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

사회 새내기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어른.

by 김희영


사진 김희영


생각해 봐.
솔직하게, 당당하게 살았잖아.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부터
지금 너, 어때?



아주 어릴 적 우리는 어쩜 그 누구보다도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존재들이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시는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먹고 싶은 과자를 가로채기도 하고, 억울하고 화나는 일이 있으면 큰소리치고 울어보기도 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꼭 알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날들, 그런 시절들이 있었다. 물어보고 저질러봐도 괜찮았다. 어른들은 그래도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감정에 솔직했고, 태도는 확실했다. 특히나 내 생각을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싫어요! 싫단 말이에요!"


그래서 어른들은 어린 우리에게 "버르장머리가 없다"라고 얘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순이야! 그렇게 말하면 못 써! 버르장머리 없이!"

"괜찮아, 싫을 수도 있지. 괜찮다."


어른들에게 혼이 많이 났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우리는 차츰 어른이 되면서 버르장머리를 배워갔다.

또 다른 버르장머리는 친구들을 만나면서도 배워나갔다. 우리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또래 집단을 만들어왔다. 친구들을 만나서 웃을 때도 있지만 싸우거나 우는 일도 많았다. 질투도 해보고 의기소침도 해보고. 어쩔 땐 자신감에 가득 차서 어깨도 으쓱거려보고. 그렇게 크고 작은 상처를 받고 아물어가면서 우리는 작은 사회를 경험했다.

교과서에서는 분명 학교생활도 사회생활의 일환이라고 배웠다. 경험은 곧 어른들의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라고.


"사회 나가 봐. 이것보다 더한 거 많아. 학생일 때가 좋은 거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한 아픔이래도, 그땐 어른이 되고 싶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멋진 커리어우먼들과 샐러리맨의 모습을 동경하면서. 때론 당당하게 회사를 때려치울 수 있는 프리랜서의 삶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꿈꾸던 시절들이었다. 꿈이 있었기에 공부도 열심히 했고, 거기에 맞는 자격증 공부도 하고, 학점도 맞춰가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그랬던 우리가 왜 갑자기 소심하게 되었을까?



사진 김희영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래?
새파랗게 어려!



모든 것은 준비됐다. 내놓으라는 영어성적도 맞췄고, 그 분야에 맞춘 인턴도 아르바이트도 몸소 경험하면서. 그 분야에 꼭 맞춘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건 기업에 맞춘 부품이었지 나 자체는 아니었다. 그런 나날들은 나이기를 포기한 과정들로 반복되었다.

그렇게 공부해서 세상에 첫발을 디뎠을 때, 나는 막막함과 암담함이라는 먹구름에 사로잡혔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고, 저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울고 싶었다가 화도 났다가 감정이 들쭉날쭉 제 멋대로였다. 어릴 땐 어떤 일을 벌여도 칭찬 일색이었던 어른들도 갑자기 무섭게 변해버렸다. 어렸을 땐 모르는 것은 가르쳐주기라도 했는데, 사회는 처음부터 알지 못하면 낙인찍히고야 말았다.

내가 아직 어리다는 이유,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말은 점점 나를 옥죄여왔다. 난 단지 '어리기 때문에' 더 잘해야 했다. 거기에 따르는 강박관념, 압박감. 눈치를 본다는 말은 결국 나를 소심한 인간으로 빚어내겠다는 말이다.

어떤 일에도 도전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도전하지 않는 편이 조금이라도 욕을 덜 먹는 길이었다. 흔히 말하는 "나대지 마라"는 말에 가장 잘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 편이 그나마 속이 편했으니까. 그래서일까? 점점 나는 인간관계에 민감해지고, 눈치를 보게 되고, 소심해지게 됐다.


당당했던 나, 왜 이러지?



사진 김희영


왜 청춘은 아파야만 해?
아프지 마,
청춘이니까.


열정과 도전. 어릴 적 우리가 누렸던 자유로움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어른이 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소멸해 버린 것들. 아이들의 천진난만함과 대범함, 어려움에 맞서는 용기를 기억해낼 수 있을까?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청춘은 왜 아파야만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미숙한 것도 죄가 되는 사회. 레벨이 한참 낮은 사회 새내기들에겐 너무나도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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