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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편지

by 김희영

※ 매거진 [notitle]에 한 달에 한 번 연재되는 편지 시리즈입니다.

old-letters-1082299_1920.jpg @Pixabay



to.


겨울이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지, 뉴스에서는 태풍 소식이 들려왔다. 조만간 태풍에 눈까지 끼얹은 거대한 폭풍이 몰아칠 거라는 예보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순탄한 겨울이었다. 거리마다 쓰레기가 넘쳐나긴 했지만, 그것이야 뭐. 쓰레기차로 실어 변두리에 내던져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 나름 깨끗했었다는 말이다.


인간들이 자원을 끌어다 낭비하기 시작하고, 친환경 에너지가 세상을 바꾸겠다던 미래 과학자들의 말들은 모두 헛소리로 판명 났다. 인간은 그렇게 부지런하지 않았다. NASA는 지구를 대체할 새로운 행성을 찾는다고 했다.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욕망을 분출해대기 시작한 인간들은, 쓰레기차가 쓰레기를 수용할 수 없을 정도의 양으로 버린 양심을 감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단의 교주도 아니고, 똑똑하고 잘난 과학자도 아니다.


단지 내 인생의 미래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똑똑히 안다.


대자연의 분노가 나는 결국, 신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한다. 거대 눈보라가 몰려오는 것은 곧, 신의 청소가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나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며, 어쩌면 이 편지 또한 후대에 남겨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우선 나는 이럴 것을 대비해 미리 만들어 둔 지하로 몸을 숨긴다. 신의 청소가 끝났을 무렵, 나는 세상에 다시 나올 것이다. 그것이 몇 년이 될지, 몇십 년이 될지 모르겠다. 몇십 년이 된다면 아마 나는, 이미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닐 것이다.


옆집에 살던 찬이 집에 왔다. 도망갈 곳이 없다고 울기 시작했다. 이미 시작된 태풍은 동남아의 절반을 휩쓸고,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태풍의 기세는 쓰레기를 품고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편의를 위해 만들었던 물건이 버려져, 허공에 흩날리다 인간의 몸뚱이에 타격을 가한다. 몸이 부서지고 망가져, 길가에 버려진 시체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해체돼 있다. 시체들은 모두 얼어 죽은 것이 아니라, 물건에 맞아 찢겨 죽은 것이었다.


찬은 공포에 떨며 손끝을 뜯었지만, 나는 그에게 내 지하실의 존재를 말하지 않았다. 나 혼자 살기에도 벅찼기 때문이다. 식량이 많지가 않다. 세상의 청소가 몇십 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면 말이다.


찬이 집으로 돌아간 무렵, 나는 몰래 이 지하실로 들어왔다. 네댓 개의 자물쇠로 걸어 잠갔다. 아무도 이 지하실의 입구를 알지 못할 것이다.


지금 누군가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아마 나는 죽은 것이 되겠지.


청소가 끝난 지구의 모습은 어떨까.

아무도 이 편지를 읽지 않기를 바란다.

반드시 살아서, 이 편지를 품 안에 안고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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