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한 두 번쯤 다른 사람 물건에 손댄 적 있나요?
교실에 작은 바구니에 어린이들이 사용할 학용품을 담아 놓았다. 수업시간에 필요할 때 어린이들에게 나눠주어 사용하게 한다. 어느 날 영어 수업시간에 내가 갖고 있던 색연필과 똑같은 것을 사용하는 건민이를 보았다. 자기 교실에서 교과실로 이동할 때 가지고 왔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수업을 마치고 나가면서 나에게 색연필을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그때야 건민이가 가지고 온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아직은 어려서 다른 사람의 물건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거 같았다. 이런 경우 건민이가 색연필을 훔쳐서 사용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훔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전 수업시간에 나눠 주었던 일을 생각하고 그냥 사용해도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한 거 같았다. 친구들은 벌써 교실을 빠져나가고 아무도 없었다. 어릴 때부터 내 물건과 다른 사람의 물건 구별하여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천천히 설명을 해 주었다.
“이 물건은 선생님의 물건이기 때문에 허락받고 사용해야 해. 다음부터는 사용하고 싶을 때 말하렴. 언제든지 줄 테니까. 말할 수 있지?”
“알았어요” 수어로 표현하면서 겸연쩍어했다. 2021년 봄이 아닌 과거였다면 내가 어떻게 했을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화를 냈을 것이다. 내 허락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물건을 가져가서 사용했으니 버릇없다고, 예의 없다고 했을지 모를 일이다.
흔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닐 때 친구의 물건이 예뻐서 집으로 가지고 오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때 어린이들은 자기가 한 행동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 가지고 오는 어린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친구의 물건을 가져오는 경우가 더 많으리라 생각된다. 이런 경우 아이들에게 무조건 화를 내며 다른 사람 물건 훔쳐 온 나쁜 사람이라고 혼을 내는 것이 좋은 방법일까? 그 방법보다는 아이가 먼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들어보고, 그와 같은 행동이 왜 나쁜 행동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이 좋다. 자칫 잘못하면 도둑으로 낙인을 찍을 수 있게 된다. 부모의 큰 실수로 인해 아이는 돌이킬 수 없는 그와 같은 일을 저지를 수도 있는 위험이 있으므로 ‘도둑’이란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
6학년 도덕 교과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견물생심’이라는 개념을 공부하면서 학생들에게 지금까지 남의 물건을 슬쩍 훔친 적이 있는지 질문했다. 과거의 자신들 잘못을 인정하고 말하는 것이 창피한지 묵묵부답이었다. 순간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내 경험을 학생들에게 먼저 공개하기로 했다.
“선생님이 어릴 때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친 적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아이들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 빛났다. 안방에 걸러져 있던 아버지의 양복 주머니에 있던 돈을 훔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어떻게 교사인 내가 돈을 훔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신기한 듯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아마도 아이들이 생각했을 땐 전혀 그런 일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거 같았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행동이 나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다시는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물어보았다.
“혹 선생님과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 있나요? 있으면 손을 들고 발표해 볼래요?” 교사인 내가 어릴 때 잘못한 행동을 먼저 말해서 그런지 학생들은 이전의 자세와 사뭇 다르게 반응했다. 옆에 있는 친구들을 쳐다보면서 싱긋이 웃었다. ‘나도 경험이 있어. 너도 있지?’라고 서로 눈으로 이야기하는 거 같았다. 맨 먼저 여자아이가 이야기해 주었다.
“어머니랑 슈퍼에 갔을 때 먹고 싶은 과자가 눈에 띄었어요. 그걸 주머니에 몰래 넣었어요. 밖으로 나와서 과자를 먹었어요. 어머니한테 들킬까 봐 마음 졸이며 과자를 먹었어요. 그 이후 저는 훔친 적 없어요.”
또 다른 남자아이가 말했다.
“저는 어릴 때 벽에 걸려 있는 아버지 양복 주머니에서 돈을 훔친 적이 있어요. 그 돈으로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각자 어릴 적 나와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나서 겸연쩍은 웃음이 교실 안에 가득 찼다.
이어서 둘째 아들이 진짜로 남의 돈을 훔쳐서 경찰서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주겠다고 했다. 좀 전보다 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 이야기에 집중했다. 둘째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체크카드, 신용카드를 사용하기보다는 주로 현금을 사용했다. 내 지갑엔 항상 만 원짜리와 천 원짜리, 동전 몇 개가 들어있었다. 1층에 살면서 슈퍼를 자주 오가며 생활할 때라 식탁 위에 늘 지갑을 두고 생활했다. 그 지갑에 아들이 손을 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가끔 지갑을 열었을 때 돈이 왜 이렇게 조금 남았지 이상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내가 사용한 것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가족 중에 누군가 내 지갑에 손을 탔다고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 “누가 엄마 지갑에 손댔니?”라고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루는 큰아들이 작은 방 책꽂이에 하얀 편지 봉투가 꽂혀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엄마, 이 하얀 봉투 엄마가 책꽂이에 꽂아두신 거예요?”
“아니야. 왜?”
