 보지 않고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3월에 근무하면서 헤쳐나가야 할 문제가 있다면 그때 맞서서 해결해보는 방향으로 조언을 해 드렸다.

처음 발령이 나기 전에 청각장애를 가진 *정이가 지적장애학교로 발령이 날 거 같은데, 교육청에서 과연 잘할 수 있겠느냐고 학부모인 윤*이 어머니에게 전화가 자꾸 온다고 했다.

청각장애를 가진 상태에서 교원 임용시험에 합격한 나의 제자 윤*이가 자랑스럽다. 특수교육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청각장애인이 교원임용시험에 합격하여 공립학교 교사가 되었다는 일은 손뼉 치며 축하할 일이다. 그런데 같은 장애영역의 특수학교가 아닌 윤정이와는 다른 장애영역의 특수학교에 발령을 내려고 하니 교육청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생길까 봐 교육청에서도 은근히 염려가 되었든지 어머니께 자꾸만 연락을 하는 거 같았다.

어머니는 처음 합격 소식을 접했을 때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은 그 좋았던 기분이 가라앉아 바닥까지 가려고 한다고 했다. 그만큼 교육청에서 전화 오는 것이 어머니를 힘들게 하고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하면서 16년 전 담임이었던 내가 생각나 전화를 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정말 감사했다.

더 감사한 것은 유치원 졸업할 때 내가 동시집을 선물로 준 그것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난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봐도 잘 나지 않았다. 동시집을 사진 찍어 보내보라고 했다. 사진으로 동시집을 보니 내가 선물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그 시집 속에 내가 손편지를 써 놓았다고 했다.

<사랑하는 *정이에게

우리 예쁜 *정아, 아름답고 예쁜 동시처럼 예쁘게 잘 자라거라. 책 많이 읽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이다음에 다시 만나자. 우리 *정이는 학교생활 잘해나갈 거라고 선생님은 믿는다.

2005.1.21.

널 아주 많이 사랑하는 정노미 선생님이>

이렇게 써져 있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그 손편지가 아주 많은 힘이 되었다고 고마워했다.


어느 듯 성장하여 이제 나와 같은 특수교사가 되어 3월에 교육현장에서 근무한다고 하니 감개무량했다.

고민이 되고 속상해서 전화한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님, *정이에게 다가올 미래, 그 일이 생각보다 힘들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지금껏 해 온 것처럼 자신 있게 당당히 맞서서 생활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아요. 그리고 어머님께서 표정부터 말씀하는 것까지 *정이가 보았을 때 엄마가 걱정하시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필요가 있어요. 넌 할 수 있어라는 믿음을 지금까지 준 것처럼 변함없이 믿어주는 것이 *정이를 위하는 길인 거 같아요. 힘내시고, 반드시 *정이는 해 낼 수 있을 거예요. 축하드려요."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3월 한 달이 지나고 4월 3일 토요일 *정이 어머니로부터 카톡이 왔다.

"안녕하세요? 벚꽃도 서둘러 피더니 봄비에 꽃이 다 지고 있네요. 그새 연락도 못 드리고... 3월을 보내고 벌써 4월이 시작되었네요. 교육청에서 면담 나오신 후 서류 제출하고 기다렸는데 어제 보조인력을 지원해 주신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차차 학교생활 적응해가며 마음이 놓여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너무 반가웠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주위에 항상 좋은 분들이 계셔서 많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정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정아, 오랜만이네. 축하하고 반가워. 어릴 때 모습이 또렷이 기억난다. 언제든 소식 주어도 된단다. 넌 잘해 낼 거야.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한 번 만나자꾸나. 주말 동안 몸도 마음도 좀 쉬렴"

작가의 이전글 부모인 내가 먼저 책을 읽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