“이 봉투 속에 돈이 들어있어요” 그때 직감했다. 그동안 지갑을 보면서 몇만 원씩 없어진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사용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 당시 돈 액수가 꽤 컸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순간 앞이 캄캄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괘씸했다.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나를 속일 수 있지?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때 둘째 아들은 밖에 나가고 없었다. 아마 집에 있었으면 화를 내면서 보이는 물건을 잡고 때렸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순간에 둘째 아들이 집에 없었던 것이 오히려 더 잘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들이 집에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화가 난 마음은 조금은 가라앉았고, 나름 고민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순간 지인의 남편이 경찰서에서 형사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설명했다. 이런 경우에 부모로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냐고 물었다. 형사는 고맙게도 아들을 데리고 경찰서로 오라고 했다. 외근 중이니 저녁 시간쯤 근무지로 돌아온다고 그때 만나기로 했다. 작은아들이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내 가슴이 콩알만 해졌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지고, 손은 떨리기까지 했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처리하고 싶었다. 주님께 지혜를 구했다. 이 상황이 잘 해결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둘째 아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을 보고 둘째 아들이 뭔가 모르지만, 엄마가 화가 많이 났다는 정도는 눈치챘다. 무슨 일 있냐고 말하는 아들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따라 나오라고 하면서 경찰서까지 갔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둘째 아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순수히 따라와 주었다.
경찰서에 아들과 들어가니 사람들이 모두 나만 쳐다보는 거 같았다. 창피했다. 속이 상했다. 화도 났다. 하지만 형사님한테 맡겨보기로 했다.
경찰서 입구에 가니까 형사는 아들 보고는 의자 있는 곳을 가리키며 잠깐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고 나에게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하셨다.
“제가 나와 있으면 우리 아들이 도망가면 어떡해요?”라고 묻는 내 말에 형사는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설령 그런다 하더라도 경찰서에 왔다는 그 자체만으로 아들에겐 교육이 되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밖에서 기다리세요”
밖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왜 그리 길게 느껴지던지. 경찰서 마당을 왔다 갔다 하기를 수십 번 하고 있을 때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고개를 숙이고 아들과 형사가 천천히 나왔다.
“어머니, 아들에게 계속 나쁜 행동을 하면 교도소에 가서 지내야 한다고 알려주었어요. 그러면서 실제 죄를 지은 사람들이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직접 눈으로 보여주었답니다. 앞으론 두 번 다시 그런 행동 안 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시고 데리고 가세요”
아들은 교도소에서 형을 지내는 사람들을 직접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어떤 마음이었을까? 마음속으로는 사실 궁금했다. 하지만 감쪽같이 나를 속인 행동이 괘씸하고 얄밉고 화가 나 경찰서 문을 나와서도 아무 말을 건네지 않았다. 보듬어주지도 않았다. 만약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 지금 내게 생긴다면 부모로서 자녀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을 거 같다. 집에 와서도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저녁을 지어 먹이고 잠을 잤던 것으로 기억된다.
세월이 흘러 둘째 아들에게 그때 왜 그런 행동을 했냐고 물으니 그냥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고 했다. 그 돈으로 동전 바꾸어 아파트 근처에 오락기 기계를 이용하여 게임을 했다고 했다. 내가 주는 용돈이 부족했냐는 말에 용돈은 넉넉했는데 자신의 그릇된 욕심 때문이었다고 했다. 아들은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남의 물건에 일절 손대지 않는다. 가끔 지갑에 돈이 얼마 있는지 미리 세어 놓고 전처럼 식탁에 지갑을 일부러 둬 보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다른 사람의 물건을 보면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한두 번쯤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런 행동들은 내 자녀는 물론이고, 주위 학생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학부모님들이 가끔 자녀에게 도벽이 생겼다고 하면서 상담 요청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도벽이 아닌 단순히 훔치는 행동을 한 두 번씩 한 경우였음을 알 수 있었다. 흔히 남의 물건을 훔치는 행동을 했을 경우 도벽이 있다고 쉽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의 물건을 한두 번 ‘훔치는 것’과 ‘도벽’은 전혀 다르다. 한두 번 훔치는 것이 습관화되어 계속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을 ‘도벽’이라고 한다. 한두 번 훔치는 행동에서 그치지 않고 나이가 들어서도 다른 사람의 물건을 계속 훔친다면 도벽 성이 있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다.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일이니 아이에게 도벽이 있다고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남의 물건을 훔친 아이를 발견했을 때
“남의 물건에 손을 대면 어떡하니?”
“커서 뭐가 되려고 하니?”
“안 좋은 도둑질을 배우면 어떡하니?”
“벌써 도벽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니?”
“너는 도둑이야. 도둑놈이야.”
이런 말을 아이들이 듣게 되면 ‘아,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이구나! 나는 왜 이럴까?’라고 생각하면서 자존감이 낮은 아이로 성장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부모가 내뱉은 말대로 도둑이 될 수도 있으므로 절대 ‘도둑’이란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어떨까?
"남의 물건을 훔치고 나니 기분이 어땠어? “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은 나쁜 행동이란다. 앞으로는 절대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럴 수 있지?”라고.
위와 같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행동을 한 자녀나 학생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막상 자녀가 물건을 훔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받아들이기 힘들고 화가 날 것이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가 한두 번 훔친 것을 보고 도둑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아이가 남의 물건을 훔쳤다는 사실을 눈감아 주어서도 안 된다. 남의 것을 훔치는 행동은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결코 해서는 안 될 행동임을 분명히 알려주어야 한다. 훔치는 행동을 했을 때 파생되는 결과가 어떤 것인지도 반드시 가르쳐 주어야 한다. 행여 집에 물건이나 돈이 없어진 경우가 있다면 아이의 몸을 지나치게 수색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이들이 갖고 싶은 마음 즉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부모들이 돈 관리를 잘해야 한다. 어른들의 부주의로 선한 아이들의 마음을 오히려 다치게 하는 일은 처음부터 없애는 것이 좋다. 설령 몇 번 훔친 경우를 보았다 하더라도 창피를 주거나 때리면 안 된다. 아이 스스로가 다시는 훔치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가 자녀를 올바르게 이끌어 줄 때 아이들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들을 거울삼아 바르게 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